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보다
은형
조회 2,581
댓글 0
빗소리를 마음에 담으면 눈물은 어디에 남겨둘까.
가지런히 놓여 있던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이 어렴풋이 빗소리를 따라
고아한 소리를 내고 있음을 보았을 때였을까.
조금도 슬프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슬픈 음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때는 무척이나 궁금했었어.
그러면 당신은 싱긋 웃으면서 말해주었지.
"마음에 담아 두었던 소리를 열어보이는 거란다.
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하는거잖아요?
그렇게 고집스럽게 묻는 눈을 하면 머리카락을 몇번이고 쓸어내리다가
아직은 이르나 언젠가 너 역시 그리 할 것이라고. 당신이 말한 의미를 너는
곧 알아줄 거라고 여느 때처럼 담담히 답해주었다.
어린 날 보았던 비는 유난히도 푸르더랬어.
모든 것을 감싸안을 수 있는 깊고 부드러운 향기와 더불어.
그래서 더욱더 알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무얼 의미하는지 그리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작을.
그 누구도 더이상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손가락이 닿으려는 그대로를 보게 되면 감정을 담을 수 있지만
다시 열어내기가 힘들고 눈을 감고 그 무엇도 담지 않으려 하면
어느 순간 내 마음을 그대로 남겨둘 수 있더라.
하지만 늘 한 순간 뿐이야.
눈물이 마른 자리는 푸석거리는 지난 자취와 같은 소리를 내는 걸 알까.
조금이라도 물기가 스며들면 금방 닳아져버리는 조심스러움마저 있는.
더욱이 무엇도 마르지 않은 순간이 없는 내게는 그러한 조바심조차
생길 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었을까.
슬픔이 머문 자리에 그대로 소리를 부어낼 수 있는 오랜 시간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걸까.
.... 눈물이 남겨 있는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