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이야기
‘아침에 반가운 전화’
첫 번째 이야기
오늘 아침에 참 반가운 전화가 왔다. 예전에 컴퓨터판매점에서 같이 근무한 여자인 친구 C로부터...‘몇 년 만일까?’, 3-4년 전인가 재활병원에 입원할 때 한번 보고 연락이 없고 2주전에 밴드에서 ‘날 때 연락함세’ 댓글 남기는 것이 전부였는데 하여튼 전에 나하고 일할 때 C는 나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다. 한번은 C가 나를 보고 즐거워하면서 나에게 뛰어오고 있을 때 내가 밀어서 복사기에 부딪쳐 다친 사건은 직원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일할 때 C가 나를 보며 ‘야 내가 오늘 따라 달라진 게 없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런 말에 항상 핀잔을 주었다. 어떤 날은 바쁜 나를 보고 시를 읽어준다며 자기가 읽는 시를 들어보라고 하지 않나, 심심하면 나를 보고 밑도 끝도 없이 ‘야! 넌 안돼’라고 나한테 말하던 것들이 모든 머리에 스쳐간다.
내가 구박을 해도 늘 둥근 얼굴에 미소 짓던 C...그렇지만 화가 날 땐 정말 무서운 친구 C... 어떤 날은 그 친구가 내 친구랑 미팅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내가 편한 방위 생활을 한다면서 즐겁게 나의 군대 얘기를 들어준 친구 C....서울에서 옛 컴퓨터판매점에서 근무했던 동료 H와 함께 만나서 셋이서 같이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도 난다. 재활병원에 입원할 때 전화를 받았을 때는 그 수많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오늘 전화를 받고 나서는 지난 기억이 마치 어제의 일인 양 너무나도 생생하게 하나하나 눈앞에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C는 짧은 2년간 직장 동료이지만 나에게 친구 이상의 애인은 아니었다. 그런 친구가 오늘 나를 보자고 한다. “어디서 만날까?”라고 C가 묻자 나는 “아는 커피숍도 없고 내가 장애가 있어서 보행이 불편해서 스쿠터 타니까.우리 집 근처에서 보자”라고 답했다. “그럼 내가 너네집 근처 커피숍을 찾아보고 연락하면 스쿠터 타고 나와”라고 하자 나는“ 우리집 근처니까. 내가 알아서 위치를 문자 보낼께”고 하고 말했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가 수긍한 듯 차분히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커피숍에서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체장애와 언어장애를 얻게 된 일과 보험사와의 보상관계, 장애등급 판정 등 그간 맘고생했던 일, 그리고 그로 인해 불안 우울증까지 걸리고 이런 나의 사연으로 인해 하느님을 진실로 믿게 된 이야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C에게 얘기하였다. C는 29살에 결혼해서 딸 하나, 아들 하나, 그리고 공무원인 남편이랑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참 행복해 보였고 좋아 보였다. 부러움에 무심코 “너 어떻게 꼬셨냐?”라고 내가 묻자 “신랑이 자신을 쫓아 다녔다”고 C도 웃으면서 답했다. 참 부러웠다. 그 옛날 같이 일하던 시절에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그냥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변한 것이 없어 보였고 말하는 것도 옛날처럼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니라 차분하고 똑바른 말투로 많이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예전에 같이 근무한 직장 동료 얘기도 나왔다. Y가 재혼한 이야기, S의 누나는 재혼해서 임신한 이야기, H형님의 자녀 중에 한 아이가 백혈병에 걸려 골수이식 준비하고 있다는 등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바쁘지 않아? 이제 가야지...”라고 묻자 “그래” C가 답했다.
커피숍에서 나와서 우리 집까지 같이 걸어오면서 들떴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조용히 떠나갔다. 헤어지고 나서 ‘고맙다’라는 문자 보냈다. 얼마 후 답변이 왔다. ‘고맙긴 오랜만이어서 반가웠어...’라고.....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은 후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마 C와의 만남으로 인해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 난 것 같다. ‘장애인인 된 후 나에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있었는데 내가 찾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아름답고 즐거운 추억을 나의 가슴에 남긴다.
‘어느 할아버지와의 만남’
두 번째 이야기
오늘 장애인 문학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글을 어제 밤부터 글을 썼는데 응모 조건이 수필 부문 A4 용지 3장 내외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고 내가 쓴 글의 분량이 2장밖에 되지 않아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꼼꼼히 챙기지 못한 것에 후회 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내년에 준비를 많이 해서 도전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내가 잘못 알았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 발생했다.
오늘 오전에 탐라장애인복지회관에서 제주장애인탁구협회가 운영하는 장애인 탁구교실을 마치고 나서 오후 약속시간이 남아서 점심을 먹으려고 복지회관을 스쿠타를 타고 밖으로 나섰다. 그런데 아무래도 밖에서 먹으면 돈도 많이 들고 아는 식당도 없고 해서 복지회관 구내식당 들어가 12시 20분부터 라면이 된다는 기억이나 사 먹기로 했다. 구내식당에 갔는데 나하고 항시 탁구 치는 탁구부 회원들이 끼리끼리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들어가 혼자 다른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때 목발을 하고 있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내 자리 앞에 앉았다. 내가 라면을 먹기 전에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성당을 다니냐?”라고 내게 물었다. 내가 중앙성당에 다닌다고 말하니깐 중앙성당의 신부님을 안다고 하시면서 50년대 중반에 세례 받는 이야기와 1984년 자신이 제주 초대 지체협회장이었다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혼자 점심을 먹는 것보다 나았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라면을 다 먹고 그 분과 헤어졌다. 그리고 지체협회에 수중재활운동센터 이용권을 받고 가는 중에 주머니에 있어야 할 스쿠터 열쇠가 없었다. 불안 우울증이 있는 나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 일단 스쿠터에 가보았다. ‘열쇠를 꽂아 두지 않았을까?’ 없었다. 기억을 되살렸다. 탁구를 치고 나올 때 분명히 스쿠터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럼 그 다음에 어디를 갔었지? 지하 장애인 화장실에 갔었다. 화장실로 가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열쇠는 없었다. 나도 모르게 ‘성모님..성모님’이라고 작은 소리로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그때 구내식당이 생각났다. 식당에 가보았다. 문이 닫혀 있었다. 분명히 식당 안에 열쇠를 두고 나온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다급한 마음에 문을 흔들어 보았다. 다행히도 문이 열렸다. 직원이 있었다. 열쇠를 찾는다고 하자 직원이 계산대에 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계산대 위에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자상한 얼굴이 달려있는 열쇠고리가 보였다. 나는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열쇠를 손에 꼭 쥐고 식당에서 나오는 순간 식당 입구에서 나의 모든 행동을 알아 보듯이 그 할아버지가 목발을 짚고 서있었다. “열쇠 찾으러 왔군...”나 한테 그 한마디 하고 스쿠터를 타고 가버렸다. 라면 먹고 헤어 질때도 “자네 열심히 기도해” 그 할아버지 말이 지금 까지도 나의 귀를 울린다.
지금은 그 할아버지가 구름을 타고 온 천사 같은 기분이 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자네 이번 장애인 문학 공모전 꼭 작품을 출품해”라고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