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세번의 사랑 (2) - 사랑의 시작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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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오리엔테이션 있는 날이니까 모두 체육복들고 온나. "
Orientation :
【동물】 귀소 본능; 【생물】 정위(定位)
【심리】 소재 인식 ((자기와 시간적공간적대인적 관계의 인식))
(신입생이나 신입 사원 등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환경 적응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도하는 일.
그러나 우리나라 오리엔테이션의 뜻은 사전과는 달리 두가지가 더 있다.
먹고 노는것과 맞고 우는것,
먹고 노는것은 대학생들의 MT때나 적용되는것이고, 그 이하의 학생들에게는
오직 맞고 우는것이 다이다.
" 체육복 다 갈아 입었으면 책상을 다 뒤로 밀고 줄서라. 책상 밀때 끄는 소리
내지말고. "
책상소리를 왜 내면 안되느냐?
그건 교무실에 이것이 알려지면 않되기 때문이다. 선배들의 오티는 비공식화
되어있고 알려지면 징계를 받는다. 그걸 알기전에 우리는 오티의 힘듦을 먼저
느껴야했다.
" 오늘은 않때린다. 일단 업드려 받쳐라. "
설마 한국 사람치고 업드려받쳐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설명 않하겠다.
시간이 흐르고 땀이 이마를 흘러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선배들은 칠판에다가
뭔가를 열심히 쓸뿐 일어나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팔도 떨리고, 다리도
떨리는데 한명이 잠시 무릎을 꿇었다.
" 무릎 안펴나? 이것들이. 아직 사태 파악이 않되나보네. 알았다 시간 더
늘인다. "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얼굴에 오기가 떠 올랐다. 선배라고 해봐야 한 두살
정도 차이가 나는건데 너무 하다 싶은거다. 30살 언니한테도 반말 쓰는데
제네들에겐 무조건 '다'나 '까'로 대답해야하는 여기는 거의 군대인것이다.
우리 작은언니 불러다가 주사라도 한방씩 놓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우리는
선배들의 호령에 따라 다음 체벌로 넘어갔다.
'오토바이'
무릎을 의자에 앉은듯 꺾고 팔은 앞으로 뻗고 그리고 부동자세로 서있으란다.
엉덩이가 내려가면 선배가 뽑아든 밀대자루로 툭툭하며 친다. 올라가면 허벅지
부분을 내려친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주먹을 지고 있는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렇게 한동안 있고 나서 선배가 말한다.
" 일어나. "
그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얼른 몸을 폈지만 다리의 후들거림은 그대로였다.
" 오늘은 간단하게 마지막 오리탕으로 끝내자. "
' 오리탕 '
손은 귀를 잡고 쪼그리고 앉아 교실을 도는거다. 20바퀴돌란다. 20바퀴가
그렇게 많은 양이라는것을 처음 알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꽥꽥소리를 내란
말이 없었던것이다.
부끄러워서냐구? 천만에 걸으며 숨도쉬기 힘든데 소리까지낸다는것은 사람으로선
불가능한 일이다.
쪼그리고 걸어가는 나의 다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앞의 사람으로부터
조금만 뒤쳐져도 뒷사람에게 뒷 사라무릎에 찍히고 만다. 그들도 멈출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20바퀴를 다 돌고 주저앉는 우리에게 선배들이 말한다.
" 일나라! "
땀에 젖은 교복 블라우스가 약간씩 식는것을 느꼈다.
" 오늘은 간단하게 끝내자. 가방챙기고 가자. "
우리는 선배들의 뒤를 따랐다. 교복을 갈아 입고 말고할 결를도 힘도 없었다.
선배들은 육교 앞에 섰다.
" 선배님! 먼저가겠습니다! "
힘은 빠져도 선배에게 인사는 해야했다.
