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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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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얼굴*8*

유리의향기 조회 2,7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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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

면도날로 자기 얼굴을 지우는 식이라면 나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 방법을 택했다. 나는 새 교복을 입은 지 채 일 년을 채우지 못한 11월 무렵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리하여 밤늦은 시각에 막차에서 내려 또다시 장돌뱅이로 돌아갔다.

이제 막 밤안개가 플랫폼이며 역사며 역사 너머 장터를 에워싸고 있었다. 안개는 넓은 간척지 너머 길게 누워 있는 바다에서 시작하여 늦가을의 싸늘한 수분을 품고서 슬금슬금 몰려와 장터를 휘감아도는 중일 것이었다. 나는 잠시 플랫폼의 가등마다 무슨 밤의 꽃처럼 겹겹이 피어나고 있는 안개를 바라보았다. 나는 마치 꿈꾸는 듯 몽롱한 눈으로 안개꽃을 바라보았을 터였다. 그러자 예의 안개꽃들은 내가 장터를 떠난 이후 받아야 했던 모든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렇게 안개꽃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젖은 공기 속에서 어렴풋이 소금기가 묻어 있는 바닷내음이 풍겨왔다. 나는 몇 번이고 거듭 심호흡을 했다. 나는 다만 그렇게 심호흡을 하며 바닷내음을 맡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두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손등으로 두 눈을 문지르며 나는 무엇보다도 바로 그눈물이 분한 듯한 느낌이었다.

플랫폼의 가등에 불이 꺼지고, 이어 출찰구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이윽고 콧잔등까지 눌러썼던 모자를 벗어, 거기에서 모표를 떼어 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교복에 붙은 명찰과 학년 배지 따위를 마저 떼어 냈다.

\"잘 가라.\"

나는 그것들을 안개 속으로 힘껏 던졌다. 그런 나에게는 더 이상 졸업 사진 속의 자신의 얼굴에 면도날을 대던 순간의 손떨림 따위는 없었다. 나는 다만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무엇인가를 향해 이를 악물었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자면 '반거치기'가 된 나는 자연스럽게 장돌뱅이 속에 끼여들었다. 그리고 건달패들의 똘마니가 되어 어린 깡패 노릇을 하였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왜 나는 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일까.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 순간 자신의 얼굴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흔히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혐오를 견뎌 내지 못하고 끝모를 나락으로 자신을 던져 버릴 때, 그렇듯 자신을 온전히 포기해 버릴 때, 거기에서 발견하는 것은 짓뭉개진 자신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자기애(自己愛)이기 십상이다. 가등마다 겹겹이 피어나는 안개꽃을 꿈결처럼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바로 아름다움이 된 것일까.

건달패들의 똘마니 노릇을 하던 내가 거기에서도 밀려나 다시 복학을 한 것을 꼬박 한 해가 지난 다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저 늪이나 거울, 혹은 죄의식 따위에 시달리지 않았다. 똘마니로서의 한 해는 나를 나이 이상의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고, 무엇보다도 내게 세상을 속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또한 플랫폼에서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배웠던 자기애는 뜻밖에도 나에게 세상에 대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

세상에 대한 무기로서 나는, 그 무렵 알기 시작한 문학을 빼놓을 수가 없다. 똘마니 시절, 나 같은 얼치기는 흔히 사건을 처리하기보다는 사건을 키우기 마련이어서, 어느 날 건달패를 따라 노름빚을 받으로 갔다가 싸움이 벌어졌는데 자칫 겁을 준다는 것이 그만 상대방의 머리통을 깨 버렸고, 나는 결국 사건이 무마될 때까지 장터를 떠나야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다시 도청소재지로 갔고, 거기에 있는 친척집에서 몇 달을 숨어지냈다.

바로 거기서 나는 문학을 만난 것이었다. 친척집의 서가에는 세계문학전집을 위시하여 한국문학전집 따위가 장식용 비슷하게 꽂혀 있었는데, 지방관청의 주사급이던 친척은 술이라도 얼큰한 날이면 나를 붙들고 서가를 자랑하며 자신의 문학 취미에 대해서 가로세로 떠들곤 하였다. 나로서는 문학이 처음이었다. 문학마저도 장돌뱅이 부류는 낄 수 없는 보다 정신적이고 고귀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나는 한두 권 소설을 읽어 나가는 동안에 벼락이라도 맞듯 충격을 받았다.

'이건 바로 내 이야기 아닌가!'

어떤 소설은 나보다도 형편없는 개차반 인생이 바로 그 개차반 인생을 그것도 무슨 자랑이라고 중언부언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바로 그 개차반 인생이 그런 이야기로 작가가 되고, 그리하여 당당하게 세상에 끼여들었다는 점이었다. 문학이 그런 식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자신이 있었다. 당시 내가 이해한 문학은 내가 세상에 끼여들 수 있는 일종의 문 같은 것이었다.

친척의 서가에서 앤솔러지를 발견하고, 그리하여 차츰 시를 알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소설보다는 시를 쓰기로 작정을 하였다. 아무리 영악한 체하지만 역시 어렸던 나로서는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세상에 까 보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치부는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무엇인가 있는 듯 없는 듯 잘도 꼬리를 감추는 시 쪽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내가 똘마니 시절에 배운 세상을 속이는 방법과 시가 지닌 상징이나 은유 따위의 애매모호한 기교는 신기하게도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다시 복학을 하자 나는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문학을 잘하였다. 시 쪽을 택한 나의 궁리도 잘 맞아떨어져서 나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놓지 않고서도 거뜬히 세상에 끼여들 수 있었다. 몇 군데인가 백일장을 휩쓸자 당연히 내 이름은 도청소재지의 남녀고등학교 문예반에 알려졌고, 모르는 여학생들로부터 심심하지 않게 편지도 받았다.

아아, 처음으로 여학생의 편지를 받았을 때의 감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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