복숭아나무 아래에서
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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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오는 시간의
날카로운 칼날에 베어
선혈처럼 뚝뚝 지는
장미를 밟고
복숭아 걸어가는 길이 푸르다
발 딛고 선 세상이 둥글다고 깨달았을 때
꽃은 지고
열매가 열렸던 것이다
그 속에 불씨가 가득했다
허공에서 타오르는 해가
윤회처럼 굴러가며 나뭇가지마다 옮겨붙었다
주렁주렁 매달려 곧 폭발할 별천지였다
대낮에도 빛을 내며
어두워가는 마음을 밝혀주었다
복숭아 하나 툭 떨어진다
바위로 덮힌 눈이 환해지고
무쇠로 막힌 귀가 뚫렸다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누워있었는데
땅위를 데구르르 굴러가고 있었다
물위로 둥둥 떠서 흘러가고 있었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몸이 쩍 갈라지고
그속에서 불덩어리 하나 튀어나왔다
하루만에 잉태하고 낳았으니
복숭아 열매가 달디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