" 어딜가노. 따라온나. "
우리는 우르르 육교를 건너고 못골 시장안에 있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그 다리로
육교를 건넌걸 보면 난 아마 초인인가보다. 걸어도 걷는것 같지 않고 흐느적
거리는 다리를 앞으로 옮겨 놓는것 같았는데, 어느새 중국집에 들어와 앉아있다.
" 아주머니! 여기 짜장면 인원수대로 하구요. 탕수육 작은거 두개 주세요."
우리 앞에 놓인 짜장면과 곧이어 나온 탕수육을 맛있게 먹었다.
" 수고했다. 힘들제? 많이 무우라. "
선배들이 곁에서 음식먹는걸 방해한다. 누구때문에 힘든건데, 우리가 RCY에
들었지 폭력서클에 들었나?
R.C.Y
청소년적십자 [ 靑少年赤十字 , Red Cross Youth ]
설립연도 : 1919년, 한국(1953년)
구분 : 봉사단체
소재지 : 서울 중구 남산동 3가 32
설립목적 : 사회 이해, 타인의 복지에 대한 관심, 인류를 위한 책임감 강화
주요사업 : 봉사·보건·친선·심신수련 및 국제교류
규모 : 전국의 남녀 중·고교, 직장 및 대학 조직
이런 선행의 취지들은 다 어디로가고 후배들 벌주고, 밥먹이고, 대체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 젠장. 젠장. '
" 한 그릇 더물래? "
어느새 비워진 나의 그릇을 보며 한 선배가 묻는다.
" 아닙니다. 선배님. 괜찮습니다. "
될수있는데로 힘들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선배에게 말했다.
" 맞나? 그래도 배고프면 더 무라. "
" 아닙니다. 배부릅니다. "
에이! 씨! 잘못하면 울번했다. 나의 비굴함을 인정한다. 역시 선배란 무서운거다.
회식이 끝나고 중국집을 나서서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갔다.
" 선배님! 먼저 가겠습니다. "
허리숙여 인사하고 난 다시 육교를 건넜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가
오자 힘들게 올라탔다.
맨 뒷좌석으로 가서 앉는데 털썩하고 누군가 곁에 앉는다. 곁눈질로 옆을
보니 자리도 많구만. 이놈 변태 아닌가? 무릎을 보니 우리학교 교복이다.
" 내가 델다 줄께. "
고개를 올려 얼굴을 보니 같은 서클 동호다.
" 대려다 주긴. 너도 힘들텐데. "
" 야~! 그래도 니 오티 잘받데? 내가 거기에 반했잖아. "
반해? 이 녀석 나랑 사귀자고 말하는거잖아?
창밖을 보는척 동호의 얼굴을 봤다.
음. 잘생겼군, 송승헌은 못되도, 송승언은 될정도다. 다리 길이를 보니
키도 크고, 흐흐. 결국 난 남자친구가 생기는거다. 우리언니들은 학창시절
남자친구에 대한 추억이 전혀없다. 그리고 그들은 아빠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다.
' 엄마! 감사합니다. '
이렇게 엄마에게 감사해보기는 처음이다. 다시 유리창을 통해 나를 봤다.
피부도 흰편이고 양볼의 발그레한 붉은기는 건강함을 보여준다. 약간 곱슬인
갈색 머리는 자연스럽게 어깨를 덮고 마르지 않은 몸이 딱 보기 좋다.
" 니 살좀 빼야겠다. "
" 응? "
" 다리봐라 딴 아들 두배네. 오티 한두번 더 받으면 딴 아들 세배 되겠다. 마! 서클 그만둬라. "
헉!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할수가 있는건지.
" 진짜 그만두라고? "
" 농담이지. 그만두면 자주 못 보잖아. "
나를 놀리나 보다.
' 다음 정류장은 수영교차로입니다. '
이럴수가, 두 코스나 더왔다.
" 아저씨 내려요.! "
뒷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발을 내어 딛으려는데 발은 가지 않고 몸만 앞섰다.
