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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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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달 (2)

삼삼한거리 조회 4,4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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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만나는 건 혹은 사람들 속에 있는 건 말이야, 공기나 밥 같은 건가봐. 안 그러면 사람의 사회적 생명은 끝나버리거든. 뭐든 습관 들이기 나름이라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그런데로 살만하긴 하지만, 금세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잊어버리게 돼. 그건 참 곤란한 일이야. 그래서 모자라도 뒤집어 쓰고 거리로 나서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건 목이 꼭 끼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하고 어색해. 거북이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숨을 쉬려 해 보는데, 참 우스꽝스럽게 보인달까. 난 여전히 사람이고 싶으니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하겠지. 거북이로 보이는 것도 한동안 일거야. 결국 어느새 또 적응하여, 사람으로 보이는 날이 이내 찾아올테지. 참, 난 사회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 같아 혼자 곤란해하고 있어.
 (달님, 오늘은 조용하네. 나 혼자 주절거리기 싫은데, 한 마디 하지.)
 달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언제나처럼의 그 달이다.
 <들려줄 얘기는 많은데, 세상 속의 널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잠시 생각중이었어.>
 (그 분 이야기를 들려 줘. 묵언 수행을 하신다는 그, 눈빛이 현명한 수행자 이야기)
 이건 예전에 들었던 달님의 지나가는 이야기였다. 그런 분이 있다는. 묵언을 한다는 조금은 답답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분 이야기.
 <묵언은 풀렸어. 지금은 사람들 속에 계시지. >
 (현명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신거야?)
 <아니, 그냥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배추 기르는 이야기, 보리 농사 이야기, 산을 오르는 이야기, 맛있게 밥을 짓는 이야기 등을 하시지.>
 (그분의 말에 깊은 울림은 있는 거겠지.)
 <글쎄. 너무 오래 묵언을 하셔서 말하는 법을 거의 잊어버리셨어. 그래서 어눌해. 세련됨도 없고.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기는 어려울거야.>
 (그럼, 난 그분의 깊이를 느낄 수 없겠군. 꾸며진 말에 익숙하고, 현란한 말솜씨에 쉽게 넘어가는 편이니까.)
<어, 그럴거야. 넌 조급하잖아. 말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너에게도 타인에게도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하지 않지. 그러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야.>
(네가 하는 지적은 나로서는 알지만 알지 못하는 거야. 그건 정도의 차이일 수도 있고, 경험치의 부족일수도 있는건데, 난 언제나 네 말을 아는 것 같지만 실제 네 말을 정말 아는 건 아니야. 가끔 허영을 부리고 싶을 때 아는 듯 잘난 체하기도 하지만 '정말'은  난 너의 말을 모르는 거야. 어찌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거든)
<어,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때로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은 아니야. 그건 굳이 따지자면 시간의 탓이라고 하자. 너에게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말'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
 달은 그 후 들어도 되고 듣지 않아도 상관 없는 산다람쥐 이야기와 노란 복수초 이야기와 벼랑에 핀 진달래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려주었다. 달의 이야기들이 내일 어떤 형태를 갖추고 내 입을 통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갈까, 나는 궁금해진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는 반은 거북이 같은 내가 산다람쥐와 복수초와 진달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 뻔한 이들을 만나 얼마만큼 입 속의 보리알 같은 이야기를 해낼 수 있을까. 보리알이 찰진 쌀밥알이 될 때까지 쉬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든다.
 달이 한 동안 더 내 방안을 비추다 이내 자신의 길을 따라 간다. 나도 나의 꿈길을 따라 가다가 이내 현실에서 깨어나 현실에서 사람들을 만나 산다람쥐와 복수초와 진달래 이야기를 어린이 동화와 약초와 사진 이야기로 절묘하게 바꾸어서 이야기해야 한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은 사람이 된다. 이건 변치 않는 진리다. 그리고, 다시 달을 만나는 어느 저녁에 나는 어눌한 말씨의 수행자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말이 주는 울림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거다.
 나와 달의 거리만큼 나와 수행자의 거리는 멀다. 그 사이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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