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기에 영혼을 불어넣다
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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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중에 소프라노가 6 마디를 계속 배경음으로 외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길게 혼자서 소리를 낼 수가 있냐고 물으니까 선배된 양반이
"아 이건 혼자 다 하는 게 아니고 파트를 나눠 두마디씩 번갈아서 이어서 노래부르는 부분이라 전체가 이어진 듯 들리지"
라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럼 여긴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부분 소프라노 솔로가 이끌어갈 대부분은 프리마돈나 혼자서 약 삼십 명의 합창 소리와 맞서서 혹은 섞여서 목소리를 부각시켜야 하니
다른 분들이 양보해주지 않고 내키는대로 크게 부르면 고음부를 어떻게든 표현해야 하는 소프라노 솔로는
"이거 완전히 사람 죽이는구나"
하면서 성대를 무척 혹사해야할 경우도 있을 것 같아 저는 이만저만 걱정되는 게 아닙니다.
신이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빚어 만드신 후 숨을 불어넣어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숨을 내쉬면서 합창을 해 신을 찬미해야할 의무가 있는지 모릅니다.
또 호흡은 곧 생명이므로 흑인 중심으로 영혼을 담은 음악, 즉 소울(Soul)을 부르기도 해서 그것이 리듬앤브루스를 거쳐 재즈로 발전한 게 아닌가 하고 이해해봅니다.
네팔이나 안데스 산맥에서는 비슷한 관습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조장(鳥葬)이라는 풍습입니다.
시신을 바위 위에 두어 새들이 쪼아먹게 하는 장례문화라구요, 게다가 특이한 것은 그 뼈를 이용해서 '케나'라던가 하는 피리를 만들었답니다.
이런 엽기적이고 희안한 발상을 누가 했는지요!
그것은 방송에서 들려주는 소리로만 보아서는 플루트나 피콜로와는 완연히 음색이 틀리고, 팬 플루트와는 좀 비슷하긴 하지만 흐느끼는 듯한 울림이 강조된 느낌의 그런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까 생각나는 것은 미국 팝가수 폴 싸이몬의 '엘 콘도르 파싸 철새는 날아가고', '던컨' 등에 반주로 나오는 그 구슬픈 음색의 페루민속악기였고
아마 그 악기도 혹시 이렇게 독수리가 쪼아먹은 뼈로 구멍뚫어 만든 부류는 아니었던가, 의문과 함께 새삼 그 페루 민속악기의 마치 안데스 산맥을 휘감아 도는 바람결 같은 긴 여음(餘音)이 그리워집니다.
하긴 플루트 소리도 영화 '중경상림'의 주제가로 나온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후렴구에 나오는 짧은 간주곡 연주에서는 나름대로 팝과 어울리는 멋진 음색으로 평가해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 합창 연습시간 중에 갑자기 옆방의 노란 머리 총각이 클라리넷을 불어
야! 저 소리는 우리 집 작은애가 쓰는 야마하 클라리넷보다 훨씬 크고 잘 울리는데, 뷰페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목관악기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클라리넷은 웬지 모조품 같아 싫어서 저도 프랑스제 뷔페 목관 클라리넷을 중고로 구해서 5 개월 정도 연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클라리넷 소리가 오보 같은 악기에 비해 맹한 것 같아 재미가 없구나, 속단하고 밝고 화려한 음색의 트럼펫으로 웃돈주고 바꿨습니다.
합창연습이 있은 다음날 작은 애가 부는 야마하 악기에 전에 쓰던 3 반 크기의 리이드(마우스피스에 끼워 입술로 얇게 떨어주는 나무판)를 빼고 2 반 크기의리이드를 사다가 끼웠습니다. 그러자 가볍게 잘 울리면서 그 연습실 옆방에서 연습하던 총각의 클라리넷 소리와 거의 비슷한 울림이 되었습니다.
역시 악기 탓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소리내느냐를 꾸준히 연구하고 연습하여 숙달하는 게 중요한 모양입니다. 성가연습에서 발성법이 중요하듯 말이죠.
제가 트럼펫을 시작한 계기는 완전히 악기를 오인한 데서 출발합니다.
-사실 요즘엔 야밤에 퇴근하다 보니 연습을 꾸준히 못해 입 주위의 협근, 구륜근, 대협골근 등 입술을 죄는 근육도 긴장이 풀렸고
소리내는 좁은 구멍을 만드는 입술의 기본모양인 "앙부슈어"도 흐트러져 소리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지금도 동요 두세 곡 밖에 불 줄 모릅니다.
어느 날 방송에서 척 맨죤이 연주하는 <휠 소우 굿>이라는 노래를 기분좋게 듣고 저걸 배워야겠다고 달려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척맨죤이 음반작업 때 즐겨 사용한 그것은 트럼펫보다 몸체가 훨씬 크고 벨부분도 넓어서, 부드럽고 깊이있는 음색의 "플뤼겔 혼"이라는 악기였습니다.
이 악기는 코넷의 일종으로 발달해 나라에 따라 뷰글이라고도 하며 취주악이나 영국 스타일의 금관합주에서 주로 사용되며 B플랫조 외에 E 플랫조도 있습니다.
또 전에도 음악방송에서 어떤 성가곡을 중후하게 부는 악기를 소개하길 '트럼펫'이라고 하는 걸 들은 바 있어 문외한 필자는 그저 그렇다니 그런 줄만 알고
독일제 연습용 B&S 트럼펫을 덥석 사서 연습했는데, 음색이 제가 원하는 그런 소리가 아닌 겁니다. 몹시 당황해서 알아 보니
트럼펫은 주로 직선 파이프형 구조라서 소리가 째지듯 강렬하고
"코넷"은 그것을 구성하는 관의 약 90%를 벨쪽으로 가면서 넓어지도록 원뿔형으로 만들고 마우스피스쪽 10%만 직원통이라
굵직하고 많은 관을 구부리고 있어 부드러운 음색이 나오므로 성가용으로 적합하고
소리내기 자체도 약간 쉬워서 체력이 달리는 청소년합주부의 트럼펫 지망생들에게 사용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트럼펫을 붙잡고,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보았댔자 시끄러운 소리라서 특송하긴 틀렸구나!'