' 철퍼덕! '
움직이지 않는 다리 덕에 제대로 뻗었다.
" 야! "
놀란 동호가 나를 부축해 일으켰다.
내 얼굴은 물론 홍당무가 되어있었다.
" 괜찮나? "
" 시끄럽다. 빨리 내리자. "
버스 기사는 빽밀러를 통해 우리를 보고있고 우리는 어깨동무를 한체 가방을
챙겨 내렸다.
버스가 출발을 하고 버스의 승객들은 웃음을 머금고 나를 내려다 봤다.
" 집이 이 근처가? "
" 두코스 더 왔다. "
" 골고루한다. 그럼 또 걸어야되잖아! 힘들어 죽겠구만. "
" 누가 데려다 달라드나. 느그집에 가라메. "
난 몸을 휙돌려 길을 가려 했다.
' 헉! 이 방향이 아니네. '
멋쩍지만 몸을 돌렸다. 바로 앞에 동호가 서 있었다.
" 와 같이가자고? "
동호의 말이다.
" 아니. 이쪽으로 가야 된다. "
" 같이 가까? "
" 맘대로 해라매. "
지하철을 만들기위해 좁아지 인도를 둘이 나란히 걸었다. 낭만? 다리의 힘듦
때문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빵물래? "
동호가 황태자 빵집 앞에 멈춰서 물었다.
" 사주면 먹고. "
그 옆에 담의 한 모서리가 앉을 정도로 나와있었다.
" 앉아있어라. "
동호가 생크림 무스 2개를 사가지고 왔다. 우린 잠시 다리를 쉬며 숟가락으로
생크림을 퍼먹었다.
" 그래 먹고 또 먹나? "
" ---? "
사줄때는 언제고 먹는걸 구박하다니.
" 니 다무라. "
컵을 동호에게 내 밀었다.
" 농담이다. 그냥 무라. 너무 말이 없어서 말걸라고 한거지. "
" 니는 말걸라고 하는게 시비를 거냐? "
" 시비 아니고 농담이라니까. "
집앞에 도착해서 손을 흔들어 그를 보내고 흐느적 거리며 3층을 올라섰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밥을 챙겼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꽁치김치찌개의 얼큰한
냄새가 그냥 잘수 없게 만든것이다.
부엌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에 넷째언니가 방문을 열었다.
" 이렇게 늦게와서 무슨밥이냐? "
" 배고프니까 그렇지. "
" 그러게 누가 서클들라더나? 그 시간에 공부 열심히해서 대학갈 준비나하지."
" 시끄럽다. 들어가라. "
언니가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찌개에 푹담궈낸 숟가락을 입으로가져가려는
내 뒷퉁수로 손바닥을 날렸다.
" 이기 어디 언니보고 이래라 저래라고? "
" 어언니야! "
" 밥 다묵고 커피나 끓여온나. "
" 또 밤샘하나? "
" 아니. 커피 먹고 잘거다. "
아주 천천히 천천히 밥을 먹었다. 언니가 잠들기를 바라며. 그리고 밥을 먹고
나서 그릇을 개수대에 소리 않나게 넣었다.
" 밥 다 먹었으면 커피 끓여온나. "
언니의 외침에 냉커피를 탔다. 항상 설잠을 자는 나의 언니를 위해 이정도는
할수있지. 확 침뱉아 버릴까보다.
다음날 단실에 가보니 동기들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 니 동호꺼라매? "
' 앵? '
동호 주위에 몰려있는 애들이 나를 은근한 눈으로 본다.
" 뭔 동호꺼? 어제 집까지 바래다 준게 단데. "
" 이야~! 집까지 데려다 줬다고? 우와~~! "
뭐가 '우아'고 뭐가 '이야'인지. 어쨌든 동호는 그날부터 공식적인 나의 님자친구가
되었다. 그 이후 난 정말 조신하게 살아야했다.
