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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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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동무

까미이모 조회 8,52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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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어요.

햇님이 따뜻하게 보일러를 틀었어요.

볍씨 몸이 퉁퉁 부는걸 보니 때를 밀려나 봐요.

 

어머? 아니었어요.

볍씨에서 꼬무락 꼬무락 싹이트고 있는 거예요.

 


 

 

하얀 싹들이 물밖으로 고개를 내 밀었어요.

갑자기 싹들 눈이 동그래지네요.

물속에서만 보던 하늘이 이처럼 많은 신비를 품고 있는 줄 몰랐든 거죠.

싹은 바람이 고개를 돌려주는 대로 몸을 틀며 하늘속 세상을 구경했어요.

 새싹이 자라는 동안 달팽이는 물살을 가르고 거머리는 미끄럼을 탔어요.

 


 

 

 

어느새 벼가 저만치 자랐네요.

누렁이소가 농부 아저씨와 논을 갈아요.

 

좌우향우~ 양팔벌려 헤쳐 모여~!

 

벼들은 아저씨 노랫소리에 서넛씩 짝쿵되어 심어졌어요.

 


 

 

맴 맴 맴...

째~롱 째~롱... 찌~우 찌~우...

 

매미가 여름내 벼의 이름을 불러 주었고

농부 아저씨의 자박 자박 발걸음 소리를 들은

쌍둥이 낟알들이 벼를 타고 조롱조롱 피고 있어요.

 


 

 

 

태풍이 왔어요.

비바람이 거세요.

낟알들은 서로를 껴안고 검은 바람과 소나기에 맞섰어요.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어요.

많은 낟알들이 힘없이 떨어져 썩거나 죽정이가 되고 말았죠.

강한 바람을 견디기에 낟알들이 너무 약했던 거예요.

 

는 사랑하는 낟알을 잃고 나서 땅속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어요.

건강한 낟알을 키워내기 위해 다른 묘안이 필요했던 거죠.

 


 

 

낟알들도 힘을 합쳤어요.

태풍뿐 아니라 새나 들쥐에게 희생되지 않기 위해

낟알들이 뭉치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자신들의 무기로 옷을 입어 갔어요.

 

모자 낟알, 팬티 낟알, 장갑 낟알, 리본 낟알...

안경, 목결이, 수영복, 원피스...


 

 

 

 

허수아비도 그들을 도왔어요.

아비(?)는 한번씩 몸을 비틀어 새들을 멀리 좇아 보내곤 했죠.

그러자 안경 낟알과 리본 낟알이 고맙다 점점 고개를 숙였어요.

 


 

 

 

 

 

하늘 높이 고추 잠자리가 날아들고 들판이 노랗게 물드네요.

농부 아저씨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 찼어요.

탈곡기가 골을 따라 벼를 벱니다.

친구들이 차례로 탈곡기에 들어가고 있어요.

 


 

 

 

그때 장갑 낟알이 욕심을 부렸어요.

다른 친구보다 탈곡기에 먼저 들어 가려고 앞으로 몸을 숙였어요.

그러다 이삭 채 논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농부 아저씨는 장갑낀 낟알을 줍지 않았어요.

하얀 눈이 옷을 입혀 주면 재두루미의 맛있는 먹이가 될 테니까요.

 


 

 

 

 

탈곡된 낟알들은 푸대에 담겨 낯선 친구들과 섞였어요.

한 마지기의 논에서 같이 자랐지만 대부분 처음 만나는 동무들이예요.

낟알들은 서로 얼굴을 부비대며 농부아저씨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아저씨는 멍석을 깔고 거둬 들인 낟알을 따뜻한 빛에 말렸어요.

수분을 제거해야 썩지 않기 때문이죠.

 


 

 

 

 

어미닭이 병아리들과 놀러 왔네요.

닭이 낟알을 주워 먹어요.

어미 닭은 모이를 쪼다 토실하게 살찐 모자 낟알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숨도 쉬지 않고 찝어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고 말았어요.

주위에서 동무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슬퍼하는 낟알은 아무도 없었어요.

누구나 맞딱드릴 운명을 모자 낟알이 먼저 받아들인거라 믿었기 때문이죠.

 


 

 

 

 

농부아저씨는 며칠간 말린 낟알을 푸대에 담아 경운기에 싣고 정미소로 갔어요.

 

쿵쾅 쿵쾅...방아소리가 요란해요.

기계에 들어간 낟알들이 딱딱한 껍질과 분리 되어 나오고 있어요.

쌀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나는 거예요.

싸르르... 싸르르...

자기들끼리 소리내며 웃기 때문에 쌀이 된 거지요.

 


 

 

 

 

그 틈을타 왕관 쌀도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밖으로 나왔어요.

왕관 쌀은 자신의 모습은 잊은 채 껍질을 홀딱 벗은 동무들이 너무 웃겨 배꼽

잡고 뒹굴었어요.

그러다 친구와 부딪쳐 풀숲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들꽃 머리에 떨어진 왕관 쌀은 꽃술을 잔뜩 바르고 있다 놀러온 무당벌레에게

몸을 내 주었어요.

