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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상처의 노래 2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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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마리의 마지막 선물


일요일이어서 준석은 내무반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내무반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준석이한테 여자 친구가 면회가 왔다고 알려 주었다. 이번에야 말로 마리라고 확신한 준석은 관물대에 걸려 있는 옷을 꺼내 깨끗이 다림질을 하고는 위병소로 갔다. 위병소에는 준석이의 예상대로 마리가 와 있었다.  마리는 준석이 나타나자 그 때까지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를 걷어 보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준석이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온 것이었지만 그 전에 준석과 마지막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어떻게 온 거야?”

“너 보고 싶어서. 가자.”

준석과 마리는 부대를 나왔다.


원주 시내로 나온 준석과 마리는 괜찮은 식당을 골라 그 곳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나왔다. 따사로운 햇빛이 오후의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이제 어디 갈까?”

준석이 물었다.

“내가 좋은 데 알아. 그 곳으로 가자.”

“그래.”

준석은 마리의 의견에 동의했다.


마리가 준석을 데리고 온 곳은 모텔이었다. 준석은 당황했다. 설마 마리가 가자고 한 곳이 모텔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들어가자.”

마리가 말했다.

“하지만...”
“우린 사귄지 1년이나 지났어. 게다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잖아?”

마리의 말에 준석은 용기를 냈다. 사실 그 동안 마리의 몸을 한 번 안아보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준석이었다. 둘은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준석이 숙박부에 기록을 하고 방 열쇠를 받아 마리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둘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더블 침대가 있는 방은 넓었고 비디오를 볼 수 있게 큰 대형 TV가 있었다.

“나 먼저 씻을게.”

마리가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마친 마리가 목욕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너도 들어가서 씻어.”

마리의 말에 준석도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조금 후 준석도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왔다. 마리는 침대에 앉아서 준석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준석은 마리의 몸에 먼저 손을 댈 용기가 나지 않아 머뭇거렸다.

“플레이 보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왜 그래?”

마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하며 입고 있던 목욕가운을 벗었다. 백옥같이 새 하얀 마리의 몸이 드러났다. 준석도 더는 끓어오르는 피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옷을 벗고 마리와 한 몸이 되었다. 준석의 혀는 마리의 온몸 구석구석을 핥았다. 준석한테 그렇게 자신의 첫 순결을 바치는 마리는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이 준석한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준석한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준석의 몸은 더욱 격정적으로 요동쳤다. 그렇게 둘의 정사는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 그리고 한 순간 한 줄기 섬광이 두 사람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준석은 사정을 했다. 온 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준석은 마리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옆에 누웠다. 마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준석이랑 같이 할 시간도 준석한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준석과 마리는 모텔을 나왔다.

“할 얘기가 있어. 어디 커피숍이라도 가자.”

마리가 말했다.

“그래.”

방금 전 마리와 한 몸이 된 준석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마리는 이제 정말로 자신의 여자가 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가까운 곳에 있는 커피숍에 들렀다. 종업원이 오자 둘은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조금 후 두 사람이 주문한 카푸치노가 나왔다. 준석이 카푸치노를 마시며 물었다.

“할 얘기가 뭐야?”

“헤어지자.”

커피를 마시던 준석은 갑자기 놀란 얼굴을 하며 마리를 보았다. 방금 전 마리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뭐... 뭐라고 했어? 지금.”

“헤어지자고.”

마리는 표정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준석은 마리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대체... 대체 이유가 뭐야? 그럼 방금 전의 행동은 다 뭐냐고?”

준석은 마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건 묻지 않기로 했잖아? 내가 너랑 사귀는 조건이었잖아?”

마리의 말에 준석은 그 조건이 생각났다. 누군가 헤어지자고 하면 아무 말 없이 그냥 놔 주기로 한 조건이... 하지만  그 때 준석은 그런 조건은 별로 대단한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귀다 보면 자연히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니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으면 난 아무 말 없이 널 놔 줬을 거야. 그만 일어날게.”

마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석은 마리를 잡지 못했다.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을 당해서인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질 못했다.

준석과 헤어진 마리는 보육원으로 돌아가려고 역으로 돌아와서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데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준석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보육원 아이들을 지키려면 한도현 검사와 결혼하는 수 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마리의 이별통보에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앉아 있던 준석은 희연이 생각났다. 희연이라면 마리가 자신과 헤어지려는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준석은 커피숍을 나가 공중 전화가 있는 곳을 찾아서 희연이한테 전화를 했다. 집에서 박 회장이 맡긴 P 백화점 건설 계획을 검토하고 있던 희연은 핸드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준석이. 너한테 물어볼 게 좀 있어서.”

“뭔데?”

“마리가 오늘 면회 왔는데 나한테 헤어지자고 하더라고. 너라면 그 이유를 알 거 같아서.”

희연은 마리가 준석한테 마침내 얘기를 꺼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리 다음 주 일요일에 내 사촌 오빠랑 결혼해.”

“뭐? 도대체 이유가 뭐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마리가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내 사촌 오빠집이 돈이 많아서 마리는 사촌 오빠랑 결혼하는 것 뿐이니까.”

“뭐?”

“그렇게까지 놀랄 건 없지 않아? 여자들이 돈 많은 남자 좋아한 건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그러니까 너도 그만 잊어 버려. 그게 너한테도 좋다고.”

준석은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이제 깨끗이 잊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준석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마리는 준석의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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