아이들과 노래방을 가게되면 다른방과 조인을 해서 놀기 마련인데 어떻게
된게 그렇게 놀기만하면 그녀석에게 들켜서 호되게 야단을 맞는다.
" 니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데, 내랑 사귀기로 해놓고는 딴 아들이랑 노래부르고 노나? "
" 그러는 니는! "
동호는 버젓이 노래방 부킹해가지고 잘놀고 맛난것 사주면서 미팅도하고 다닌다.
근데 왜 난 이러고 살아야하는건지 알수가 없다.
" 임마! 남자랑 여자랑 같나? "
" 웃기고있네. 치아라! "
" 함만 더 그라면 학교 전체에 소문내뿐다. "
기가찰노릇이다. 이젠 학교 전체에 소문을 낸다고? 저는 지 맘대로 하고 다니면서? 불같이 화가 났다.
" 알았다. "
" 알았제? 가자 떡볶이 사주께. "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우린 그렇게 일년을 사귀었다. 학교에서 내가 동호의 여자친구라는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는 학교 선생님도 내가 수업시간에 창밖을 보고 있으면
" 어이! 니 또 동호 생각하나! "라고 말하실 정도였다.
그렇게 우린 2학년이 되었고 난 1학년 반학기가 넘어서 더욱 굵어질 내 다리를
생각하여 서클을 그만두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받는 오티도 지겹고, 공부에도
지장을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동기들은 그만둔다고 질책했지만 더 이상 이런
서클에 적을 두고싶지 않았다.
동호는 잘했다며 나에게 오뎅과 만두를 사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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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 들었나? 동호가 니말고 딴아 사귄다데. "
2학년 반학기가 넘어서이다.
" 설마. "
난 믿지 않았다. 예전처럼 매일 전화오는것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2번은 꼬박 꼬박
전화가 오는 동호인데. 무슨소리. 그런다고 넘어갈줄 아나보지? 그냥 미팅한것
가지고 친구들이 나를 놀리는걸거다.
몇일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육교앞 정류장에 서있는데 육교에서
내려오는 동호와 그옆의 1학년이 보였다.
동호와 내눈이 마주쳤다. 동호는 거리낌 없이 내앞에 멈춰 섰다.
" 인사해라. "
" 안녕하세요. "
1학년의 인사다.
이름표에 보이는 기계과다.
" 뭐하는 짓인데?"
" 둘이 처음보니까 인사하라고. "
" 왜 그래야 되는데? "
" 이제부터 내랑 사귈 아거든. "
능글한 동호의 말이 더 속상하게 했다.그들이 탈 버스가 먼저 도착했다.
" 나중에 전화하께. "
손을 흔드는 동호의 옆에서 여자애가 허리를 찌른다.
버스에 탄 그들은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즐거운듯 얘기를
나눈다.
집에 도착해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체 이불속에 들어갔다. 화가나니 배도 고프지
않았다.
누군가 내 등을 다독거렸다. 역시 언니가 내가 이상하니가 무슨 일인지 물어
보려는가보다. 무슨 말부터 할까를 생각하며 뒤척이듯 뒤로 돌아누웠다.
' 윽! 발! '
언니가 의자체 끌고와서 발로 내 뒤를 누르는거였다.
" 안자면 커피한잔 타오지! "
" 어언니야! "
결국 난 벌떡 일어나 울고 말았다.
" 미칫나? 뭐 그거갖고 울고그라노. "
언니는 다시 의자를 끌고 컴퓨터책상으로 갈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조례가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기계과 1학년 반앞으로 갔다.
마침
그반 아이 한명이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 그 서봐라. "
" 예? "
접어올린 치마가 양쪽 엉덩이를 꽉조으고 있고 뽕가득 넣은 머리를 틀어올려
고무줄로 묶은 우리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을것이다.
" 무슨일이신데요? "
" 느그 반에 미진이 있제? "
" 예. "
" 가서 내가 좀보자칸다케라. 내 이름 말하면 알거다. "
" 예. "
그 아이가 반에 들어갔다가 잠시후 나왔다.
