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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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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달 (5)

조각별 조회 5,26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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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랐던 이야기 중의 하나를 책을 뒤적이다가 알게 되었다. '면죄부'라는게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혜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참전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할 테니 자신들에게도 '면죄부'를 달라고 해서 교회가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상당수가 자신이 삶을 잘 못 살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잘못도 많이 저지르고, 타인이나 타 생명에게 죄도 많이 짓고, 자연에 해를 끼치고 자신의 영혼을 좀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약하거나 혹은 착한 사람들이다. 
 '면죄부'가 나쁜 건 바른 삶을 산 영혼이 맑은 자들을 위한 하늘나라의 좋은 자리를 마련해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한다. 돈 있는 사람에게 천국의 가장 좋은 자리를 판매하는 것은 기독교 사상의 오류라는 말인 듯하다. 흠, 그러게. 하느님을 신심으로 섬긴 자를 위한 자리가 보장되어 있어야 하긴 했다. 그런데, 돈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팔아서 만약 교회 지도자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가난한 자들이나 소외된 이웃을 도왔다면, 면죄부 사업이 나쁜 것만도 아니었을 텐데.
 <뭐야, 면죄부라도 사고 싶은 거야? 뭐 특별히 잘못하고 살았어? 아니면 돈이 남아 돌아? 가난한 자들을 돕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면죄부 사서 도우려고?>
 달이 내 잡다한 생각 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내가 기독교인이냐? 내가 교회 가는 거 봤어? 난 올곧게 예수님을 철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나한테 면죄부는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루터 아저씨의 대립각일 뿐이야.)
 <그런데, 이 새벽에 왠 면죄부 타령이야?>
 (책 읽다가 문득, 교회에서 생수 사업을 하는 거랑 면죄부 사업을 하는 게 뭐가 다를까를 생각해 보던 중에 ... 헛 생각을 해 보았을 뿐이야.)
 난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의 사회 사업이나 교육 사업, 자선 사업에 감사하는 편이다. 따로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한 적은 없지만 그들의 활동 덕에 영혼을 살리고, 생명을 구한 경우가 부지기수임에 감사한다. 생수를 팔거나 면죄부를 나누어주거나 어떻든 경제활동을 해야 교회의 수 많은 사회 사업이 유지가 되는 거라면 뭐, 굳이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면죄부 샀다고 마음 놓고 나쁜 일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보다는 면죄부 샀으니 더 바르게 살아서 더 이상 면죄부 살 일 만들지 않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텐데. 
 <네 생각의 단순함은 언제나 경이롭다.>
 (그래서 네가 나와 친구하는 거 아닌가?)
 <종교가 기업과 같다면야, 선택의 여지가 많으니까 상관 없지만, 종교라는 건 일종의 권위와 강압이 작용하는 거라고 봐. 그러니 교회에서 파는 생수, 교회에서 파는 면죄부는 현실적 가치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고, 사람들을 현혹시킬 가능성은 몇 배 더 커져. >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의지잖아. 그게 문제라면 나중에 반품이나 환불의 자유를 보장하면 될거 아냐. 다른 판매자들처럼 판매 후 14일 이내에 환불 가능하다고 하면, 집에서 곰곰히 생각하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의논하고, 그리고 의사 결정을 할 거 아냐.)
 <그렇게 사업하려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데, 정부에서 면죄부 판매를 허용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종이를 판다면 모를까.>
 새벽에 달과 내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을 주고 받는 시간이 참 좋고, 소중하다. 생각의 정리와 영혼의 정화가 관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면죄부를 팔아도 좋으니 교회가 좀 더 인간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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