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노출과 감정의 억제
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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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인용문을 비교해 보자.
파아란 하늘이 가없이 퍼져
검푸른 바다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넓고 넓은 저곳에 누가 살고 있을까
그곳은 피안으로나마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도시의 여름]
강바닥 모래알 스스로 도는
진주 남강 물맑은 물같이는,
새로 생긴 혼이랴 반짝거리는
진주 남강 물빛 밝은 물같이는,
사람은 애초부터 다 그렇게 흐를 수 없다.
---박재삼, [남강에서]
[도시의 여름]은 푸른 하늘을 보며 "저곳에 누가 살고 있을까"라는 상념에 사
로 잡혔다가 '누가 살고' 있지 않으면 "피안으로나마/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라
는 막연한 느낌을 그대로 적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남강에서]는 [도시의 여름]과 유사하게 강물을 바라보며 우리들
인간의 삶에 대한 느낌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느낌은 막연한 상념이 아니라 사람은 애초부터 진주 남강의 "물맑은
물같이는" "물빛 밝은 물같이는" 흐를수 없다는 시인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보
여주고 있다.
그 깨달음은 막연한 상태의 그것이 아니라 진주 남강의 그 '물맑은 물'같이는, '
물빛 밝은 물'같이는 흐를수 없다는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사실을 동반한 그것이
다. 그러니까 [도시의 여름]은 사전적 용어를 그대로 빌어 이야기하자면 감흥이
긴 하되 혼잣소리 또는 푸념의 차원이며, [남강가에서]는 삶에 대한 자각을 진
주 남강의 물을 차용해 표현한 작품인 것이다.
시란 감정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세계가 숨기고 있는 모든 가치로운 것들을
감지하고 표현하는 예술형식이다. 그런 까닭으로 시에는 푸념이나 혼잣소리가
끼어들 틈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그런 감정의 세계이다.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고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엘리어트의 말을 이런
점에서도 귀담아둘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도시의 여름]은 미적 또는 시적 인식
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 없이 관습적인 인식으로, 즉 동시-지난날 읽었던
몇 편의 시에서 본 외화성 수사-사전적 인식-사전적 인식-시쓰기로 이어진 결
과이다.
만약 [도시의 여름]을 쓴 사람이 위와 같은 점을 한번이라도 검토해 보았다면
다음과 같이 썼을지도 모른다.
빌딩사이로 흰 구름이 오락가락한다
불볕은 뜨겁고
아스팔트 위에는
봉고 포니 그랜저 벤츠 프라이드 르망이
줄을 잇는다.
이글거리는 여름 한낮
이 정도만 되었어도 소박한 묘사형의 시는 되었으리라.
오규원 저, 현대 시작법에서 발췌. 위의 [도시의 여름] 이란 시는 전에 올린 '상
투적 표현과 관습적 인식'에서 인용하고 있는 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