" 나오기 싫다는데요. "
약간 열이 받기 시작했다.
" 다시 가서 나오라케라, 않나오면 김수진이 니까지 가만안둔다. "
얼른 그 아이의 이름을 이름표에서 보고 말을 이었다.
" 예. "
아까보다 더 새파래진 얼굴로 반으로 돌아갔다.
잠시후 둘이 같이 나왔다.
" 됐다. 수진이는 들어가봐라. "
수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으로 들어갔다.
" 따라온나. "
그 아이를 애워 싸듯이 하고 매점 뒤편으로 가서 섰다.
" 언니 잘못했는데요. "
기가 찼다.
하지만 잘못한걸 알겠다는데야 더 이상 할말이 없잖은가. 하지만 전혀 잘못한걸
모르는 목소리였다.
" 뭘 잘못했는데? "
" 언니랑 동호오빠랑 사귀는거 아는데, 동호오빠가 사귀자해서 어쩔수 없었는데요. "
따지는 투다.
" 동호가 먼저 사귀자 했다고. "
" 예. 언니한테는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동호오빠 좋아하는건 않미안한데요. "
' 찰싹! '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뺨을 맞자 얼굴에 독기를 세우는 미진의 얼굴을
보고 친구들이 말한다.
" 눈 깔아라. 어디 꼴치보노. "
" 뭐 잘했다고 말대꾼데. "
대체 그럼 미안한게 뭐란 말인가? 있는 자리에서 동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니가 야 한테 먼저 사귀자 했나? "
" 지금 어디있는데. "
미진의 반아이들이 동호에게 알렸나보다.
" 왜 걱정되나? "
" 그래. 지금 뭐하는건데. 잘 지내다가. "
잘지내기는 했지. 지가 뭘하고 다니든 화 한번 않내고 잘 지내줬지. 그래도
사람이란 한계가 있는거다. 학교에서 저랑 나랑 사귀는것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행동을 할 수가 있는지.
" 내가 묻잖아! 니가 야한테 먼저 수걸었는지! "
나의 목소리가 더 격해졌다.
" 오빠 매점 뒤편에 있다는데요. "
그의 핸드폰에서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내 갈테니까 그대로 있어라. "
휴대폰을 닫았다.
" 뭐라데? "
" 일로 온단다. "
친구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 가시나 순진하기는 금마 부르면 어쩌는데. 우리손에 끝내야지. "
맞은 뺨을 양손으로 쥐고 땅을 노려보던 미진이 곧 달려온 동호의 발자국
소리에 쪼그리고 앉아 울기 시작했다.
" 오빠~! 흑흑흑 "
' 짜아아악! '
동호가 가까이 오는것을 느낌과 함께 그의 손이 내 뺨을 갈겼다. 아마 소리만
봐도 알것이다. 미진이가 맞은것과 강도가 다르다는것을.
미진도 흐느끼던것을 멈추고는 우리 둘쪽으로 돌아봤다.
" 다가? "
맞은 뺨의 반대 쪽으로 넘어지는것을 친구들이 부축했다.
" 니가 깡패가? 아아들 몰고와서 뭐하자는건데? "
" 이기 다가? 내가 물어보잖아! "
꾹꾹 눌러내린 목소리로 다시 물었따.
화끈거리는 뺨에 손을 댈수가 없었다. 그저 부동자세로 그에게 물어볼 뿐이었다.
그는 말없이 미진이를 일으켰다.
" 알았다. 비키라. "
그를 밀치고 가방도 챙기지 않은체 집으로 갔다.
벽마다 달려있는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운것을 말할것도
없었다.
그리고 배신감.
내가 좋아 따라다녔다면 말을 않한다. 지가 반했다 해놓구선. 뺨한대 때리고
혼자 울고있어야만하는 어리숙함이 너무 미웠다.
