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얼굴*7*
유리의향기
조회 1,869
댓글 0
니는 암시랑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먼 된다 잉? 오메, 내 보물단지.\"
장터의 누구도 어머니를 탓하려 들지 않았다. 다른 아낙네들은 오히려 한술 더 떠,
\"인자 대운이 엄니는 고상 다 했소. 고등과를 댕기는 아들이 있는디 머이 꺽정이오. 고상 끝에 낙이 온다등마는, 좋겄능거. 참말로 부럽소.\"
부추겼고 어머니는 더욱 기고만장하여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문이라우, 하문이라우. 인자 나 못 배운 포한은 반절쯤 풀렛소.\"
다만 한 사람 의부만이 그런 어머니를 여간만 눈시려워하지 않았다. 의부는 어머니를 향해 드러내 놓고 쯧, 혀를 차 댔다.
\"보자보자 헝께, 이 여편네가 해도 너무허네 그랴. 지발 속 잠 채레, 이 여편네야. 나가 끝까장 참겐을 안 할라고 그랬는디, 머여? 대핵을 보내? 잉, 그래, 고등과는 그렇다 치고, 니가 먼 수로 대핵을 보내? 아, 천하에 부자들도 자석 하나 대핵 보내면 패가망신허는 판인디 어쩌고 저쩨? 빕새가 황새럴 따라가먼 가랭이부텀 몬자 찢어져!\"
\"오메, 이 냥반 말하는 뽄세 잠 보소. 인자 봉께 식구가 아니고 웬수였구만. 아, 몰르는 남들도 다덜 잘 되얏다고 말 한마디라도 보태 주는디, 멋이라우, 가랭이가 찢어져라우? 그거이 여태까장 한솥밥 묵은 사람이 헐 소린게라우? 의붓자석도 자석인디, 그르케 자석 잘되는 꼴이 배가 아프요?\"
어머니는 아예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아니 이년이 애먼 소리 허는 것 잠 보소. 머여? 나가 시방 배가 아퍼서 그런다고? 허어, 이년이 살인도 내것네.\"
\"왜, 나 말이 틀렛소? 사람이 심보를 바르게 써야제. 심보가 삐틀리먼 되는 일이 없는 법인께.\"
어머니는 기어코 의부의 아픈 곳을 찔렀다.
벌써 오래 전부터 어머니와 의부는 장사에 있어서는 서로 갈라서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비교적 순탄하던 어머니와 의부의 웃녘장사는, 어느 해 겨울 오징어와 명태를 가득 싣고 묵호항을 출발한 배가 풍랑으로 좌초된 후부터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겨울철의 배편이라 는 것이 늘 위험하기 마련이어서 걸핏하면 침몰되거나 전복되는 사고가 뒤따랐고, 그 와중에서 두 사람은 자칫 목숨마저 잃을 뻔한 적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아예 인근 오일장이나 맴도는 해산물 소매업으로 주저앉았고, 의부는 의부대로 이것 저것 다른 사업에 손을 대었다. 돌이켜 보면 의부는 그때부터 줄곧 불운이 떠나지 않았던 셈이다. 급기야 의부는 밀수에도 손을 대었는데, 누군가의 밀고로 배가 닿는 바닷가에서 현장을 급습당하여 고스란히 밀수품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 밀수 사건으로 의부는 재산의 대부분을 거덜냈을 뿐더러 나중에 벌금을 내기 위해서는 그 동안 어머니가 힘들게 마련한 우리 집까지 팔아넘겨야 했다. 그 후로 의부는 이따금 어머니에게서 사업자금마저 빌려 가는 눈치였고, 빌린 돈을 갚지 않아 이번에는 그것이 또 둘 사이에 싸움의 원인이 되곤 했다. 어머니가 다시 집을 마련하는 데는 뜻밖에 오랜 세월이 걸렸다.
