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를 그리며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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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을 때, 광화문 네거리에 있었던 교보문고는 우리 가족이 자주 가던 가족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30분이면 가던 교보문고를 아내와 아들 다은이와 함께 걸어가서, 보고싶은 책을 골라보고 가끔은 차도 마시고 간단한 식사도 하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도 워낙 큰 서점이라 그 안에는 늘 도서관과도 같은 아늑한 공간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에 간다면 꼭 다시 들러보고 싶은 곳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도 교보 문고같은 곳이 있습니다.
반즈 앤 노블( Barnes & Noble)은 미 전역에 체인을 가진 큰 서점입니다. 교보문고에 비교하면 작지만, 제법 큰 매장에 음반 코너와 커피를 파는 스타벅스가 함께 있습니다. 철따라 할인 행사도 열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작가 초대 행사도 열립니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어린이 코너를 따로 만들어 어린이들의 체형에 맞는 의자와 책상들도 준비해 놓고 고객을 맞이합니다. 작은 의자에 앉아 그림책을 보는 어린이들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나옵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는 그 서점에서 제가 아내와 함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사는 이야기를 할 때, 다은이는 보고싶은 책을 실컷 봅니다. 요즘 컴퓨터 게임 잡지를 즐겨보는 다은이는 엄마 아빠덕에 어린 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하고 자란 편입니다. 몇년전, 이 곳 버지니아로 이사 온 후로도 우리 가족은 도서관을 찾아가 대출 카드를 만드는 일을 은행 구좌를 만드는 일 다음으로 했었습니다. 제가 일을 하면서 필요한 책들이나 다은이가 공부하는데 필요한 책들을 수시로 대출해서 봐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서점 회원카드를 이용해 할인 가격으로 산 커피를 마시며 부부가 함께 서점에 앉아 이야기를 할 때면, 바쁜 삶 속에서도 여유를 찾게되고 숨을 고르게 됩니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오랫만에 모인 무슨 모임인 듯 계속 화기 애애하고, 저쪽의 대학생인 듯한 여자 손님은 열심히 노트북 컴퓨터를 두드리며 공부에 전념합니다. 스타벅스가 어떻게 서점과 함께 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커피 향기는 서점에 제법 잘 어울리는 후각 자극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커피 냄새가 향긋한 서점에서 책을 보거나, 친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분명 우리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그림이 됩니다. 대학시절 학교 앞에 “북카페”가 있었는데, 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아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카페에서 책을 읽는 형식이었고, 반즈 앤 노블은 서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형식입니다. 책이 더 주인공인 셈입니다.
커피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눈 아내는 늘 어린이 서적 옆의 교사를 위한 코너로 갑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각 과목을 가르치고, 또 평가하는데 사용하시는 많은 책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학생들을 위해 출판된 책과 아울러 교사들의 참고 도서까지도 두루 검토하며 필요한 책을 사서 다은이를 가르쳐 왔습니다. 방학 때도 그렇게 책을 골라 다은이를 가르쳤고, 다은이는 아내의 지도 덕에 비교적 공부를 잘 해오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어 단풍이 아름다운 시절에, 저는 가족과 함께 동네의 반즈 앤 노블에 갑니다.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시며, 그리고 창밖 파란 하늘을 보며, 그 전에 제가 가던 교보문고와 광화문 거리, 세종문화회관과 지하도, 또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