이제 어쩌나?
3일간 난 학교를 갈수가 없었다.
" 학교 선생님이 이런거냐? "
" ---. "
" 짐승도 손으로 때리지 않는것인데 이렇게 뺨을 치냐? "
" 아빠 부딪힌거예요. 얼굴 안간게 다행인데. "
울어도 울어도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 씨이... 다른 더 멋진놈 만나서 복수할끼다. 씨이이이'
3일후 학교에 갔을 때 집에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친구들이 나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 안녕? "
" 괜찮나? "
괜찮을리 없었다. 그리고 소풍이 있고 수학여행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나를
우울모드에서 꺼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함께 즐겁게 놀다가도 내가 오면 놀이를 그만두면서 조용해진다.
내 이마에 ' 나는 실연당한 아이입니다. '라고 써있기라도 하는것일까?
그리고 나의 복수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데쉬라도 할려고하면 그들이 나를 피했다.
난 역시 실연을 크게 당한 아이였던것이다.
선생님들 마저도 우리반에 와서 내 눈치를 보는거다.
가끔의 버릇대로 창 밖을 내다 보고있으면 분필을 던지며 정신차리게 했던
선생님들의 행동은 어디가고 내버려 둔다. 어느새 정신차려보면 수업이 마치는
종소리가 들린다.
' 저게 선생인지. '
오기가 나서 공부를 열심히했다. 그렇게 2학년과 3학년을 보내고 졸업식이 다가왔다.
" 엄마! 올꺼죠? "
"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긴 뭘가냐? "
이러말을 하는 엄마이지만 언니들의 졸업식엔 모두 참석했었다.
" 그래도 나 상도 받는데. "
상이라고 해봐야 환경미화상이다. 어쨌든 명목상 주는것이긴 해도 교내에서
선생님이 주는건데 사진은 찍어야 할것 아닌가?
" 상은 너만 받니? 그날 아빠랑 제주도 출장간다. "
" 아빠가 가는가는 출장에 엄마는 왜가는데? "
" 제주도 구경하고 싶어서. "
저러는 이유가 있다.
난 대학에 떨어졌다. 좀 높이 적어 넣긴 했지만.
언니들처럼 고대나 연대 그런대 가고 싶었다. 하지만 공고를 나와서 4년제에
들어가는것은 아주 힘이 든다. 3학년에 진학반에 들기는 했지만 3년 내도록
입시만 준비하는 학생들과 3년중 1년만 공들이는 학생과는 차이가 날수 밖에
없는것이다. 선생님이 2년제 넣으라고 할때 넣을걸 그랬다.
지금 남은 학교들은 정말 공부 못해도 갈수 있는 곳들뿐이다. 결국 대학도
못들어간 공고나온 딸의 졸업은 볼 생각이 없고 엄마의 아픈맘을 달래려 큰언니가
돈을 보태어 제주도에서 시작하는 아시아 일주를 할셈인거다.
" 엄마. 나 티켓봤는데. "
" 봤으면 왜 묻냐! "
" 그럼 내 졸업파티는? "
" 셋째 졸업때 같이하지뭐. 주제에 졸업 파티는. "
엄마는 비아냥 거리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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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3개월 남겨두고 기쁜소식이 들려왔다.
" 니 들었나? "
조심 조심 말하는 친구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되물었다.
" 뭐? "
" 가들 헤어졌다데. "
'가들'이라 미진과 동호커플의 예기가 분명하다.
" 왜 헤어진다데? "
내가 관심을 보이자 아이들이 내 주위로 몰려와 통쾌하다는듯이 말했다.
" 미진이가 같은 학년 김주수하고 손잡고 가는걸 동호가 봤는가보데. 동호가
다음날 미진이 한테 가서 따지니까 미진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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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이제 싫어요. "
" 싫은 이유가 뭔데? "
" 오빠는 너무 나이 많게 느껴지고, 주수는 동기라서 편하고 또 잘해줘요."
