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새글

11월 22일 (금)

안녕하세요

창작동화

목록

나와 달 (3)

조각별 조회 4,563 댓글 0
이전글
다음글

 사람은 질소나 이산화탄소로 숨쉬지 못한다. 그저 산소가 필요할 뿐이다. 어떤 생명체는 질소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데, 인간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체 구조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비소를 먹고 사는 박테리아가 있다는 내용을 읽었는데,  생명체는 참 다양한 것 같다. 오묘하기도 하고. 참고로 인간은 혹은 그와 구조가 비슷한 생명체는 비소를 먹으면 죽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들어온 날들은 하루 종일 버거운 느낌이다. 왜 그럴까 ..에 대해 한 동안 참 오래 내가 알게 모르게 생각을 해 오고 있었나 보다. 청정수에 사는 피라미라서일까-> 물론 아니다. 난 적당히 혹은 예상보다 훨씬 더 오염된 환경에 익숙하다. 그리고 나 자신이 오염시키는 환경은 정말 광범위하고, 그 독소 또한 누구 못지 않게 강할 때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버거울까. 또 다른 이유. 내가 남다른 척 하고 싶은 사람이라서. -> 물론 아니다. 남 다른 척 하는 게 결코 인생에 이득이 되지 않음을 깨우쳐 익힐 만큼 경험치는 쌓여 있다. 그리고 남 다른 척 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 대해 그러지 않아도 될텐데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최근 찾은 답은 (물론 정답일 리는 없지만 과정으로서의 답은) '말'에 있었다.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를 한다. 안부를 묻거나 과거를 더듬어 이야기 하거나 미래의 계획을 지어내거나 혹은 드라마 이야기, 새로운 소식, 국제 정세, 환경 문제, 교육관련 이슈, 사회적 책임이나 의무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 그 수 많은 말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담겨서 내 집으로 함께 귀가를 한다. 대부분의 경우 하지 않아도 될 말들. 혹은 나나 상대방을 상처입히는 말들. 무시하는 내용들. 뭐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이 말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붙어 있다가 온 집안을 표표히 떠다닌다. 그리고 끝없이 불어난 그 말들이 내 의식을 짓누르는 것이다. 버겁게.
 필요 이상의 말들은 정화가 필요하다. 되내어 생각하며 다듬거나 다시 필요하게끔 만들어 집 밖으로 내 보내야 한다. 그 과정이 꽤 오래 걸리는 것이다. 아프게 오래.

<그래서, 지금은 정화 중인거야? 말에 상처를 주고 받아서?>
(어, 알잖아. 내가 특히 친족들을 만나고 들어온 날은 머릿속이 참으로 어지러운 것을. )
<혼자서 떠들어 줄까. 마치 저절로 작동하는 라디오처럼. 그게 네 정화 작업에 도움이 될까.>
(..................)
<수학 좋아해? 오늘은 수학을 좋아하려고 애쓰는 아이 이야기를 들려줄게. >
(왜 그런대? 수학처럼 빈틈 없는 학문이 뭐가 이쁘다고.)
<잘 모를 때는 수학이 허점이 많아 보이거든. 그냥 들어. 그 아이는 세상에서 1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대. 그리고 위대한 숫자 0에 대해서도. 그런데, 수학에서 0과 1은 어느 것도 넘볼 수 없는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수학을 공부해가면서 알게 되었다는 거야. >
(뭘 말하고 싶은데? 피보나치 수열? 피타고라스? 중국의 수학자?)
<아니, 그 아이가 0과 1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거. >
(흠, 그래서? 나도 말에서의 0과 1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그런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 세상의 모든 수학을 움직이는 0과 1에 대적할 만한 인간의 말이란 존재할 수 없어. 말은 수학처럼 빈틈없는 게 아니거든. 무한한 빈틈이 무한한 의미를 만들어내서 합의점을 찾기 어려울거야.)
<그래도 시도를 해 보는 건 어때? 예를 들자면 네가 좋아하는 말 중에서라도. >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안다. 말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딱딱한 척해도 말은 감정이다. 그래서 언제나 주관적이다. 내가 사람들의 말을 버거워 하는 것, 그 중에서도 인격적 거리가 형성된 사람들 사이에서 더 많은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말이 감정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감정의 강도는 다르다.

(찾아볼게. 노력은 하지 뭐.)
<말이 귀찮아졌니? 금새 수긍하니 김 빠진다.>
( 그 아이 얘기나 계속해봐. 수학와 친해지려는 애.)
<지금은 한창 창의력 수학에 빠져 있어. 문제 해결능력을 길러야 한대나 뭐래나. 그래도, 무언가에 열중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야. 목표가 정해졌다는 말이잖아.>
(............)
(어디 살아?)
<이 근처에.>
(다음에 그 애 집에 방문할 때는 내 안부도 전해줘. 말이 많은 아인 아니지? 내가 말을 감당하기는 좀 어려워서 말이야.)
<네가 감당 못할 말은 안 할 아이야.>

 달이 밝다. 말은 어렵다. 수학은 빈틈이 없다. 한 아이는 수학을 공부하고 있고, 나는 이제 0과 1의 역할을 할 말을 찾아야 한다. 아주 단순하고, 빈틈이 없어서 모든 문명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말. 그런게 존재했으면 한다.
   게시글을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뒤로 목록 로그인 PC버전 위로

© https://feel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