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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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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박물관

미국에서 조회 2,79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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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미국에 온 이래, 시간이 나는대로 우리 가족은 여행을 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몇차례 해외 여행을 했기에 우리 가족은 여행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새로운 곳을 배우는 기회인 것입니다. 좋은 호텔에서 자지 못하고 가져간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 가족은 여행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억들이 여행에 얽혀 있는데, 항공모함을 들어가 본 적도 있습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대서양 쪽 항구도시 중에 ‘찰스톤’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전에 유럽으로부터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도시를 형성한 만큼, 고색이 창연한 도로와 건물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도로에 박힌 돌 하나하나에도 역사가 스며있었습니다. 그러나 찰스톤에서 저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바로 항공모함이었습니다. 지금은 낡아서 쓸 수없는, 퇴역한 항공모함 한대가 그 도시에 있었습니다. 한국 같으면 군사보안이네, 기밀이네 하면서 절대 공개하지 않았을 군사 시설이 공개된 것에 대해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니 항공모함은 과연 컸습니다. 옛날에 이 배의 위에서는 비행기가 이 착륙을 하고 아래에서는 각종 정비와 배의 운항이 이루어졌을 것을 생각하면서 둘러 본 내부 시설은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하얀 색으로 표시된 줄을 따라 좁은 통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선실과 갑판을 모두 보는데는 족히 4시간이 걸렸습니다. 수병들과 장교들의 침실도, 식당도, 선장의 사무실과 대포를 쏘는 공간과 기관실도 모두 보면서 저는 이 항공모함이 2차대전 때 실전에 쓰여졌던 배임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진과 기록들도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는데, 적기를 많이 격추시킨 조종사들의 명단도 있었고, 장교들의 명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발길을 무려 20분 정도 붙잡았던 것은 다름 아닌 낡은 종이 에 적힌 글귀였습니다.
“나는 미합중국의 해군 비행사입니다. 나를 숨겨주시고 적으로부터 보호해주시면 나중에 우리 정부가 당신에게 크게 보상할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일본, 독일 입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글귀는 아시아의 여러나라 말과 함께 한글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미 해군의 젊은 조종사는 이 종이를 갖고 적지 상공에서 전투를 벌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불시착이라도 하게 되면 그 종이를 보여주었겠지요. 말도 통하지 않은 아시아의 어느 산골 마을이나 어촌에 숨어, 자기를 구하러 구조대가 올 때까지 그 조종사는 그렇게 살아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낡은 두루마리에 쓰여진, 지금의 맟춤법과는 다르게 쓰여진 그 글귀들은 한순간 저를 2차대전의 역사 속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두루마리를 지니고 공중전을 벌였던 젊은이는 어떤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을까, 또 그의 애인과 가족은 얼마나 그를 염려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습니다.
찰스톤의 거리와 해변의 아름다운 집들, 또 시장의 아기자기한 기억도 좋지만, 찰스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항공모함에서 본 바로 그 낡은 종이 두루마리에 쓰인 글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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