" 한살차이가 뭐가 많은데. "
" 제가 많게 느껴지면 많은거지 오빠랑은 상관 없잖아요? "
동호는 당연히 주수를 찾아갔다.
가늘게 생긴 팔과 긴 다리. 한방에 나가 떨어질것 같은 주수를 예전의 매점
앞에 불러세웠다.
" 졸업전이신데 몸 아끼셔야지요. "
주수의 말이다.
" 니는 선배도 몰라보나? "
" 지금 선후배로 만난게 아니라 남자대 남자로 미진이 때문에 만난거잖아요. "
" 좋다. 남자대 남자로 붙어보자. "
방과후라 아이들은 없었다.
서로의 주먹이 오가기전에 주수의 주먹에 동호는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 여자 뺨도 때리셨다면서요. 나중에 미진이도 그렇게 할까봐서 제가 사귈겁니다. "
턱을 끌어안고 구르고 있는 동호를 놓아둔체 주수는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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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간에 아아들도 별로 없었을건데. 그거 어떻게 알았냐? "
" 매점 아줌마가 봤다더라. 오늘 점심에 우동국물 퍼주면서 저번에 여자두명
두고 싸우던애가 맞더라고 예기하대. "
병신 후배 한테 맞고다니냐? 하긴 남의 눈에 눈물나게 했는데 니들이 잘될것
같았냐?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쓸함이 입가에 남는다.
' 병신~! '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 봤다
" 잠시만 나와봐. "
" 왜? "
" 잠깐이면 되는데. "
난 지금 이력서 쓰느라 바빴다.
대학을 가지 않기로한 지금 취업을 해야하는것이다. 선생님의 추천에 따라
오늘 면접을 위해 교복도 깨끗이 입고 왔고 꼼꼼한 글씨로 이력서도 적었다.
" 다 됐다. 잠깐만 기다리라. "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고 두번 접어서 이력서용 봉투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친구를 따라 나가보니 저만치 동호가 서 있었다.
제길. 또 이 녀석들 쓸대 없는 짓들이다. 돌아서려는걸 아이들이 밀쳤다.
" 그러지말고 가봐라. "
속도 모르는 애들은 참견만 할 뿐 그 후의 사태를 예견하지 않는다. 저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뻔히 알면서.
난 떠미는 아이들의 힘에 부쳐 어쩔수없이 동호에게 갔다.
" 왜? "
" 예기 좀하자. "
" 할말 없다. "
" 있을지도 모르잖아. "
" 해봐라. "
" 여기서? "
얼굴도 보기싫어 창가에 턱을 고은체 내려다보며 예기했다.
" 미안하다. "
" 많이 미않하나? "
" 그래. "
" 그럼 한대만 맞아라. "
그에게서 잠시 말이 없다.
애들 앞에서 맞으려니 쪽팔리나보지. 헹.
" 알았다. "
그의 답이 떨어지고 얼굴을 갈기려고 돌아서는데 그녀석의 한 볼은 터질듯이
부어있었다. 그리고 불그스름하고, 푸르스름한, 멍기가 얼굴을 덮어 송승언의
얼굴은 어디론가 가고 없고 떡이 되어 있었다.
" 이씨! 얼굴 낳거든 다시 온나. 때릴대가 없잖아. "
대체 어떻게 맞았길래 얼굴이 저렇게 되었을까? 저러다가 면접도 제대로 못보겠다.
대학교 면접도 면접인데, 아니다. 내가 왜 저녀석을 동정하는것인지. 나도
모르게 그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 울지마라. "
" 시끄럽다. 억울해서 우는거다. 니 얼굴 낳고 나면 제대로 때릴테니까 각오해라. "
이 말은 다시 그를 본다는것인가?
또 한번 나의 어리석음을 느끼며 흘린 눈물을 닦으며 면접을 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