어머니나 다른 장돌뱅이 아낙네들에게 그렇듯 선망의 대상이 된 내가 정작 그들을 자신의 치부로 여긴 일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무슨 원죄 의식처럼 가슴 밑바닥에 남아 있다. 어쩌면 그 무렵에 나는 사생아라는 조건보다는 오히려 장돌뱅이라는 출신성분에 대해서 더욱 괴로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다. 당시의 나에게,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온 장터와 거기에 얽힌 기억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일종의 늪처럼 여겨졌다. 굶주림에 대한 동물적인 공포감, 피투성이가 되어서야 끝나는 사생결단의 부부싸움, 개똥처럼 버려진 채 아무렇게나 자라는 아이들,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이 장 저 장을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아낙네들과 거기에 빌붙어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건달패들, 술집 작부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와 술취한 사내들의 고성방가, 노름꾼, 소매치기……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늪이 되어, 내가 거기에서 빠져나가려고 허우적이면 허우적일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도청소재지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나는 더욱 더 뚜렷하게 자신이 빠져 있는 늪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처음 대하는 갖가지 풍물들, 거의 눈이 부셔 바라볼 수조차 없게 만들어 버리는 문화라는 이름의 행사들, '○○○피아노 독주회' '○○○기념전시회' '○○○무용발표회' '○○○초청공연'…… 그것들은 낱낱이 하나의 거울이 되어 남달리 예민한 감수성의 사춘기 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고,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저 어둡고 끈적이는 늪에 빠져 헐떡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보게 했다.
요컨대 나는 처음으로 장돌뱅이 이외의 사회에 눈뜨고, 처음으로 장돌뱅이 이외의 문화를 만나고, 그리하여 장돌뱅이가 사회에서 얼마나 비천한 위치에 있는가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위시한 장돌뱅이 아낙네들의 나에 대한 기대를 견딜 수가 없었다. 막연하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나 선망이 바로 나로 하여금 그들에게서 등을 돌려 그들을 짓밟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 버린 것이었다.
거듭 말하거니와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자신의 출신성분이나 어머니를 위시한 장돌뱅이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무슨 치부로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밑바닥 사람들만이 지닌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낙천적인 분위기만이 먼저 떠오를 뿐이다. 모름지기 그들과 나는 한몸이었으며, 그들이 즐거울 때면 나도 즐거웠고, 그들이 슬플 때면 나도 슬펐다.
내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것은 언제였을까. 어쩌면 그들이 선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이미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것이 아니었을까. 그랬을 것이다. 그들이 선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상 나는 이제 그들과 한몸일 수 없으며, 그들의 즐거움이나 슬픔도 오로지 그들만의 것일 뿐 내 것일 수는 없었다. 그들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낙천적인 분위기마저도 나에게는 단 한 가지의 의미밖에는 되지 않았다.
'치부'
그렇다. 자식에 대하여 그토록 기고만장하여 자만심을 감추지 못하던 어머니마저도 어느 순간 나에게 치부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고백하거니와 어머니를 치부로 여기면 여길수록 나의 죄의식은 더욱 깊어 갔다. 어린 내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본 것도 그 무렵일 것이었다. 그리고 약간 엉뚱한 장면에서 의부의 충고를 이해한 것도.
'빕새가 활새럴 다러가먼 가랭이부텀 몬자 찢어져!'
나는 자신이 장돌뱅이 계층과 또 다른 계층 사이에 두 발이 묶인 채 능지(陵遲)를 당하여 가랑이가 찢어지는 장면을 상상했을 터였다. 물론 내가 당시에 계층이니 하는 어려운 말을 알았을 리 없지만.
만일 내가 좀더 일찍이 사회적 부조리나 계급적 모순에 눈떠, 그것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떼어넘기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훗날 나는 그토록 깊게 병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토록 자신을 허우적이게 하는 저 늪이며 눈부신 거울, 심지어는 어머니를 위시한 장돌뱅이들에 대한 죄의식 ― 그 어느 하나에서도 헤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아니, 방법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한 가지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누구보다도 익숙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