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공주 (6)
호밀밭의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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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경비가 삼엄한데? 여기가 정말 무지개 나라야?"
종이 공주가 물었다.
"이제부터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아니면 이 나라로 들어가지 못해."
초챙이 소근거리며 말했다.
"무지개 나라가 아니라 무서운 나라로군."
"전쟁 중이거든. 흠, 쉿. 우리 차례야. 알지? 성질 부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명심해. 안 그러면 버리고 간다."
눈부신 경비원들이 버티고 선 곳. 장검이 노오란 색이다. 아주 선명한. 흠흠.
"이웃 나라 공주님 일행이 도착한다는 연락은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우리의 질서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지금 입고 계신 옷은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동행이신 마법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
절도있는 말투. 그러면서 새파아란 드레스를 건네준다. 초챙은 보오라색 망토. 그리고 .. 새로운 동행 채찍뱀은...
"기본적으로 우리 나라로 들어올 수 있는 뱀은 레인보우 보아뱀 뿐이지만 특별히 공주님 일행이시니 채찍뱀은 주황 띠를 두른다는 조건하에 허가하기로 했습니다 ."
^^;; 하하. 무지개국은 무슨. 무서운 국 맞구만. 이렇게 해서 파아란 드레스 입은 공주와 보라색 망토 입은 마법사와 주황색 때 두른 채찍뱀이 무지개국으로 들어섰다.
무지개국은 딱 일곱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원색이어야 하며 섞인 색은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하늘도 파란 색이 아니면 취급을 안 한다. 저녁이 되면 검게 저물지 않고, 남색으로 변한다. 하늘까지 조절한다니.
"이봐요 공주. 왕궁으로 인사 가기 전에 먼저 말할게요.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곳은 색깔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에요. 칠색 무지개 이외의 색을 인정하지 않는 이곳 왕이 다른 색깔릉 모두 물리치면서 늘 다툼과 분쟁이죠. 왕 앞에서는 절대로 칠색 무지개 이외의 다른 색을 말하면 안 돼요."
"으으으. 안 되는 게 왜 이리 많아?"
무지개 왕궁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시 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구름마저 원색이어서 마치 유아용 동화책을 읽고 있는 듯했다.
"아이고 이런 페이퍼 공주. 파란 색이 참 잘 아울리시는군요."
자애롭게만 보이는 붉은색의 왕은 최근 가장 강력한 적인 흰색과 검은색의 도전을 획기적으로 물리칠 방법을 궁리하느라 아름다운 초록색 머리카락이 숭숭 빠진다며 걱정이셨다. 화를 낼 때에도 파랗거나 빨갛게 질리실 것 같은 무지개 나라의 왕.
"무척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아름다운 만큼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공주가 공손하게 말하자 왕이
"조만간 흰색과 검은색을 물리친 다음 평화를 이룩해야지요."
라시며 허허 웃으셨다.
왕궁에서 물러나와 점심식사를 하러 숙소에 들렀다. 공주 일행을 위해 마련된 숙소는 빨강과 초록이 조화를 이룬 귀빈용이었다.
"초챙. 나 멀미나는 것 같아. 원색만 봤더니 어지러워."
"이봐. 채찍뱀은 이미 기절했어. 저 주황 띠에 영 적응을 못할 것 같은가봐."
그리고 나온 음식. 빨간 파프리카, 초록 파프리카, 노란 파프리카, 그리고 보라색 양배추.... '더 없어?' 공주가 눈짓으로 묻자 초챙이 소근거렸다.
"주는대로 먹어. 무지개색 이외에는 존재할 수 없다니까."
"여기 사는 국민들이 정상이라면 내가 '존경'한다고 전해줘."
"그래도 우리가 먹는 건 고급스러운 음식이야. "
"채찍뱀을 깨워야 하지 않나?"
"밤에 잠시 국경 근처에 갈 일이 있는데, 그 때 깨우자. 워낙 잠이 많은 녀석이니 지금은 놔두고."
아삭아삭아삭아삭. 파프리카만 먹고 .. 헛헛한 배를 부여잡고 앉은 공주. 마침 날이 저무는데, 남색빛이 유난히 훤하여 불빛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