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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남자친구

여강 조회 9,9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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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남자친구

 

                                                                                                            - 여강 최재효

 

 

 “우리 친구할까요? 아니면 애인할까요?”
 “애인은 피곤해, 친구가 좋아요.”선배의 주점(酒店) 개업장소에서 선배로부터 창
작(創作)을 한다는 X를 소개받았다. 명함을 주고 받고 쌓인 세월을 조사해보니 생년월이 같았다. 나의 농 섞인 첫 인사에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받아넘겼다. 외모는 연륜에 어울리지 않게 소녀 티가 났다. 처녀적에 꽤 많은 사내들 애간장을 녹였을 것 같았다.



 내 머리에 한창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눈빛이 강렬했을 때 나에게 여자친구란 존재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웃 마을에 사는 한 살 아래 여학생과 우연히 눈이 맞아 청포도같은 연애를 시작으로 해서 결혼하기 전까지 여러 명의 친구 아닌 연인(戀人)이 있었다. 그 중에는 나 보다 연상도 있었고 같은 또래도 있었다. 나에게는 한 두 살 아래 이성(異性)이 여러 면에서 잘 맞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에게 여자 친구는 초등학교 때 이웃에 살던 세 명  이외에는 없던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여자 친구라는 단어가 왠지 어색하들렸고 내 마음에서 강하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이성에 대하여 관심이 날로 고조(高照)되 가는 입장에 친구보다는 애인이나 연인이 더 잘 어울렸다. 여러 명의 옛 연인들 소식이 몹시 궁금하기도 하지만 마음 속 한 켠에 아름다운 추억(追憶)으로 간직하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을 듯 하다.

 

 결혼 이후 오로지 한 여인만 바라보고 살아 온 삶에 후회하거나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7년 전 어느 날, 죽마고우 (竹馬故友)들이 다시 뭉친다는 소식이 들렸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30년만이었다. 졸업한 지 30년 만에 찾은 교정(校庭)은 최신식 건물로 변해있었다. 그간의 모교(母校)에 대한 무관심에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옛 벗들이 모인다기에 불알친구들만 생각었다.



 뜻 밖에도 남자동창들 보다 여자동창들이 더 많이 참석하였다. 나는 잠시 당황하였지만 이내 지나간 30년 시공(時空)을 까맣게 잊었다. 대부분의 여자 동창들 얼굴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코흘리개 계집애들이 어떻게 퉁퉁한 아줌마로 변신했는지 신기하면서도 세월의 무정(無情)함에 잠깐 서글픔이 밀려 들었다. 간단한 몸풀이 운동이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 장소에서 30년 전 계집애들은 어엿한 나의 여자 친구로 새롭게 내 각인(刻印)되었다.



 처음 한동안 생소하던 여자친구라는 단어가 차차 귀에 익고 입에 달라 붙으면서 늘상 사용했던 소품처럼 되었다. 여자 하면 애인이나 연인쯤으로 생각해 오던 오랜 관습의 틀이 깨진 것이다. 각종 경조사 (慶弔事)에서 남자동창들 보다 여자친구들이 더 열성적으로 얼굴을 내밀고 행사도 적극적이어서 오히려 남자동창들 보다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난해 나는 위암 수술을 받고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때도 나에게 용기를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넨 이들은 바로 고향 (故鄕) 여자 친구들이었다. 남자 동창들이 사무적인 말투인 반면 여자 동창들은 마치 자기 자식을 대하듯 세심한 부분까지 관심을 보이며 물어왔다. 나는 그때 ‘아, 나에게도 여자친구들이 있었구나.’하고 콧등이 시큰했었다. 요즘도 여자친구들은 나의 건강상태(建康狀態)를 자주 물어온다.



 우리의 정서로 볼 때 과연 ‘여자 친구가 가능할까?’라는 우문(愚問)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에서 애인 혹은 연인으로 변질되기 쉬운 대상이 여자 아니냐?’라고 반문(反問)을 하기도 한다. 사춘기부터 결혼 전까지는 그 같은 말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 수 있다. 한 가정을 책임지고 사회적으로 주요 구성원이면서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당당하게 이성친구를 둘 자격이 된다.



 심지라는 것에 강한 불쾌감을 보이는 배우자들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배우자가 지연(地緣), 학연(學緣)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언제까지 죄인처럼 남의 시선을 피해가며 애인이 아닌 친구를 만나야 할까. 오히려 배우자가 심지가 굳다면 당당히 이성 친구를 대하도록 배려해야 하는 미덕도 중요하다. 반대의 경우에는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다.



 인터넷이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된 요즘 머리가 희끗 희끗한 남녀가 한데 어울려 다정하게 이름 부르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거의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이 틀림없다. 결혼하고 직장 다니며, 아이들 뒤 바라지 하느라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을 만나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동창들 친목회(親睦會)를 사이버에 카페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꼭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이성동창을 친구라고 한정(限定)지을 필요는 없다. 취미가 비슷하고 나이가 비슷한 연령대면 모두가 친구 아닌가. 단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강약(强弱)에 따라 뒤늦은 가슴앓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개인의 심지에 달린 일이다. 친목회나 동창회 모임으로 늦게 귀가하는 배우자(配偶者)에게 의혹의 시선은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나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면 아내에게도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인 나에게 여자친구는 괜찮지만 아내에게 남자친구는 안돼.’라고 한다면 너무 이기적(利己的)인 처사 아닌가.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아내는 가끔 동창들 모임이 있어 늦는다는 연락을 해온다. 나 역시 처음에는 불쾌하면서 ‘혹시 이 여자가 동창회 핑계 대고 다른 남자 만나는 거 아녀?’라고 의혹의 시선을 보낸 적도 있었다.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면 의외로 아내의 외출(外出)이나 친목회 혹은 동창회 참석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남자들이 꽤 있다. 아내가 약간 늦게 귀가하면 ‘몇 시에 어디서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먹고 어디로 자리를 옮겨서 몇 시까지 무엇을 하였는지’ 꼬치꼬치 캐묻 는다. 그럴 경우 아내들은 어쩌다 늦게 들어온 죄로 대역죄인이 되어 남편에 게 이실직고(以實直告)해야 한다. 의심은 더 큰 의심을 키우게 마련이다.



 이런 부부에게 있어 배우자의 이성 친구는 곧 전쟁을 의미한다. ‘너는 오로지 나 하나만 바라봐야 한다’라는 극단적인 지배의식은 곧 비극(悲劇)을 초래한다. 서로 행동에 조심도 해야 하겠지만 무조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경우 자신과 가족모두에게 불안과 초조의 연속에서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신뢰(信賴)가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진다. 이 처럼 불합리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지닌 부부(夫婦)는 이미 예전의 부부가 아니다.



 ‘마누라에게 남자 친구는 절대 있을 수 없어.’라고 단정짓는 남자는 자신에게도 역시 ‘나는 아내 이외에 여자 친구는 필요 없어.’라고 자신과의 맹약(盟約)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같은 태도는 주변 사람에게 큰 횡포이고 자기기망(自己欺罔)이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좀생이 같은 사내들이나 하는 파렴치한 행동 아닌가.



 아직도 부창부수(夫唱婦隨)를 외치고 삼종지도(三從之道)를 그리워 한다면 모계사회(母系社會)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 남자들은 비 온 뒤 공원에 떨어진 가랑잎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심사숙고해 볼 일이다. 기혼남녀에게 있어 애인은 남모를 고통이며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워야 하는 대가가 따른다. 애인은 배우자 한 명이면 되지만 좋은 이성친구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 창작일 : 2010.12.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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