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새글

04월 06일 (월)

안녕하세요

창작글

목록

[소설] 코카콜라 지구정복을 막아라 6/16

김중식 조회 878 댓글 1
이전글
다음글

-따르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딸깍... 아. 이건 자동응답기능입니다. 저는 지금 외출중이오니 용건을 말씀해주십시오. 딸깍...

-뭐야...? 빨리 전화받아.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

여자친구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물기로 젖은 몸을 드러내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바닥의 카페트에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나는 수화기를 집어올렸다.

[ 왜 그래... ]

[ 빨리, 뉴스를 틀어봐. ]

여자친구는 상당히 다급해보였다. 무슨 일이지? 정말로 대통령이 속옷만 입고 조깅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단 말인가? 아니면 미친 정신병자가 방송국안에 침입하여 생방송중에 난동을 부리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런 것들은 여자친구에게 시시한 것이다. 지금 여자친구의 목소리에는 뭔가 자기와 관련된 절실한 무언가가 담겨져있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여자친구의 얼굴이 텔레비젼에 나오기라도 한 것인가?

[ 왜 그래? ]

말을 하면서 나는 텔레비젼을 틀었다. 잠시 브라운관이 번쩍하더니 곧 뚜렷하게 밝아지면서 요새 한창 유행하고 있는 아쿠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CF음악이었다.

[ 아니야... 24번을 틀어봐. ]

나는 그녀의 말을 따라 리모콘의 24번을 눌렀다. 그러자 특파원으로 보이는 30대 바바라코트의 여자가 현장보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서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코트와 머리카락이 멋있게 날리고 있었다. 무언가 상당히 급박한 상황연출이었다.

-그래서 지금 러시아의 푸틴대통령은 동북아 정세를 감안해서 핵무기 사절단을...

[ 뭐야... 이것 때문에 조급하게 군거야? ]

[ 아니야. 벌써 지나갔어. 네가 자꾸 주책거리니까... 아... 이번엔 38번 틀어봐. 그래 여기는 또 나온다. ]

나는 수화기를 여전히 귀에 가져다 댄 채로 다시 리모콘으로 38번을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바바리코트의 30대 남자가 현장보도를 하고 있었다. 비록 남자뒤에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대로 남자의 코트는 여전히 멋있게 날리고 있었다. 아마도 카메라의 앵글이 잡지 못하는 부분에서 누군가가 선풍기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급박한 상황연출이다.

-... 결국 무장경찰의 동원으로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시베리아산 백호가 도망친 경우에 대해서는 산후직후와 더운 날씨에 잦은 우리이동이 겹쳐서 발생한 스트레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미 여아 한명을 살해했기 때문에 곧 즉사 처분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시베리아산 백호가 전세계적으로 200여마리밖에 되지 않는 희귀종이라고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한 마리 흉폭한 괴물일 뿐이니까요. 동물원 측은 이것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돌발사건인만큼 앞으로도 계속 안전에 만전을 기울이겠으며 시민여러분의 동요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민간 단체에서는 동물원안의 야생동물의 난동에 따른 시민의 생명위협에 대해서 동물원측의 책임있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 와우...! ! ]

나는 놀랐다.

[ 이거 정말이야? ]

[ 그래. ]

아마도 여자친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처럼 안도와 놀라움의 표정을 짓고 있겠지. 정말로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 우리가 갔던 동물원에 시베리아 백호랑이가 우리를 뛰쳐나와 난동을 부렸다는 것은. 또한 나의 돌발적인 뛰쳐나옴 이후에 호랑이가 뛰쳐나왔다는 것도... 아마도 불고기백반을 먹을 때 즈음 일 것이다.

[ 알겠어? 시베리아 백호랑이는 바로 코끼리 우리에서 20M도 되지 않은 곳에 있었잖아. ]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운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살해당했던 것은 익명의 한 아이가 아니라 나나 여자친구였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내가 그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안 이상 왠지 지금 텔레비젼에서 나오는 뉴스보도는 비현실적인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대로 수화기를 든 채로 냉장고에 가서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아직 버드와이저 캔맥주가 2병 남아있었다. 나는 그대로 한병을 집어 들어 다시 텔레비젼앞으로 다가왔다.

[ 내 덕인지 알아. ]

나는 뻐기듯 말했다.

[ 모르겠어. 지금 너무 복잡해서 말이야... 이봐. 너는 놀라는 말투가 아니잖아. 왜 이리 침착한 거야. ]

[ 뭐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나 지금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있어. 그리고 조금 있다 잠잘거야... ]

[ 뭐야. 지금 우리의 목숨이 왔다갔다 했는데... 뛰는 가슴이 멈추지 않아. 너는 마음편한 지 몰라도 나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단 말이야. ]

[ 그래서... 내게 뭘 원하는 거지. ]

나는 최대한 불평어린 목소리를 나타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 그러니까 말이지... 밤새도록 애기해 줘. ]

결국 그녀가 원하는 것은 이거였다. 그녀는 내가 잠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상당히 힘들게 돌아다녀서 피로가 보통때와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투정을 부린다는 것은......

[ 나를 좋아한다는 건가? ]

힘없이 중얼거렸다.

[ 무슨 소리야? 내 애기한거야? ]

여자친구는 의외로 부끄러운 듯이 조용하게 말했다. 아마도 지금 얼굴이 약간은 홍조를 띠고 있겠지. 그러한 생각을 하자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과격한 감정과는 다른 부드럽고 포근한 무엇. 왠지 지켜주고 싶은 배려같은 것.

