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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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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의 보리

동화순 조회 3,19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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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꼭 돌이네 보리밭에 가서 보리이삭을 주우러 가야지 마음을 먹으면서 복도로 나와 신발장에서 고무신을 꺼낸다.

그때 교실안은 왁자지껄하면서 빵을 나누어 가지나 보다.

나는 선생님이 밉다.

아니 내가 싫다.

선생님은 보리이삭을 많이 한자루씩 가지고 온 애한테만 빵을 나누어 주시고, 가지고 오지 아니한 아이에게는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매 세례와 내일 다시 가지고 와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너무너무 창피하고 마음속으로 분노하였다.

그러나 내일도 나는 돌이네 밭으로 갈볼까 생각하지만 거기도 돌이가 다 줍고 다른 아이들도 추수할때 이삭까지 다 줍기 때문에 탈곡기에서 털어놓은 것을 조금씩 털어서 학교에 가지고 온다.

오늘 아침에도 학교에 등교할때 다른 아이들은 한자루씩 아니면 한보자기씩 짊어지고 오는데 덕자만 코를 훌쩍이며 다 떨어진 책보자기만 등에다 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덕자나 나나 보리도 없고 땅도 없고 농사도 짓지 않고 너무 가난하지만 선생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추수끝난 보리밭에 이삭이 있으니까 이삭을 주워오라고 하신다.

나는 답답한 생각이 들면서도 터덜터덜 신작로를 걸어간다.

그때 산 귀퉁이에서 버스가 털털거리며 먼지를 날리며 달려 오길래 나는 얼른 신작로와 같이 흘러가는 냇가로 뛰어 들어갔다.

철퍽철퍽, 아래 치마단이 젖도록 발바닥에 힘을 주면서 흘러가는 물을 밟았다.

무릎 정강이까지 시원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냇물의 돌이 매끈거리면서 까만 고무신과 납작한 돌이 구분이 잘 안간다.

나의 집이 신작로에서 물건너에 있기에 이 냇물을 따라 집이까지 가자 생각하고 한톨로 들어가는 입구에 돌다리를 동네에서 놓았는데 나는 아무생각없이 돌다리옆 물살리 센 길목으로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옆으로 푹 주저앉고 말았다.

그 바람에 물이 허리까지 올라왔다.

시원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옷은 다 젖었는데 그때 나의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돌다리옆에 보리단 두단이 떨어져 다리 옆으로 물속에 누운채 막 떠내려 갈라고 하는것 처럼 보였다.

본능적으로 나는 보리단을 발로 밟고 사방을 훑어 보았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냇물 졸졸 흐르는 소리와 뻐꾸기 우는 소리 뿐이다.

나는 물속에서 보리단을 꺼내어 우선 바위 위로 올라가 보리 상태를 보았다.

방금 베어서 지게에 지고 가다가 떨어뜨린것 같았다.

어느집 보리인지 몰라도 나는 어깨에 메고 가던 책보따리를 젖은 허리에 메고 보리단은 가슴에 안고 짚앞 개울까지 정신없이 올라온 나는 보리 숨길곳을 찾다가 어제 해질녁에 언니랑 돌로 집을 짓고 소꿉놀이를 한 장소를 찾았다.

내가 지은 집은 돌이 허물어져 없어져 버렸지만 언니가 지은 집은 워낙 손이 야물어서 그래도 둥그렇게 돌이 쌓여 있고밑에는 넙적한 돌을 깔아논 그대로 있었다.

"오늘은 학교에서 늦게 온다니까 여기에 올 일이 없겠지?"

나는 혼자말로 얘기하고 보리단을 그 돌 밑에다 죽 널아다 내일 아침 일찍 와서 보리머리만 잘라가면 될 것이었다.

"에휴. 내일은 손바닥 맞지 않겠다."

나는 안심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대문옆에 앵두나무 옆에서 발을 멈추었다.

열매는 다 따고 잎파리만 무성한 앵두나무꼭데기에 빨간 앵두 세개가 살이 쪄서 터질것 같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나무를 휘어잡아 앵두를 단숨에 입에 넣었다.

너무 달콤하고 새콤한 맛.

