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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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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날의 봄 - #5 가을의 끝 -1

그냥그런 조회 4,4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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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전인가 다 써서 2개씩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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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때와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추운 가을이었다.
너무나 추워 겨울을 가을이라 착각한 건 아닌가라는 두려움마저 들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몸뚱어리를 이끌고 늙어버린 소년은 차갑게 식어버린 꿈과 함께
그날의 봄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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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란 건 한창 젊은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고 이미 늙을 대로 늙은 나에겐 별 의미가 없다.
생전 벌어둔 돈도 많고 노후준비도 문제없었기에 나름 편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매번 다를 바 없는 삶 속에 흘러가는 시간에 묻혀 그저 죽을 날만을 의미 없이 기다렸지만... 요 근래 만난 소년 덕에 그래도 조금은 사는 맛이라는 걸 다시 느껴본 것 같다.

7시 30분.. 30분 늦게 일어났다.
요즘 들어 제때 일어나질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르게 깊어진 꿈 때문일까?
아침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더니 반찬이 다 떨어져 간다.
이따 점심시간 즘 반찬을 사러 가야겠다.

밥 한 숟갈 한 숟갈 들어갈 때마다 밥공기는 가벼워지는데 내 마음속 뭔가 찝찝한 근심은 한 숟갈 한 숟갈 쌓이는 기분이 든다.
낙엽이 상당히 쌓여있다.
이제 나무는 완전히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친 것 같다.
가을의 끝이 다가와서 그런 건가..
요즘 들어 뭔가 모르게 오묘한 이 심란한 마음이 정리가 안 된다.

후우..

탁! 아침 끝.


어차피 장을 보러 나갈 것이기에 보다 일찍 나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9시에 밖으로 나왔다.
내 집은 산속에 있지만 그리 깊은 곳에 있지는 않다.
문 밖으로 나와 10분 정도 내려오면 우리 마을이 나온다.
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가 보인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단체로 소풍을 나온 건가.
아마도 낙엽이 많이 떨어졌기에 그것을 관찰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목적으로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요즘 들어 낙엽의 색이 옅어졌다고 하지만 낙엽의 그 끝 무렵의 색은 여전히 알록달록한 것 같다.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를 타며,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줍고, 아무 걱정 없이 순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잠시 동안 멍하고 바라봤다.


끊임없이 쌓인 세월에 결국 떨어지고만 낙엽 위에 이제 막 흙을 뚫고 나온 새싹들이 있다.

 

10분 정도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놀이터를 가로질러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15분을 더 걸으면 중학교가 나온다.

10시쯤 됐을라나, 중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다.
뻥! 좌르륵

와아! 골!
' 허허. 그놈 참 공 잘 찬다. '
오랜만에 보는 축구라서 그런가 학생들이 함에도 불구하고 꽤나 재미가 있다.
학교 벤치에 앉아서 여기서 좀 더 시간을 보내자고 생각했다.
중학교
이제 슬슬 자신의 꿈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나이다.
비단 꿈뿐이 아닌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는 나이다.

혹독한 세상에 나오기 몇 보 직전의 시기.


새싹들은 거름이 된 낙엽에 의해 이제 조금 더 커졌을 뿐이다.

 

20분쯤 축구를 봤다.
이제 슬슬 일어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10시 25분이다.
마트에 가기 전 아직 한 곳 정도 더 둘러볼 수 있기에
그 학생이 다니는 대학교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마침 대학교가 시내 쪽이기도 하니 오랜만에 동네 마트가 아닌 시내도 갈 겸 말이다.
물론 전에도 몇 번을 왔었지만 딱히 그 학교와 연유가 없었기에 별 감흥은 없었다.
그 소년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그 대학이 아니라 다른 곳을 갔겠지..

 

학교 앞이라 정류장이 바로 있는 대다 버스도 5분 지나와서 그곳을 가도 그리 늦지 않을 것 같다.

덜컹 거리는 버스 안.
가방을 멘 대학생 같아 보이는 청년 세 명, 아가씨 한 명.
한 보따리 싸메고 온 나와 같은 늙은 인생 한 명.
평범하게 보이는 성인 두 명.

그리고 나 한 명

대학생.
이제 거름이 된 낙엽의 도움을 받을 대로 받은 시기.
낙엽의 도움 없이 살아가야 되는 시기.
어렴풋이 나무의 모습을 조금 닮은 시기.

꽃을 피우기 몇 보 직전, 따뜻한 봄과 활기찬 여름이 가는 시기.

그런 시기에 살고 있는 대학생 3명은 그들답게 활기찬 것 같다.
즐겁게 웃고 있는 표정, 그들의 모습에 난 또다시 웃음 짓는다.

 

새싹들은 이제 더 이상 새싹도 아니고 그 주변에 낙엽도 없다.
어엿한 나무로서 이제 위로 뻗어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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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의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청년이 보인다.
논문에는 정현태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그는 졸업 논문 외에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고통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싸메는 청년.

청년은 지금 이상과 현실 중에 고민하고 있다.
현실이 두려워도 이상만을 보고 달려온 결과 지금에 다다랐다.
가슴 아픈 아픈 정도가 아닌 찢어지는 듯한 비극에도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날의 고3 때와 같이 또다시 기로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대학교에 와서 이상은 멀어지지 않았다.
알바나 과외 등을 하면서, 그런 바쁜 삶 중에도 대중매체를 보면서 부조리한 현실을 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상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이상에 대하 두려움도 만만치 않게 커져갔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현실, 이상을 이루는 방법에 대한 약간의 비현실성.

점점 이상과 현실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현태는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청년 취업난, 뒤가 없는 창업, 이미 포기해버린 꿈.

이런 상황 속에 이상을 좇는다는 것은 주제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없었지만 오히려 저런 부조리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상을 쫒아왓기에 이상을 또한 쫓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꿈과 이상 사이에 생겨난 괴물은 이상을 택할수 있는 젊음의 힘에 사라진듯했으나 그건 착각이었다.
꿈과 이상 사이를 갈등한 것은 현실과 이상을 갈등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잠시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그 괴물은 자신이 제일 강할 수 있는 시기에 머리를 들이밀고 나타났다.

현실과 이상 사이.
젊음의 힘으로 아직 젊다는 사실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도 나중에 그 선택을 바꿀 수 있었던 그 고3의 시절과는 다르게 대학의 마지막 일 년을 남겨둔 지금 현태의 처지는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순간 그 선택을 바꾸기는 너무나도 힘들다.

그런 순간에 그 괴물은 다시 머리를 들이밀고 나타났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가능성이 0%에 가깝지만 지금껏 보고 달려온 이상과..
가능성이 높은 하지만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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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학교 졸업, 석사과정 이수.
ㅁㅁ증권 모의투자 대회 2등.
토익 920점

등등...

ㅁㅁ증권의 신입사원의 이력서에 적힌 내용이다.
그 이력서의 이름에는 정현태가 있다.

넥타이를 맨 신입사원 정현태의 모습이 이력서 사진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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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이번 정류장은 ㅇㅇ 대학교 후문입니다.

15분 정도 버스를 타니 시내에 도착했다.
대학생같이 보이는 학생들도 내리는 걸 보니 그들은 대학생이 맞나 보다.
2주일 만에 오는 시내.
뭐 오랜만에 오니깐 나쁘지 않다.
그래도 내가 사는 동네라 그런지 정이 들었나
반갑다는 느낌도 좀 드는 것 같다.

 

어엿한 나무로 자란 새싹들은 이제 준비가 끝났다.
이제 찬란하게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혹독한 계절을 맞이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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