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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월 02일 (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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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한 아이가 *

연꽃향기 조회 1,06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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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기슭 아랫동네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시골아이 하나가 있었답니다,

까만 맨발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등에는 양철연필통, 책나부랭이 몇 권을
검정보자기에 둘둘 말아, 어깨에
사선으로 둘러메고
쩔렁쩔렁 소리 내며 다니던
꼬마아이 하나가 있었답니다,

토끼풀 질펀한 들판에선
또래 아이들과 씨름을 하고
시냇물을 만나면 철벅 철벅 물길을 따라
철길도 건너고 언덕을 넘어
논둑길 밭고랑을 가로 질러
시오리 황톳길도 멀지 않던
개구쟁이 한 놈이 있었답니다,

책보자기 훌렁 벗어 툇마루에 내던지곤
쫄랑졸랑 따라오는 누렁이와
버드나무 가지 하나 꺾어들고
논바닥 풀섶에서 뛰어 오르는 깨구리 잡아
옆구리에 뒷다리 주렁주렁 꿰어 차고 와서는
꾀죄죄한 선머슴 동네 누나와
모닥불 피워 놓고 쪼그리고 앉아
왕소금 살살 뿌려 석쇠에 구워 먹던
그런 아이 하나가 있었답니다,

한여름, 미루나무 가지엔 때까치가 울고
수박 한 덩어리 담가 논 우물가에선
선머슴 같은 누나와 등멱을 하며
물장난 치던, 그 옛날에
뱀딸기같은 바알간 점 하나 도드라져 있는
한꺼플 껍질 벗긴 양파보다 더 뽀얀 젖무덤을
흘깃 흘깃 훔처보곤 하던
짓궂은 아이 하나가 있었답니다,

지금은, 그 누님 소식이 없고
강산이 몇 번 바뀌더니
내 고향 우물가, 미루나무 있던 자리
닭장 같은 아파트 즐비한데
이제는, 빛바랜 흑백 사진만도 못한
수채화 같던 그 고향은, 시골아이 가슴에
먼지 낀 판화로
걸려 있답니다.


♧ 시나브로 핀 연꽃/詩人 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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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시가 참 좋네요. 제 마음과 머리속에 낡은 흑백사진 한장이 걸린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2005.02.24 09: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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