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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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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갈래의 길 이야기 - 첫번째 길

하마씨 조회 2,68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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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날이 밝았고, 일곱 명의 방랑자 중 한 사람이 여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그가 택한 곳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길이었다. 잠들지 않고 새벽을 맞았던 불을 피운 자가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이유로 그 길을 택했습니까?"
그러자 설득력 있는 목소리가 대답했다.
"제 눈길이 닿는 길 끝에 나무가 서 있군요. 체리나무였으면 합니다만 그게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나무는 희망을 주는 존재여서요. 저는 길을 택한 게 아니라 저기 서 있는 나무를 택한 것입니다. "
불은 피운 자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길 끝에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는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집 한 채라고 해도 논쟁에 휘말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이번 길에서 당신은 희망을 찾게 될 것입니다."

첫번째 여행자는 길 위에 섰다.
새벽 공기에 물기가 묻어 있었고, 그 찹찹함이 마음에 들었다.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는데, 그는 꽤나 알아주는 음치에 박치였다. 그래서 입 속에서만 흥얼흥얼. 그리고 길을 걸었다.
나무 아래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도착하였다. 곧게 뻗은 길이고, 장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체리 나무는 아니었지만 그늘이 넉넉한 식물이었다. 아침 요기를 할 양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나무 아래를 배회하던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왔다.
"음식을 먹을 건가요? 저에게도 나누어 주세요."
"그러지 뭐. 무얼 먹을 수 있는 거냐? 베이컨? 햄? 아니면 오렌지라도?"
"그걸 다 주실 수도 있나요?"
동그란 눈을 빛내며 다람쥐가 물었다.
""지금 심하게 배가 고픈 것은 아니니, 내걸 조금 남긴 다음 아침 거리로 먹으려 했던 것을 줄 수는 있지."
첫번째 방랑자가 흔쾌히 말했다.
"흠, 그럼 저에게 줄 수 있는 게 얼마만큼인지 줘 보세요."
첫번째 방랑자는 소시지 한 쪽과 오렌지 한 개를 제외하고, 베이컨 두 쪽과 행 한 장 그리고 오렌지 한 개를 다람쥐에세 주었다. 다람쥐의 먹을 거리는 다람쥐 몸집보다 세 배는 커 보였다. 그런데도 그 많은 걸 얌냠 쩝쩝 다 먹은 다람쥐는
"당신이 저에게 준 음식 만큼의 희망을 드리죠."
라는 말을 남기고 왔던 대로 쪼르르 사라졌다.
"뭐야, 말동무라도 해 줄줄 알았더니.."
첫번째 방랑자는 허탈해졌다. 바야흐로 해가 둥실둥실 떠오르려는 시각. 다시 길을 재촉해야 할 상황이다.