 


 

 

 

 

 

이번엔 귀걸이 쌀에게 문제가 생겼나 봐요.

한쪽 귀걸이가 톱니에 걸렸는지 두동강으로 부서져 샛길로 빠지네요.

조각난 쌀들이 모이는 싸라기 방으로 들어간 것 같아요.

그곳은 죽이나 누룽지 공장으로 떠나는 쌀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예요.

 


 

 

 

두 개의 방으로 갈라진 친구들은 도정이 끝난 후 안녕하며 정미소를 떠 났어요.

일반미가 된 쌀은 아저씨 등에 업혀갔고 싸라기 쌀은 운반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그들의 만남은 이제 마지막 이예요.

서로의 운명이 여기서 갈리는 거지요.

 


 

 

 

청진기 쌀과 수영복 쌀은 어느 가정집 쌀독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쌍둥이였던 리본 쌀이 이상한 피부를 가지고 나타난 거예요.

수영복 쌀은 푸르스럼하게 변한 친구를 유심히 보았어요.

그리고 피부가 왜 그러냐고 물었죠.

리본 쌀은 속옷을 입어 현미가 된 거라 대답했어요.

 


 

 

 

 

지난 6개월 간 그들에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죽정이로 말라 죽거나, 먹히거나, 헤어지거나...

 

온갖 위험에서 살아 남은 친구들은 자랑삼아 경험담을 늘어 놓기 시작했어요.

청진기 쌀은 메뚜기가 얼굴에 앉아 목이 꺾일 뻔 했고,

멍석 밖으로 떨어진 리본 쌀은 농부 아저씨 눈에 띄어 구조되었으며

신발 쌀은 홍수에 잠겨있다 숨막힐 직전에 물이 빠져 목숨을 건졌다고 했어요. 

 

소꿉친구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친구들을 축하하며 밤새 놀았어요.

 

 


 

 

다음 날,

 

엄마가 갓 빻은 햅쌀로 밥을 짓기로 했어요.

엄마는 독에 담긴 쌀을 바가지에 퍼 수도꼭지의 손잡이를 틀었어요.

하얀 분이 발린 쌀은 쏟아지는 냉수 샤워를 하며 뽀얀 먼지를 씻어 내 갔어요.

쌀은 씻을 수록 유리구슬 처럼 투명해져 갔고 쌀뜬 물도 점점 맑아 졌어요.

 


 

 

 

마지막 헹굼이 시작 될 즈음,

 

수영복 쌀이 고민에 빠졌어요.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의 운명이 끝이라는 걸 직감한 거예요.

그래서 떠나기로 했어요. 

친구들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수영복 쌀은 용기를 내 거센 물살을 헤엄쳐

하수구 여행을 떠 났어요.

그녀가 강으로 갔는지 바다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씻겨진 쌀들은 밥솥에 나란히 누웠어요.

취사가 시작되자 쌀들 몸이 노골 노골 하도록 밥솥이 데워져 갔어요.

아랫목에 누운 안경 쌀은 따끈히 지져오는 온기에 눈꺼풀이 풀려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어요.

 

칙칙칙----  파르르~~

꿈결에 아득히 기적 소리가 들려요.

 

밥솥은 한동안 요란스럽게 방울을 울려대더니 서서히 멈췄어요.

밥이 다 되었나 봐요.

 


 

 

 

 

엄마가 밥솥을 열었어요.

구수한 향기가 뿌연 김과 함께 하늘 높이 솟아 올라요.

3배나 부푼 밥은 하얗게 밥솥 가득 찼어요.

 

목걸이 밥은 살이 너무 불어 목이 아~악! 조였고,

팬티 밥은 팬티가 훌러덩...  

원피스 밥은 배꼽까지 옷이 올라가 아수라장이 되었어요.

밥이된 형제들은 갑자기 변한 서로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어요.

 


 

 

 

엄마가 주걱으로 밥을 뒤적여요.

밥을 푸려나 봐요.

 

그런데 어이쿠~ 이를 어쩌죠?

 

신발 밥이 주걱에 붙었어요.

신발 밥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재빠르게 발가락을 들었어요.

그러나 뒷꿈치가 철썩~

신발 밥은 앞으로 뒤로 춤만추다 빛의 속도로 엄마입에 빨려들고 말았어요.

 

그가 원한건 이런 품위없는 최후가 아니었는데 말이죠. ㅉㅉ

 


 

 

 

 

 

엄마는 끓여놓은 된장국에 소꿉친구들을 말았어요.

그리고 숟가락으로 저어가며 식혔어요.

때문에 어린 친구들은 느닷없이 강강술래를 해야만 했어요.

그것도 엄마의 손놀림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 가며.

개 중 몇몇 동무들은 강강술래가 싫었어요. 강제성을 띠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항의의 뜻으로 배춧잎에 올라 앉아 꼼짝않고 있었어요. 

그제야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국그릇을 창문 밑에 놓았어요.

엄마도 미안했나 봐요.

 

아가가 맛있게 밥을 먹어요.

