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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 사랑 -원유순-

아리니 조회 3,0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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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기똥풀 사랑 』 - 원 유순

경이는 모처럼 휴일을 맞아 시골 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어요.
아침부터 경이는 마음이 들떴어요. 매일 늦잠만 자던 경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할머 니께 전화를 드렸어요.
\"할머니, 오늘 할머니 뵈러 갈 거에요.\"
\"아이구, 오냐. 그래, 그래. 부지런히 오너라. 내 맛있는 감자 쪄 놓을게.\"
할머니도 경이만큼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할머니 목소리가 전화기 속을 쾅쾅 울리 는 걸 보면요.경이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가 계시는 강원도 평창을 향해 출발했어요. 자동차는 시원하게 뚫린길을 신나게 달렸어요.
\"웬일로 이렇게 차가 잘 빠지지?\"
아버지도 차가 잘 빠져서 아주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걸 보면요.
어머니도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에 눈길을 주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계셨 어요.드디어 점심 때 쯤에 강원도 평창에 도착했어요. 할머니가 계신 곳은 평창에서 자동차로 삼십 분을 더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골길을 자동차가 속도를 늦추고 달렸어요. 온통 산 은 짙푸른 녹색이었어요.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풀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길 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잔뜩 피어 있었어요. 바람 따라 하얀 꽃들은 일렁일렁 춤도 추었어요.
\"아빠,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 가요.\"
경이는 오랫동안 자동차를 타서 조금 지루했어요. 길 가에 피어 있는 하얀 꽃들을 보니 한 번 자세하게보고 싶기도 했구요.
\"그러자꾸나. 아빠도 잠시 내려 맑은 공기를 마셔야겠구나.\"
아버지는 경이 말 대로 길 가에 차를 세웠어요.
\"엄마, 이건 무슨 꽃이에요?\"
경이는 길 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얀 꽃을 가리켰어요.
\"으응, 그건 쑥부쟁이 꽃이다. 이건 아주 흔한 꽃이야.\"
쑥부쟁이 꽃은 동그랗고 노란 술이 있고, 그 가장자리로 하얀 꽃잎이 에워싸고 있 었어요. 장미꽃이나 백합처럼 화려하고 크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참으로 예뻤어요.
\"엄마, 참 예뻐요.\"
경이는 하얀 쑥부쟁이 꽃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 보았어요. 노란 꽃가루가 손가락 끝에 묻었어요.
\"얘는 꽃치고 예쁘지 않은 꽃 봤니? 꽃은 다 예뻐. 난 호박꽃도 참 예쁘더라. 사람들 이 왜 호박꽃도 꽃이냐 하면서 밉다 하는지 모르겠더라.\"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싱긋 웃었어요.
\"꽃 좋아하는 당신이나 그렇지. 아, 오죽하면 애기똥풀물을 손톱에 바를까? 아마도 애기똥풀을 손톱에문질러 바른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걸.\"
\"아이, 당신은...... .\"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에 얼굴이 빨개지며 눈을 흘기셨어요.
\"애기똥풀? 엄마, 그런 풀도 있어요? 이름이 되게 이상하다. 애기똥풀이 뭐야? 애기 똥풀이....... .애기똥을 닮았나? 아이구, 우스워.\"
경이는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우스워 깔깔 웃었어요.
\"얘는, 애기똥풀꽃이 얼마나 예쁜데 그러니?\"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도 함께 말씀하셨어요.
\"그래, 우리 경이는 애기똥풀을 모르는구나. 애기똥풀꽃이 예쁘긴 예쁘지.\"
어머니, 아버지 말씀에 경이는 애기똥풀이 궁금해졌어요.
\"어떻게 생긴 풀인데요?\"
\"흠, 이 근방에도 있을 텐데..... . 들이나 얕은 산 기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풀이거 든.\"
그렇게 말씀하시고 아버지는 사방을 두리번거렸어요. 어머니도 이곳 저곳에 눈길을 두며 애기똥풀을 찾았어요. 경이도 덩달아 두리번거렸지요. 애기똥풀이 어떻게 생겼 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에요.
\"아, 저기 있네요.\"
어머니는 마늘쫑을 길게 뽑고 있는 마늘밭을 가로질러 갔어요. 아버지도 경이도 어머 니를 따라 갔지요.
\"경이야, 이게 바로 애기똥풀이야.\"
경이는 애기똥풀을 봤어요. 이파리는 쑥 이파리를 닮은 것 같았어요. 키가 커서 경이 의 허리춤까지 닿았어요.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파란 줄기 끝에 핀 노란 꽃이 너무 예뻤어요.
\"야아, 예쁘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꽃을 왜 애기똥풀이라고 하지?\"
경이는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했어요.
\"경이야. 너 손톱 내밀어 봐. 내가 손톱에 예쁘게 색칠해 줄게.\"
어머니는 애기똥풀의 가지를 똑 잘랐어요. 그랬더니 줄기 속에서 노란 물이 금방 샘 솟듯이 나오는 것이었어요. 마치 메니큐어처럼요.
\"자, 이걸 손톱에 바르면 노란 손톱이 된단다.\"
경이는 애기똥풀물을 손톱에 발랐어요. 그런데 냄새가 좀 고약했어요.
\"엑, 무슨 냄새가 이래?\"
경이가 얼굴을 찌푸렸어요.
\"후훗, 그래서 애기똥풀이지. 그런데 이 풀 때문에 아빠와 엄마가 결혼하게 된 걸 넌 모르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마주 보고 웃으셨어요. 그리고 눈길은 마치 지난 날을 생각하는 듯 아스라해졌지요.