첫번째 방랑자 -그의 이름은 캐빈이다 -는 버섯 마을에서 왔다. 수백 년 간 이어져온 버섯 마을의 평화와 번영은 지난 수개월 사이에 너무 쉽게 무너져가고 있었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나무들이 사라져 가고, 이와 동시에 버섯들이 살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빈의 부모님은 아들을 떠나 보내면서 말했다.
"길을 떠나라. 어느 곳으로 향하든 네 마음이다. 어느 곳에서 멈추든 그것도 너의 선택이다. 다만 만약 우리 마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면 그 때는 주저없이 돌아와주기 바란다. "
딱히 어찌할 방법을 알지 못 했던 마을 주민들은 상당수의 자녀를 외지로 내 보내며 난관을 극복할 방법이 마을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 수 많은 젊은이 중의 하나가 캐빈이었고, 캐빈은 지금 희망을 찾고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나와 다시 한참을 걸었다. 개울을 지나고, 산딸기가 뱇 고운 들판도 지났다. 몇몇 산딸기는 따서 빈 병에 채웠고, 몇 개는 심심풀이로 먹기도 했다. 이윽고 해는 중천에 떠올랐고, 캐빈은 부실하게 먹은 아침 탓에 허기를 느껴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 거리를 펼쳐 놓은 순간 시궁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다가왔다.
"네가 음식을 나누어주는 방랑자라면서? 나에게도 줄 수 있어?"
"그새 소문이 퍼졌나? 뭐 아침에 다람쥐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기는 했지. 그 때는 배고프지 않았거든. 하지만 지금은 나도 배가 고픈데 어쩌지?"
"네가 줄 수 있을 만큼만 나누어 주면 돼. 난 뭐든지 먹을 수 있어."
캐빈은 자신의 몫으로 햄 한 장과 옥수수 한 개와 사과 한 개 그리고 베이컨 두 조각을 갈랐다. 그리고 남은 것은 토마토 한 개와 소시지 한 개 그리고 길을 걸으면서 병에 담아 놓았던 산딸기 한 병을 시궁쥐를 위해 주었다. 얌냠 쩝쩝 먹은 시궁쥐는
"네가 준 음식 만큼의 행운을 너에게 줄게."
라고 말한 뒤 왔던 대로 쪼르르 사라졌다.
"오늘은 요상한 녀석들이 많군. 음식만 먹고 그냥 가버리다니. 친구도 해주지 않고."
캐빈은 다시 길 위에 섰다. 눈 아래 혹은 발 아래 마을에서는 음식 짓는 냄새가 한창이었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평화로운 마을도 있구나.'
쓸쓸한 마음이 한결 더 드는 캐빈이었다. 그 때 바짓단을 잡아 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라?'하고 내려다 보니 일개미 한 마리가 보였다.
"평화로워 보이나요?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네요. 그런데요, 저 평화라는 게오,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예요. 평화는 힘써 지키려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져버리는 거랍니다."
라고 말하고는 총총 제 갈길로 가려고 했다.
"이봐요, 무슨 말이죠?"
캐빈이 돌아보며 물었다.
"말 그대로예요. 당신의 마을에 평화와 번영이 흔들리는건 외부 사람들의 무분별한 벌목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안일한 생활습관 탓이 클거라는 말이예요."
개미 한 마리는 바쁜 듯 자신의 길을 재촉했다. 캐빈은 곰곰 자신과 마을 사람들의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마을의 풍요는 버섯 덕분이었고, 풍요로움 덕분에 너그러워진 사람들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살아갔다. 소나무 뿌리에는 언제나 송이버섯이 토실하게 자랐고, 뽕나무 줄기에는 상황버섯도 자랐다. 빈혈이 있는 사람들은 표고버섯을 먹었으며, 종양이나 바이러스에 맞서기 위해 팽이버섯이나 느타리 버섯을 상용했다. 사람들은 이 풍요와 평화에 너무 오래 익숙해져 버렸고, 이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 듯 버섯의 고마움을 잊어갔다. 늘 곁에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참 그렇게 상념에 잠겨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려하고 있었다.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허기가 졌다. 캐빈은 그루터기에 앉아 자리를 폈다. 절여서 구운 양고기와 아삭한 양상치 그리고 감자 두 개와 가늘게 썬 토마토 몇 조각.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뭐지? 아 그렇군.
"이봐요. 누구 없어요? 배 고픈 자가 있으면 나와요. 같이 먹어요. "
아침, 점심을 다람쥐, 시궁쥐와 함께 먹어서인지 저녁을 혼자 먹으려니까 허전했던 것이다. 그 때 등 뒤에서 종달새 한 마리가 다가왔다.
"정말 음식을 나누어주려구요? 얼마나 줄 수 있어요?"
"양고기 절반과 감자 한 개와 토마토 두 조각을 줄게요."
둘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삭아삭 얌냠. 참 맛난 저녁식사였다. 먹기를 마치고 종달새가 포르르 날아가려다가 한 마디 던졌다.
"당신이 준 음식 만큼의 노력을 줄게요."
희망과 행운과 노력을 선물 받은 캐빈은 그게 어떻게 자신에게 소용될지 의아했다. 뭐 그래도 준다니까 주어진 거겟지 생각하고 하룻밤 묵을 곳을 찾기로 했다.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것이 '아가리쿠스 마을'이었다.
마을로 들어가 묵을 수 있을 만한 곳을 물색했다. 그 때 한 사람이 다람쥐 한 마리를 품에 안고 다가왔다.
"나를 따라와요. 우리 집에서 묵을 수 있어요."
초로의 아주머니였다. 은근하게 불이 피워져 포근한 집에 들어서자 피로가 몰려왔다. 주인이 마련해준 잠자리에 눕자 이내 잠이 들었다.
'아까 그 다람쥐, 아침에 봤던 그 녀석 아닌가!! zzzz"

한참을 기분좋게 자고 있는데, 다람쥐가 와서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지금이라면 이 신령 버섯을 가지고 도망갈 수 있어."
"아함. 무슨 말이야. 난 지금 졸려."
"당신은 당신의 마을을 구할 방법을 찾으러 온 것 아닌가? 이게 그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어. "
이렇게 말하며 보여준 것은 버섯 마을에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태의 것이었다.
"당연하지. 여기서만 자생하는 거니까. 태양의 버섯이라구. 너희 마을에서 자생시킬 수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캐빈은 다람쥐가 건네준 버섯과 균이 담긴 병을 들고 서둘러 마을을 빠져 나오려 했다. 자신을 재워준 집 주인과 마을 주민들이 무언가를 눈치챘는지 횃불을 들고 달려왔지만 시궁쥐 수백 마리가 막아서는 바람에 캐빈은 무사히 마을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캐빈의 마을. 굴뚝에서 뽀얀 연기가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한 곳. 캐빈은 부모님을 찾아가 아가리쿠스에 대한 말을 했다.
"버섯은 특히 좋은 버섯은 아무데서나 자라는 게 아니야. 인공으로 재배하기는 더욱 어렵고.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균은 많으니까 여기저기 실험을 해 봐야죠. "
다음 날부터 캐빈은 태양의 버섯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다녔다. 소나무나 활엽수가 자라는 곳은 피했고, 습기가 많은 늪지도 실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절벽 가까이에 위태롭게 둥지를 튼 종달새 한 마리를 보았다.
'저런 곳에서 무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자신에게 노력을 주겠다고 했던 예전의 종달새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 곳에 균을 뿌려보았다.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은 없었고, 캐빈이 할 수 있는 일은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 뿐이다.

버섯이 자라기를 기다리면서 캐빈은 자신의 방랑을 정리해보았다. 방랑은 그 과정 속에 가치가 녹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을 품고 여행을 떠났다면 그 마무리는 출발했던 곳에서 지어야 한다. 캐빈은 지금 희망을 심었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버섯은 자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고, 노력하는 자에게 행운은 함께 하는 것이다.
어느날엔가 캐빈의 집 굴뚝에서는 다시금 뽀얀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 쓰다보니 왜이리 긴 것인지. 쩝.
끝에서 줄이고 줄이고 줄였는데....
너무 길다. 동화인데...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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