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지는 시 모음>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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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시 모음>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외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시인, 1961-)
+ 묵화(墨畵)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시인, 1921-1984)
+ 징검돌
개울을 건널 때
등을 내어 준
돌이 아파할까 봐
나는 가만가만 밟고 갔어요.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가랑잎의 몸무게
가랑잎의 몸무게를 저울에 달면
'따스함'이라고 씌어진 눈금에
바늘이 머무를 것 같다.
그 따스한 몸무게 아래엔
잠자는 풀벌레 풀벌레 풀벌레……
꿈꾸는 풀씨 풀씨 풀씨……
제 몸을 갉아먹던 벌레까지도
포근히 감싸주는
가랑잎의 몸무게를 저울에 달면
이번엔
'너그러움'이라고 씌어진 눈금에
바늘이 머무를 것 같다.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 따스한 것을 노래함
마치 한 개의
돌복숭아가 익듯이
아무렇지 않게 열(熱)한 땅기운
그 끝없이 더운
크고 따스한 가슴……
늘 사람이 지닌
엷게 열(熱)한 꿈으로 하여
새로운 비극을 빚지 말자.
자연처럼 믿을 수 있는
다만 한 오리 인류의 체온과
그 깊이 따스한 핏줄에
의지하라.
의지하여 너그러이 살아 보아라.
(박목월·시인, 1916-1978)
+ 함박눈
유난히 눈이 많던 어느 해 겨울밤
눈길을 밟아 다녀간 도둑 있었다
흰 쌀을 흘리며 달아난 발자국이
광에서 사립문 밖으로 선명했다
뒤따라가려는 아버지 말리신 건
욕심 많다 소문났던 할머니셨다
고맙게도 밤새도록 함박눈 내려
그 발자국을 모두 지워버렸었다
(강인호·시인)
+ 겨울 편지
그대가 짠 스웨터
잘 입고 있답니다.
입고, 벗을 때마다
정전기가 어찌나 심하던지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곤두서곤 합니다.
그럴 때면 행복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 순간 순간마다
뜨거운 그대 사랑이
내 몸에 흐르고 있음이
몸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김현태·시인)
+ 따뜻한 얼음
옷을 껴입듯 한 겹 또 한 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안에 숨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박남준·시인, 1957-)
+ 모닥불
온 세상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시장 바닥
칼바람 속
노점상 몇 사람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때늦은 점심 식사를 합니다
도란도란 얘기꽃 피우며
맛있게 밥을 먹습니다
한 폭의 따뜻한
풍경화입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살짝 끼여들고 싶습니다
(정연복·시인, 10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