내일 학교에 입고 갈 옷이 없기 때문에 빨리 빨아서 말려야 하기 때문에 나는 물에 젖은 옷을 벗어서 얼릉 냇가로 달려갔다.

건너편에서 영실엄마가 큰 소쿠리에 밀을 넣고 휘휘 헹구고 있었다.

그리고는 혼자말로 "저녁에 수제비 끓여 먹기는 틀린것 같구먼..."

저녁을 먹고 마루에 길게 모기장을 치고 숙제를 하면서도 나는 보리생각을 잃지 않았다.

탁탁탁 엄마가 신발을 심하게 끌면서

"아이고 이 옷 다 젖었다. 갑자기 비가 이리도 온다냐."

하면서 마당에서 급하게 빨래를 걷는 엄마의 등은 빗줄기에 젖어 있었다.

숙제를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공책을 베게 삼아 자다가 엄마가 빨래를 걷으면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나는 본능적으로 보리생각을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금방 그칠것은 아닌것 같고 혼자말로 혀를 끌끌 차며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보리가 떠내려 가겠구나 하며 혼자 안절부절이다.

대문밖에는 쏴쏴 하는 굵은 빗줄기소리와 함께 냇물소리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물이 많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튿날 아침 무섭게 내려가는 천둥소리와 같은 누런 흙탕물을 물건너에 언니를 내려 놓으시고

"얼릉 옷입으라. 언니랑 학교 같이 갈라면 서둘러야지." 하신다.

아버지 등에 업혀서 어제 갔다놓은 누런 보리단과 누런 황토물이 겹치면서 색깔이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학교가 기기 싫으면서......

어제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물건너에 사는 아이들이 결석과 지각을 많이 하였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선생님이 언제 들어오셨는지 교탁을 탁탁 치시면서 출석을 부르셨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보리얘기를 하셨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물에 젖은 보리깨끗한 보리를 가지고 나와서 교탁옆에다 놓고 들어갔다.

"안가지고 온 사람 일어서!"

불호령이 떨어지고 일어선 사람은 나와 덕자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아이들 중에 지저분하고 코흘리고 머리에 기꼐충있는 양재 셋이 일어났다.

"지금부터 셋은 나가서 보리이삭을 자기의 책보자기가 꽉 차게 줏어온다. 나가! 그리고 여러분은 국어책을 펴세요."

나는 소리없이 일어나 책보자기를 한손에 움켜잡고 나왔다.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냇가 흙탕물로 들어갔다.

한번 넘어졌지만 떠내려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추수가 끝나고 비가와서 몇알 떨어진 낱알도 싹이 틀려고 하는데 나는 주었다.

정신없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재를 넘어서 다른 밭도 샅샅이 돌아다녔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때는 덕자도 양재도 보이지 않고 해는 서산에 걸쳐있었다.

한 보자기가 된 보리를 안고 학교에 도착했을때는 운동장도, 고실도 텅 비어있었다.

나는 교무실 문을 열고 눈치를 살피면서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그리고 망설이면서

"선생님 보리 주워왔는데요."

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힐끗 훑어보신 선생님은

"그래, 당직실 마루에 모아놨으니까 거기다 갔다 부어놓고 집에 가거라."

보리를 안고 당직실로 들어 섰을때 나는 경악했다.

소사 아저씨가 키우는 닭들이 열어논 문으로 들어와서 그동안 모아논 보리 위에서 다 쪼아 먹고 발로 헤집어 놓고 닭똥을 싸고 온통 난장판이었다.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닭들아 내꺼도 먹어라." 혼자말로 하고 그 하루종일 온갓 열등감과 모멸감과 햇빛과 더위와 싸우면서 주어모은 보리를
쫙 쏟았다.

그리고 흙범벅이 된 보자기에 싼 교과서를 안고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그리고 혼자말로

"닭들은 배 부르겠다. 나는 배고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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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는절대반지
글이 참 짜임새있고, 따뜻합니다. '옛날'이라는 것은 참 그립지만 또한 눈물겹기도 합니다. 1972년의 보리를 저는 본 적이 없지만 풍요롭다기보다는 눈물겨웠을 것 같습니다. 좋은 동화네요. 동화 방에서 글 쓰는 사람이 드문데요, 자주 글 올려주세요. 많이 배우겠습니다. ^^*
(2004.08.14 00: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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