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헛말 - 2
한스와프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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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프리츠와 한스' 이야기는 대니얼 킨의 [이스마엘]에 나온다고 한다. 나는 [오 자히르]에서 에스테르와 작가인 나의 대화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 히틀러가 전쟁에서 이기고, 세상의 유대인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그 국민들이 정말 지구상에서 가장 우월한 종족으로 군림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역사 책을 갈아치우겠지. 백 년 후 그 후손들은 인디언들을 멸종시킬 거고, 삼백 년 후에는 흑인들을 쓸어내버리고, 그렇게 오백 년이 흘러. 강력한 전쟁기계는 결국 지구상에서 아시아인들까지 말살하기에 이르지. 역사책은 열등한 종족들을 쓸어내려고 싸웠던 옛 전투들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그러나 아무도 그런 이야기 따윈 주의 깊게 읽지 않아. 왜냐 하면 조금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br/> 그렇게 나치즘이 탄생한 지 이쳔 년이 된 시점에, 오백 년 전부터 체구가 크고 눈이 파란 사람들만 살아온 도쿄의 한 바에서 한스와 프리츠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한스가 프리츠를 바라보며 묻는다.
'프리츠, 넌 모든게 늘 지금 같았다고 생각해?'
'뭐가?'
프리츠가 반문한다.
'이 세상 말이야.'
'당연히 늘 지금 같았지. 우린 그렇게 배웠잖아?'
'그렇지?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걸까.'
그들은 맥주잔을 마저 비우고, 아까의 화제를 잊어버린 채 다른 이야기를 한다. >
작가는 말한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 인간관계, 우리의 욕망, 우리가 이룩한 정복, 이 모든 것이 한스와 프리츠이 대화처럼 어떤 왜곡된 이야기들의 결과물일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역사는 강자의 논리에 따라 쓰여진다고 들었다. 그래서?라는 반문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역사가 '약자의 논리로 쓰여져야 한다는 말인가. 과연 절대적인 객관성은 확보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객관성은 그 시대의 가치를 대변하는 객관성일 뿐이다. 한스와 프리츠에게는 게르만 민족만이 지구상의 유일한 종족이며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다. 혹 고고학적 자료 조사를 통해 지구상에 다른 종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혀낼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객관적 진리에 대해 배우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 대해 논한다. 수십 만 인류 역사에서 불과 몇 백 년 전에 전면에 등장한 가치이다. 과거는 모든 게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라고 해서 모든 게 지금과 같을까. 도식적인 대답은 물론 할 수 있다. 이유까지도 조목조목 들어가면서 말할 수 있다. 그것이 타인을 수긍하게 만들 수 있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해답을 찾지 못 하고 있다. '한스의 질문'은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