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0-2번" (남자는....?, 여자는....?) -두번째-
요하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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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많이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다.
맨 뒤좌석 앞에 자리를 잡았을때에 그곳에 앉았다라는 표현보다는 다리에 힘이풀려
철퍼덕 주저 앉아 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거 같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한번 있다.
휴가기간이였었지 아마.
친구들과 청평을 놀러가서 추억한번 맹글어보자.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안전밸트를 두눈 똑바로
확인까지 들어간다음 개봉박두!!!!
번지점프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흐메~
'이까짓것' 그렇게 거만한 모습으로 보여지던 것과는 다르게 막상
그 앞에 서고보니까 오감도가 쭈뼛. 닭살이 푸릇푸릇 돋아나고 식은땀이 천지사방을
도배하는 듯하던, 그 뒤쪽으로는 친구들이 과격한 격려를 해주고 있었다.
'야 빙신새끼 쪽팔리게 안뛰구 뭐해'
크억~
'잔깐잔깐.... 야 밀지마밀지마 아~ 안돼~'
그렇게 무려 15분이 지나도록 결국 난 날개를 달지 못하고 튼튼한 두발로 엉금엉금
기어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었다.
인정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그때 힘이풀려서 다리가 후들후들하던 기억은, 30-2번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
는 지금과 비슷... 똑같은 느낌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찾아오는 피곤함.
성형수술 메스를 대서 무거운 추를 양 싸이드에 한개씩 쩸메 놓은것마냥 눈꺼풀이 견디지 못하게
아래로 푸욱 푹 꺼져내려온다.
특별한일이 없으면 뭐 구태여 밀려오는 피곤함에 부딪혀 맞닥뜨리기 보다는
두루뭉실, 몽롱한 기분을 유지해가면서 목적지까지 졸아대는 게으름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쿵- , 쿵-
'아우~ 시바. 뭐야 이거!!!!'
확연히 표나게 질겅질겅 껌을 씹어대는 모양새나. 썬그라스에 가려진 각진 얼굴의 이목구비가 꼭
청량리 588을 나와바리(구역)로 아가씨들 등쳐먹는 기둥서방 처럼 생겨먹어갖구 버스기사가 운전도
참 지랄같이 하신다.
좌회전, 우회전 범위에 운전대를 크게 휘둘러대는 통에 원심력에 의해 내몸은 이리비틀 저리비틀거리면서
차창에 머리를 꽝꽝 찌어대는 쪽팔림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급정차를 해서 차를 세운다.
버스승객에 대한 봉사정신이 아주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버린 불쾌감이 이쯤되어서 한숨으로 토해져 나오고
있을쯤....
허걱!!!!
출입문이 열리면서 그녀가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아직도 비몽사몽간에 둔감하던 말초신경계를 순식간에 잠식시켜 버리는 그녀가 내눈에 처음 비추어졌을때
처음엔 그녀가 수녀님인줄 알았다.
화장기 없는 청초한 얼굴에 회색 원피스차림의 단아함의 이미지.
그모습은 마치
중세시대 이른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 안개사이로 멀리에서 들려와 오랫동안 은은히 이어지는 종소리가
목가적인 농촌풍경을 살포시 감싸안아쥐는 평화로운 어느날, 소리없는 발걸음을 재촉해 성당 한쪽에 근엄한
모습의 신부가 차가운 마루바닥에 두손모아 원죄를 사하기 위해 기도드리는 단상에
샬롬! 사랑의 평화보다도 더 아름다운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의 그것과 같았다.
내눈엔 그렇게 보였다.
겨우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났을때에 그녀는 내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에이 내 옆좌석으로 가지.
힐끗힐끗 얼굴이라두 봐두게....
여.
정류소 의자에 먼지가 너무 많아서 앉아있을 수가 없다.
빨리 버스가 도착했으면 싶다.
하루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려서 그런지 몸이 너무도 피곤하다.
그러고보면 이렇게 피곤하던 기억이 예전에도 한번 있었지 아마?
여름철 휴가기간 이였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으로 여행을 가기로 계흭을 잡았을때
문론 '다 큰 처녀들'이라는 수식어가 족쇄처럼 따라붙는 장애물을 아삼육 멤버(둘도없는 친한사이) 들의 끈적
끈적한 거짓말로 집집마다 혀를 둘러내놓고는 짐을 꾸렸었던 날.
혹시알아? 여행중에 근사한 남자들과 동행을 하게되는 행운도 더해질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 명산으로 이름난 강원도의 어느산 정상까지 다리품 팔아서
올라간것 까지는 좋았는데.
시원한 물한잔을 마시려고 가방을 뒤적거리면서
'어? 내가분명 여기에다가 넣어 뒀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이번 여행비로 모아놓았던 돈지갑이 보이지가 않았고 대신, 가방 밑바닥 길다랗게 찢어진 칼자국
을 발견하게 되었다.
배도고프고, 춥고, 힘들어 퉁퉁부어오르는 다리를 매만지면서 끝도없이 구불구불한 강원도 산기슭을 걸으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밤하늘이 무서워 훌쩍훌쩍 울어대던 기억.
'에이그 철딱서니 없는 지지배들'
'뭐가 어쩌구 어째? 시골 친구네 친척집을 가? '
털털거리는 용달차 짐칸에 실려서 작은 마을 파출소에 탈진직전의 상태로 쇼파로 잠들어있던 우리를
새벽에 깨우고 있는 부모님들은 슬리퍼, 잠옷차림에 가까웠다.
'엄마~'
'뭘잘했다구 엄마이름은 불러 이년아~'
나두 울구
엄마두 울구.....
끔찍했던 그때당시의 피곤하던 기억이 지금의 것과 그리틀리지 않게... 비슷한 느낌이다.^^*
저기에 30-2번 시내버스가 보인다.
직업적 피해의식일까?
아니면 투철한 직업정신인지.
저렇게 운전하면 아이들이 많이 위험할텐데...
점점 가까워지는 버스가 너무나도 난폭한것 같다.
신호등도 무시하고, 학교건물이 바로 옆인 횡단보도에 속력을 줄이지도 않아가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다가
결국은 정류소앞에서 급정차를 해버린다.
앞문이 열리고 차에 올라타면서 난폭하게 운전하는 아저씨의 얼굴부터 먼저 보게 되는데
생긴것도 꼭 깡패아저씨같이 무섭게 생겼다. 치~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요금함에 버스비를 지불하고, 그래도 오후 러시아워를 한참 비켜간 시간이니까
빈좌석이 많이있다. 피곤하니까 빨리 앉아야지 하면서 버스안을 한번 휘 둘러보는 순간.
어머!!!!
순간적으로 내눈에 확 들어오는 남자가 있다.
제일뒤에서 앞에 앉아있는 사람.... 이유가 뭐였지?
단정한 용모도 아니구, 특별하게 미남얼굴도 아닌것 같구, 또.... 또..... 허걱!!!
내가 뭐에 단단히 홀렸나보다.
그 많은자리를 두고 난 피곤함도 잊은체 저남자 모습만 은근히 쫒아 바로앞에까지 와 버렸다.
이제서야 정신이 번쩍들어서 나도모르게 그남자 앞자리에 앉아버렸다.
에이 옆자리로 갈걸....
힐끗힐끗 얼굴이라도 봐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