된장국에 말린 밥알들은 아가 입만 쳐다 보며 차례를 기다렸어요.

드디어 가발 밥, 원피스 밥이 아가 입으로 들어가네요.

 


 

 

 

 

아가는 입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먹었어요.

갑자기 아가 코가 씰룩~

 

"에~취~~치~~~" 

아가가 재채기를 했어요.

에이~ 더러버

 

밥알들은 재채기 폭탄을 맞아 일제히 밖으로 튕겨 흩어졌어요.

가발 밥은 멀리 날아가 고꾸라졌고 원피스 밥은 옷이 뒤집혀 버렸어요.

 


 

 

 

 

엄마는 흩어진 밥풀들을 휴지로 콕콕 집어 쓰레기 통에 버렸어요.

그렇다면 그들의 운명은 여기서 끝일까요? 

오~!  노.

그렇게 섣불리 판단하면 안돼요.

 

그들은 이제 딱딱하게 굳어 미이라가 될 거예요.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있다 훗날 유물로 발견되어 박물관에 전시될지도 몰라요.

 


 

 

 

 

엄마는 아가에게 다시 밥을 먹였어요.

아가가 입안가득 음식을  채우고 밥상을 두드리며 노네요.

밥먹을 마음이 영~ 없나 봐요.

 

소꼽친구들은 초조해져 갔어요. 

시간이 지체될수록 된장국이 몸을 더렵혔기 때문이죠.

게다가 좁은 공간에서 멸치가 눈뜨고 보는건 공포 그 자체였어요.  

그러나 인내도 배웠어요.

 

드디어 엄마가 다 먹었다며 손뼉을 치네요.

따라쟁이 아가도 짝짝짝... 쳤어요.

 


 

 

 

 

 

 

엄마는 빈 그릇을 숟가락과 함께 물통에 넣었어요.

잠시 후~

물통 속의 그릇이 옆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네요.

무슨 일일까요?

그릇 밑에 붙어있던 팬티 밥이 퉁퉁불어 가장자리를 밀어 올리는 거예요.

 

팬티 밥은 엄마의 설거지가 끝나도록 꾸정물에서 놀았어요.

미래를 꿈꾸면서 말이죠.

 

엄마는 팬티 밥이 야심강한 밥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노약가축을 위한 특별식으로 팬티 밥을 선택했어요.

팬티 밥은 다른 야채들과 함께 물기를 뻰후 냄비에 넣어졌어요. 

그리고 뜨거운 냄비에서 뽀골대며 꿈을 이루어 갔어요.

 

 

 


 

  

 

청진기 밥, 안경 밥, 목걸이 밥은  무사히 아가 배 속에 들어 갔어요

이제 그들의 임무는 끝이난 거예요. 성공이죠.

 

아가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요. 

배 속에 들어간 밥도 아가와 함께 뒹굴어요.

밥은 시간이 지날 수록 산산히 흩어져 갔어요.

그리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어요.

 


 

 

 

ㅋㅋ... 아가가 응가를 하고 있네요.

 

밥은 동무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세상에 다시 나왔어요.

이젠 아무도 그들을 알아 볼 수 없어요.

심지어 쌍둥이였던 친구들 마저도.

 

똥이라는 새 이름도 얻었어요.

똥이된 밥은 자신의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 소리만 듣고도 천적들이 소스라쳤으니 근사해 보였든 거죠.

 

어디서 지독한 냄새가 풍겨요. 

똥은 두손으로 코를 막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우아한 자신이 살기에는 세상 공기가 너무 탁하구나' 라구요.


 


 

 

 

 

똥은 화단에 묻혔어요.

내년 봄 새로운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 모습을 감춘 거예요

 

봄이 왔어요.

똥이 정말 마술을 부린 걸까요?

똥무덤 위에 민들래가 자랐네요.

꽃도 피었어요. 똥 닮은 노란색 이예요.

그뿐이 아니예요.

쌀처럼 하얀 솜사탕까지 만들어 씨를 태우고 하늘로 날려 보내요.

 

하나~ 둘~ 셋~ 

 

 


 

 

 

 

하늘엔 민들래 낙하산이 봄눈을 뿌리고 있어요. 

까만 씨방을 고이 달고서.

씨방에는 쌀의 유전자들이 타고 있어요.

과학적 혈통을 담은 소꿉친구들이죠.

물론 똥의 DNA도 담고 있구요.

 

씨방에 옹기종기 담긴 유전자는 

솜사탕 타고

봄, 여름, 가을

세상 구경을 떠 났어요.

 

희망의 씨를 뿌리기 위해 하늘 높이 날아간 거예요.



쌀을 씻을 때마다 한톨 한톨 버려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1년 동안 애써 지으신 부모님 생각에서다.

쌀은 늘 경이롭고 감사한 존재다.

 

어느날 쌀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다 쌀들이 쌍둥이로 태어나 희노애락을 겪으며 각자의 생을 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콩보다 작지만 그들도 분명 운명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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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네
쌀을 갖고 이런 글을 오마나
(2011.12.02 00:03:16)  
까미이모

고마워요. 행복하세요.


(2011.12.11 14: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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