경순이란 처녀는 강원도 산골에 살았지만 얼굴이 곱상하고 예뻤어요. 그래서 동네 총각들이 모두 좋아했지요.
그런데 어느 봄날, 서울에서 한 처녀가 놀러 왔어요. 그 처녀 이름은 은실이었어요.
은실이는 한실 마을 이장님의 조카딸이었대요. 은실이라는 처녀는 서울 사람답게 피부도 곱고, 날씬했대요. 뭐니뭐니해도 은실이 처녀의 매력은 가늘고 긴 손가락과 빨간 메니큐어를 칠한 긴 손톱이었어요. 경순이가 보기에는 은실이의 손톱이 여간 만 예뻤던 게 아니었어요. 동네 총각들도 은실이 처녀와 서로 한 마디씩 얘기라도 나눠볼 요량으로 이장님 댁을 기웃거렸지요.
경순이는 자기도 은실이처럼 예쁜 손톱을 갖고 싶었어요. 하지만 산골에 메니큐어가 있을 리도 없고,속으로 애를 태웠어요. 어느 날, 경순이는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갔다가 애기똥풀을 보았어요.
'아, 저 풀물을 손톱에 바르면 예쁠 거야, 까짓 고약한 냄새야 뭐, 좀 있으면 없어 지겠지.'
하고 생각했더래요. 그래서 애기똥풀을 꺾어 정성껏 손톱에 칠하고 있었어요.
\"여기서 뭐해요?\"
느닷없는 굵은 목소리에 경순이는 깜짝 놀라 발딱 일어났어요. 잘 생기고, 읍내에서 고등 학교까지 다닌 달식이었어요.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경순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두 손을 치마 폭에 감췄지요.
\"참 날씨 좋지요? 맛있는 나물 많이 뜯어요.\"
달식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휘적휘적 지게를 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그날 밤이었어요. 담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경순이를 누가 불렀어요. 나 가 보았더니 달식이었대요.
\"저기, 이것 봉숭아 꽃잎이에요. 애기똥풀보다는 봉숭아물이 훨씬 더 예뻐요. 그리 고 메니큐어 보다는 열 배, 스무 배 예쁘지요. 손톱에 예쁘게 들여요.\"
달식이는 비닐 봉지에 빨간 봉숭아꽃을 가득 담아 내밀었어요. 경순이는 그만 부끄 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었대요.

\"하하하, 그래서 달식이는 경이 아빠가 되고, 경순이는 경이 엄마가 되었지요.\"
아버지와 어머니 말씀에 경이는 싱그레 웃었어요.
\"후훗, 그러고 보니 아빠, 엄마가 연애하게 만들어 준 게 바로 애기똥풀이었구나.\"
\"또 박 경이라는 예쁜 아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풀이기도 하지.\"
\"하하, 정말 그렇네. 고마워. 애기똥풀아.\"
경이는 노란 애기똥풀꽃에 뽀뽀를 해주었어요. 쌉쌀한 풀 냄새가 났어요.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이 서울에서 온 단란한 가족과, 애기똥풀을 쓰다듬어 주고 갔어요.

애기똥풀 :
양귀비과에 속한 두해살이풀로서 전국의 산과 들, 길가 빈터에 자란다.
5~ 7 월에 노란꽃이 핀다.
높이는 50cm 안팎이며 줄기를 자르면 노란 물 이 나온다.
독성이 강해 먹을 수는 없는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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