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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묵상 시 모음>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 외

도토리 조회 9,30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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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묵상 시 모음>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 외  

+ 죽음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나는 왜 내가 존재하는지, 내가 어떤 소용이 있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모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죽음이다.
(도스토예프스키·러시아 소설가, 1821-1881)


+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나는 내가 죽음이라는
속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세월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늙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도 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금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집착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틱낫한·베트남 승려, 1926-)


+ 귤꽃 앞에서

어떤 시인은 죽음을 일러
모차르트를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이 아침 나도
한 그루 귤나무 앞에서 아부한다

죽음은
나로부터 네 향기를 앗아간 것이라고…
(임보·시인, 1940-)


+ 꿈의 귀향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조병화·시인, 1921-2003)


+ 명멸

하늘에서 별 하나 사라졌다
성냥개비 하나 타오를 만큼
짧은 시간의 명멸(明滅)
사람들 꿈꾸며 바라보던 그 별이다
아이들도 바라보며 노래하던 그 별이다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다만 몇 사람 시무룩이
고개 숙였다 들었을 뿐이다
(나태주·시인, 1945-)


+ 신의 은총

여명의 햇살로 왔다가
노을로 지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

사함 받지 못한 잘못도
탕감 받지 못한 빚도
깨끗이 청산이 되는 관문

회한을 잊고
용서와 화해의 끈이 되어
인간의 기억 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사랑뿐

남은 자는
먼저 간 자의 제자가 되어
살아볼 만한
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
(한정숙·시인)


+ 예고 없는 죽음

주말 산행을 준비하던 그는
배낭을 짊어질 수 없는 운명임을 몰랐었다
정든 식탁에 앉아 발라내는 생선가시
최후의 기쁨임을 몰랐었다

이 세상에 올 때는
자궁 여는 긴 시간 필요했지만
떠날 때
찰나의 비명이면 충분하였다

먹구름 덮지 않아도
종말의 비 천장에서 퍼붓고
그 비에 젖지 않을 영혼
아무도 없었으니

오늘 눈을 감기 전
발걸음 굳어버리기 전
사랑하는 이 손을 잡고
숲 속에 피어있는 들꽃 보러가자
(손희락·평론가 시인, 대구 출생)


+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

불에 타면 한 줌의 재요
땅에 묻히면 썩어 한 줌의 흙인 것을
뭘 그리도 움켜잡으려 하십니까.

움켜 쥔 주먹을 풀어 돌리면
낙원이 꽃피고,
지구 표피에서 얻은 것을 함께 나누면
훗날 그리로 귀환할 때
우주와 함께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값진 보화도 쌓이면 썩고
재화에 눈먼 이는
죽음이 다가와 그것을 털려 할 때
뼈아픈 후회밖에 없을 것입니다.

울면서 온 생을
웃으면서 가볍게 떠나고 싶습니까
좀 벌레가 쏠거나
도둑도 넘보지 못할
영원히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십시오.
(고진하·목사 시인, 1953-)


+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

하느님 한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제 남은 길이 아무리 참혹해도
다 받아들이고 그 길을 따를 테니
제가 죽을 때 웃고 죽게만 해 주세요.

다른 거는 하나도 안 바랄게요.
그때가 언제라도 좋으니
"저, 잘 놀다갑니다."
맑은 웃음으로 떠나게만 해 주셔요.

저도 제 사랑하는 이들께
삶의 겉돌기나 하는 약속 따윈 하지 않을게요.
오직 한가지만 다짐할게요.
우리 죽을 때 환한 웃음 지으며 떠나가자고

"고마웠습니다. 저 잘 놀다갑니다"
그렇게 남은 하루하루 남김없이 불살라가자고.
(박노해·시인, 1958-)


+ 영구차를 타고 가며

찬송가는 요단강을 몇 번 건너고
차는 지상의 신호등에 자주 걸린다
하늘나라 가는 길에도 딱지 떼냐며
취기 돈 문상객 운전사를 독촉하더니
나이가 들면 영혼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치매 걸린 할머니 오래 모셨던 아버지는
이제 교회 안 나간다는 농담에
잠깐 웃음자락 펄럭이고
누워 있는 망자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
영혼의 무게 달아주며 차는 달린다
아, 차라리
망자의 시신을 머리 위에 실을 수 있었더라면

이 순간
죽음에 대한 생각은 굵고
삶은 다닥다닥
고목에 핀 매화이련가
(함민복·시인, 1962-)


+ 사랑만 있다면 인생은 기적입니다

헛된 시간 동안 영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깊은 밤 차갑고 외로운 침대에 누워
평화와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제가 살 수 있을까요?
가슴에 한줄기 희망을 품고서 기다려 봅니다.

저는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믿음도 차츰 사라져 갑니다.
무척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죽음이 가까이 왔습니다.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애원합니다.
따뜻한 손으로 떨리는 제 손을 잡아주세요.

사람에게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그건 사랑일 겁니다.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삭막하고 무의미할까요.

그러나 사랑만 있다면 인생은 기적입니다.
사랑만 있다면 인생은 온통 아름다운 빛깔입니다.
(뇌종양에 걸려 투병 중이던 '크리스'라는 아이가 죽기 2주일 전에 적은 글)


+ 지는 꽃의 말

나는 이제 죽어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요

그런데 나는 죽지 않아요
누군가의 맘속에 살아 있을 테니까요

나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평온한 마음으로
나의 죽음을 받아들여요

한번 피었으니
한번은 지는 것!

이 자연스러운 생명의 이치에
고분고분 따라요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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