[ 휴우... 그래... 밤새 이야기나 하자. ]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여자친구는 나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 8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나는 다시 동물원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의 분신인 코끼리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내 마음속에 있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마음속에는 나의 분신에 대한 부끄러움, 책망감, 짜증, 분노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완전히 나의 분신을 피해다닐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전에는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나는 이미 나의 분신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꿈속에서 그 느끼한 엉덩이춤이 계속 아른거렸다. 바로 내 앞 10cm에서 그 거대한 엉덩이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것도 몇시간동안 반복해서 말이다. 이 몇시간이란 것은 내가 잠이 잔 시간이다. 어쩌면 꿈 속의 시간은 훨씬 느리게 돌아가니까 몇시간은 며칠동안으로 바뀔 수도 있다. 요점은 한가지다. 징그러운 엉덩이 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 코끼리가 내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것이다. 그때 코끼리의 얼굴은 바로 내 자신의 얼굴로 바뀌면서 인정스레 웃고 있었다.

가위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일어날때마다 담요와 시트가 내 몸에 흐르는 땀 때문에 축축해졌다. 어렸을 때 밤에 오줌을 쌌던 때보다 더욱 흥건했고 느낌도 더러웠다. 그런 상태에서 과연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계속해서 혼동하게 된다. 관념이라는 것은 재미있을 정도로 악질이다.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강하게 나의 육신을 잡아두는 것이다. 한 번 걸리게 되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함. 이 우스꽝스럽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누구에게 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는 그녀에게 더더욱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해줄 수 없었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사실은 코끼리였다는 것을 어떻게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은 말이지... 나는 코끼리같은 놈이야.

끔직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끔직하다. 결국에는 나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찾아가 그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어느정도 강박관념을 떨쳐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언제나 이런 나이트메어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손해날 것은 없는 것이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동물원안은 한적했다. 아니 고요했다. 20여분동안 앞을 걸어갔는데 내 곁을 스쳐지나간 사람이라고는 단지 4명이었다. 그것도 3명은 카키색의 사육사 복장을 하고 있었고 마지막 한명은 아주머니였는데 창이 넓은 빨간색 셀룰로판 모자를 쓰고 돈주머니가 달린 펑퍼짐한 혁대를 매었다. 한눈에 아이스크림을 팔던 아주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걸어다가 캥거루 우리를 바라보았다. 다 큰 캥거루 두 마리가 서로 잽을 날리며 티격태격 싸우고 있었다. 껑충껑충 접힌 안장다리를 피며 앞으로 돌진하며 레프트 훅, 잽잽, 크로스 펀치. 상당한 실력이었다. 이놈들이 발정기가 됐나? 나는 그들옆에 혹 암컷이라도 있나 살펴보았다. 하지만 단지 그 두 마리였다. 그렇다면 왜 저렇게 싸우는 거지? 그냥 미래를 위한 스파링연습인가? 하지만 스파링이라고 하기에는 둘의 결투가 너무 진지했다.

[ 차라리... 저런 남자다운 야성을 지닌 놈이 분신이었다면... ]

-난 말이지... 캥거루란 말이야. 훅을 날리며 광활한 초원을 뛰어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고백할 것이라면 이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겐 너무나 과분한 생각이겠지. 나는 캥거루 우리에서 고개를 돌려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윽고 예전의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우리가 정확한지 아닌지는 상관없었다. 내가 그를 보지 못하고 주변을 기웃거리자 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으니까.

-어라... 분신이구나. 왠일이지?

나는 내 마음속에 울려퍼지는 빈정거리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우리앞 가드라인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다. 내가 가드라인앞에 서있자 코끼리는 내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안전간격이 있어서 코끼리가 길다란 코를 내밀었지만 서로 닿지 못했다.

[ 직접 말을 할 순 없을까? 왠지 이건 내 마음속에 네가 침투한 기분이라서... ]

-웃기는 군. 너 코끼리가 인간의 말을 하는 것 봤니?

그의 말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먹을 것은 갖고 왔니?

[ 머... 먹을 거라고? ]

-그래. 당연하잖아. 적어도 분신이라면 서로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하잖아. 난 말이지. 손님을 열심히 끌었는데... 괜히 호랑이 녀석 때문에 한끼도 먹지 못하고 있어. 이래봐도 하루에 300kg는 먹어야 한다구...

코끼리는 정말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인간과 안면구조가 다르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도... 분신끼리의 감정공유인가... 아니, 아니.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는 생각은 하지말자!

[ 왜 동물원에선 너에게 먹이를 주지 않지? ]

-바보, 모르겠어? 저 쪽 우리를 봐. 비어있잖아.

코끼리는 다시 코를 들어올려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대충 짐작을 했지만 아마도 전에 뉴스에서 본 시베리아산 백호의 난동문제인 것 같았다.

-그 후로 통 손님이 오지 않아. 난 말이지. 상당히 독립적인 코끼리야. 먹이는 스스로 해결한다구. 일부러 손님들은 나를 주기 위해 먹이봉지까지 사 온단 말이야. 그래서 사육사들도 나는 예외적으로 직접 먹이를 주지 않아. 그런데... 지금은 손님이 하나도 없으니까 먹이 공급원이 하나도 없어.

독립적인 코끼리라... 그것 하나만은 서로 닮았군. 나도 일찍이 부모님집을 뛰쳐나와 혼자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간간히 레스토랑 서빙이나 중소규모의 물류회사에서 배달일을 했다. 물론 일은 고되고 수입은 생각외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견뎌내고 있다. 집을 뛰쳐나온 이후로 한 번도 부모님에게 손을 내민 적이 없었다. 그것은 이미 나의 프라이드인 것이다.



   게시글을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뽀루뚜까
잘 읽었습니다^^ 담편둥 기대되는군요
(2001.08.09 18:09:13)  

뒤로 목록 로그인 PC버전 위로

© https://feel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