라고 투덜대면서 몹시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마디로 음악방송 진행자가 플뤼겔 혼과 코넷을 모두 트럼펫으로 소개하는 바람에 초보자는 혼동을 하고, 그 결과 원하지 않던 악기를 잘못 사서
울며 겨자먹기로 배우거나 아니면 먼저것은 헐값에 처분하고 목돈을 들여 새 악기를 다시 사야하는 경우가 되었습니다. 이런 억울할 데가 !
지금은 체념하고 적응을 했습니다만.
요 얼마전에도 한번은 큰 애가 오보에 소리가 좋다고 그걸 좀 배웠으면 해서
저는 그애 피아노도 못 가르쳤으니 그거라도 교양과목으로 가르쳐볼 요량으로
관악기를 좋아하는 우리 단원 한분과 동행해서 낙원상가를 한바퀴 돌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보에는 특수악기라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뷰페 중고가 220, 연습용 플라스틱이 290, 목관"트리에베르" 중고가 450 새것 800으로 가격도 고가인데다가 단골악기사 충고로는,
"열한 살 짜리 여자애는 도저히 못 불어요. 가장 불기 어려운 악기로 기네스 북에도 올라 있는 악기예요. 그리고 뷰페 오보에는 못써요 뷰페는 클라리넷이나 잘 만들지..."
이 무슨 심한 표현인가?
해서 부는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유빨대만한 리드 두 개를 겹쳐 놓은 "겹리드"였습니다.
이런 좁은 빨대 같은 리드로 어떻게 그런 울림을 만들수 있을까 차츰 어려움을 깨달았지요.
그래서 아리랑TV 에서 영화 "미션"의 주제가를 연주할 때 그 장면을 눈여겨 보았는데
과연 덩치좋은 남성 오보에연주자가 겹리드를 물고서 부느라고 이마에 있는 가는 혈관들이 거미줄처럼 툭 툭, 불거지며 얼굴이 시뻘개져서
거의 부처의 고행을 연상케 하는 힘든 호흡의 표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
- 35년전 저의 할머니 환갑 때도 잔치상 앞에서 흥을 돋구기 위해 나타난 일곱 명의 풍물패 일행 중에도 향피리 연주자가 있었는데 이렇게 말아올린 입술 끝에 좁은 겹혀를 힘주어 꽉 물고서
비장한 자세로 삑-삑-거리는 힘찬 소리를 발산해 좌중을 압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정도 폐활량을 키우려면 하루 5킬로는 조깅해야겠죠.
연주장에서 보니까 어떤 관현악단의 여성 오보주자는 자기 담당의 한소절 불고 나서는 픽 쓰러져 의자에 기대서 휴식을 취하고
또 한 소절 불고는 픽 쓰러지고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성장 중에 있는 여자애에게는 체력적으로 무리라는 말을 실감하고 딸애에게 오보에 가르치려는 계획을 일단 철수했습니다.
(그런데 기갑부대 병사가 둘러메고 다니는 60밀리 박격포 같이 생긴, 익살스런 저음이 나는
바순 또는 파곳이라고 불리우는 악기는 같은 겹리드라도 소리내기가 훨씬 쉽다니 좀 특이한 사실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애한테 "당분간은 집에서 5000원짜리 리코더나 불고 놀아라"하고 일단 돈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밤무대 트럼펫 주자를 만나,
마우스피스를 지름 큰 것으로 해야 입술을 죄고 풀기에 움직임이 자유로와 오히려 높은 음 불 때 유리하다는 정보를 얻고
그러잖아도 높은 "미"이상을 소리내지 못해 고심하던 터에 -연습곡에는 꼭 높은 "미"와 "파"가 한 두개 섞여 있어서 거기서 꼭 맥이 끊어져
마음은 빨리 "태양은 가득히"를 불고 싶어 안달이 나는데 현실은 "오빠생각"도 못 부니 환장할 노릇이네!
하면서 한숨만 푹푹 쉬던 때라서 마침 누가 이런 가르침을 주어-
한달음에 뛰어가 단골악기점에서 "1 X"라고 새겨진
BACH社 마우스피스를 일금 5만5천원을 주고 사서 손에 꼭 쥐고 들떠서 싱글벙글 나오려는데
테이블 위에 어느 교향악단 수석 주자가 수리를 맡겨놓고 간 호른이 구불구불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 이게 뭡니까 한번 불어봐도 될까요?"
마우스피스도 트럼펫과 비슷하고 누르는 버튼키도 세 개라서 비슷해 불어보았더니 스위스 산골짜기의 양치기 소년이 양떼를 부를 때 쓰던 뿔피리의 은은한 음색과 같은
소리가 달팽이 같은 관 안에서 울려퍼지는 게 아니겠어요? 너무 신기해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오, 프렌치 혼!
호른의 부드러운 음색에 취해서 저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신은 흙으로 빚은 형상에 숨을 불어넣었고
인간은 숨을 악기에 불어넣으니
그 음악을 듣는 자의 가슴에 영혼을 일깨워
그로 하여금 신을 찬미케 하기를'
*이 작은 지면을 빌어 성악 분야를 비롯해 경력이 오래된 연주자분들께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