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갈래의 길 이야기 - 프롤로그
하마씨
조회 2,992
댓글 1
< 아주 포근한 봄날이었다. 사실 아직은 겨울이지만 ,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봄날에 가 있고 싶은 포동이는 지금 봄날에 시작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아주 폭신폭신하고, 보송보송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
봄 햇살이 보송한 날, 일곱 명의 여행자가 갈림길 앞에서 만났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일곱 개의 갈림길이었다.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은 나이를 짐작할 수도 성별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 휴식을 취하는 사이 어느새 날이 저물었고, 두건을 깊게 눌러 쓴 이들 중 하나가 갈림길 앞에서 불을 피웠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닥불 앞으로 모여들었다. 봄날이라도 날이 저물면 쌀쌀해지는 법이다.
<하 참, 누군가 먼저 물어보면 될텐데, 왜 저러나 몰라. 포동이는 답답하였다. 일곱 갈래의 길 중 하나를 택하여 다음 날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은 이미 그 길을 걸어온 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왜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일까. >
불기운에 취한 몇몇 사람은 잠이 들었고, 깨어 있는 사람들은 불빛에 취해 말을 잃고 있었다.
"제가 걸어온 길은 저에게는 좀 평탄했습니다. 심술 사나운 난쟁이가 산다는 소문에 겁을 먹었었는데, 아무도 안 나타나더라구요. "
불을 피운 자가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불빛만을 쳐다보던 다른 사람도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요? 저는 저 왼쪽에서 세번째 길에서 온 사람인데요, 거짓말쟁이들의 마을을 지나다 큰 봉변을 당했지 뭐예요."
앳된 목소리의 청년이었다.
"전 일부러 괴물을 찾으러 나선 사람인데요, 괴물은 커녕, 멧돼지 한 마리도 보지 못해 속상해하고 있어요."
왜소해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괴물은 모르겠지만, 사나운 들소가 사는 곳이라면 알아요. 제가 지나온 곳이죠. "
코가 구부러진 한 여자가 말했다.
"머루주가 기가 막힌 곳을 지나온 것은 저예요. 다시 가고 싶은데, 백 일만에 힘겹게 나와서 다시 가면 영영 못 나올까봐 겁나요."
아직도 술기운이 풍기는 자가 혀 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틀림없이 자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말소리에 잠이 깼나 보다. 저 쪽에서 잠꼬대 소리도 들렸다.
"으, 충분히 일했잖아. 이제 집에 가는 길을 가르쳐 줘. 일 년은 넘게 일했어.음냐음냐."
중년의 목소리. 피곤에 지쳐 보였다. 저 사람이 어느 길에서 왔더라? 그 길로는 절대 가지 말아야지. 라고 저마다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아주 말없이 조용하게 자고 있었다. 혹 깨어 있으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
다음 날이면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일곱 명의 여행객들은 일곱 갈래의 길 앞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여행이란 몸소 체험하는 것이고, 어느 여행지이든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새벽별도 지고, 바야흐로 날이 밝으려 한다. 어느 봄 날 아침. 일곱 명의 여행자들은 다시금 길을 떠나야 한다. 어느 길을 택하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