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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4일 (일)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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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 2

히카루 조회 2,89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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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떠올리다.

다시.
'철컹 철컹 철컹..'
그것은 수동식 타자기가 일을 하고 있는 소리. 스스로 할 리는 없고, 이것을 움직이는 이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둡다.
"깼니?"
엄마의 목소리다. 있을 수 없다. 엄마는 이제 이곳에 없음을 누구보다도 성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이제 커튼 걷어도 되지? 어두워서 자판이 잘 안보일 지경이야."
틀림없는 엄마다. 성수의 기억보다 10년은 나이 들어 보이는 10년 전에서 멈춰버린 엄마가 지금... 있다.
"엄마, 몇 살이야?"
성수의 멍한 물음에
"쉰 여섯이다. 녀석이 뜬금없이 왠 나이. 생일도 가르쳐주랴?"
라며 웃는다. 마흔 여섯의 엄마가 이제 성수와 함께 나이를 먹어 지금 쉰 여섯의 엄마가 되어 눈 앞에 있다. 꿈은 아닌데, 무언가 이상하다.
"뭘 치고 있었던 거야?"
"동화. 엄마가 좋아하는 고양이와 네가 좋아하는 고슴도치가 나오는 이야기."
"접점이 없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고양이와 고슴도치는 사는 곳이 다르다.
"있어. 2층 청마 슈퍼에 가면 오른쪽 끝 벽면에 동물 사료 파는 곳 있지? 거기에 애완 동물들도 팔잖아. 고양이, 토끼, 강아지, 그리고 산후조리 중인 고슴도치까지 다 있어."
아, 잊고 있었다. 2층 슈퍼. 방금 전까지 철컹 소리를 내는 슈퍼에 있었는데, 왜 갑자기 집에 돌아와 잠을 자고 있었던 걸까.
"엄마, 기범이는요? 돌아갔나요?"
성수의 물음에 쉰 여섯의 엄마가 대답한다.
"기범이라니? 그게 누군데? 친구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범이는 죽마고우로 마흔 여섯의 엄마도 알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쉰 여섯의 엄마가 기범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무언가 어긋나 있다.



4. 움직이다.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내려간다. 성수의 빌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1층. 유리문 밖에 기범이가 서 있다.
"이봐. 어디 갔었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면 어떻게?"
 성수의 말에 기범이가 대답한다.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나왔어. 네가 깊이 잠든 것 같아서 말이야. 슈퍼에서 갑자기 쓰러지듯 잠들어 버리면 어떻게 해? 큰일난 줄 알았는데, 계산대 아주머니가 잠든 거라고 말씀해주시더라. 너 자주 그런다며?"
 성수에게 기면증 같은 병은 없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성수의 기면증을 알고 있는 듯 말한다.
"아참, 엄마께서 기범이 너를 모른다시던데, 뭐야? 너는 인사까지 하고 나왔다고 하고."
"그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내일 학교에서 보자. 늦지마. 매일 지각이야."
"야, 우리가 졸업한 지가 언젠데? 게다가 우리는 다니는 회사도 달라."
성수의 말에 기범이가 눈을 치켜들어 말한다.
"너, 중 3이야. 무슨 회사?"
스물 여섯의 기범이가 사라지고, 열 여섯의 기범이가 존재하는 유리문 밖의 세상. 성수는 지금 열 여섯의 존재이다. 무언가 어긋나 있다.
"기범아, 아무래도 이상해. 우린 스물 여섯이야. 열 여섯은 이미 10년 전에 지났어. 우리는 내일의 생물 숙제를 걱정하기 이전에 내일의 아침 미팅을 생각해야 하는 거라구."
"무섭게 그러지마. 농담도 참. 야, 버스 온다. 내일 봐. 생물 노트 돌려주는 거 잊지 말고, 나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 싫어해. 노트 들고 내 집 찾아 다녀야 하는 일은 만들지 마."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기범이. 성수는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서 있다. 유리문을 나서는 것이 두렵다. 그곳은 10년 전의 세상인 것일까.
 

                                                                                                          peace and happy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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