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글이 아닌 말과 글 <1>
명사의 지나친 복수표기
다음은 6월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뇌과학을 전공한 KAIST 교수의 글이다. 그 일부를 발췌했다.
“기원 후 100년에서 150년 경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들은 세상 종말에 있을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간의 전쟁을 예언한다. 물론 자신들을 ‘빛의 아들’로 부르던 에세네파들과 침략자 로마 군사들 간의 전쟁을 말하려 했던 것일 것이다.”
흔히 쿰란 사본으로 일컫는 사해문서의 일부인 ‘전쟁 두루마리’에 대한 설명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얘기이다. 그런데 내용만 흥미진진할 뿐 읽는 사람은 그다지 흥미 속으로 빠져들지 못한다.
왜 그럴까? 위리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한글로 썼는데도 우리글이 아니어서 몇 번을 읽어도 심금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아마 필자는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인문과학에는 다소 등한했을 수는 있다. 또 영어로만 말하고 가르치고 배운다는 KAIST이기에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더 편하고 친근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에 어법이 있고 문법이 있듯이 우리말과 글에도 엄연히 어법과 문법이 있다. 굳이 우리말로 글을 쓰려했다면 당연히 우리말글의 테두리를 지켜야 독자와 의사가 통한다. 그래야 설득력 있는 글이 된다.
모든 명사는 반드시 단수와 복수를 명확히 구분해서 써줘야 말이 통하는 영어에서는 예를 든 문장에서처럼 ‘문서들 아들들 자신들 에세네파들 군사들’이라고 표기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말글은 어쩐 일인지 단수복수 개념이 극히 희박하다. 대부분의 명사가 단수인데도 복수처럼 통용하고 복수인데도 단수처럼 쓰인다.
이것이 우리말글과 영어의 근본적인 차이인데 우리말글을 애써 영어식으로 표현 표기하려는 못된 습관이 공부 꽤나 했다는 사람, 외국에서 학문을 했다는 사람에 의해서 전파 확산되고 있다. 매우 위험천만한 언어습관이다.
‘모처럼 우리 가족들이 다 모였다.’ 소위 문법상 문제가 없는 표기이지만 내용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가족들’이라면 아버지의 가족과 어머니의 가족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혹은 아버지가 여러 세대의 가족을 거느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학생들의 가방들과 소지품들을 검사해보면 음란문서들이 많다.’ 왜 말끝마다 ‘들’이라는 복수표기가 따라다닐까. 혹 그것이 정확한 표기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요즘 학생의 가방과 소지품을 검사해보면 음란문서가 꽤 많다.’ 이렇게 본래의 우리말글로 바꿔 써보니 이해도 쉽고 숨도 편하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는 우리의 여백미학과 3.4조 같은 음운체질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글은 단수의 단어가 복수의 의미를 포함한 것이 많으며 굳이 복수로 표현코자 할 때는 ‘떼’ 같은 별도의 접미어를 붙여 사용한다. ‘우리 가족이 다 함께 있어’라고 하면 그 가족은 다수로 구성된 복합체다. ‘벌 떼의 습격을 받았어!’라고 하면 수많은 벌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어를 잘 하면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우리말을 하려면 제대로 된 우리말을 할 줄 알아야 국민대접을 받는다. 적어도 동아일보에 글을 쓰려면 우리말글 공부를 좀 더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