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상처의 노래 2부(18)
83 나연은 또 사고를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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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과 나연은 한 원장의 집으로 왔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도현은 아버지인 한 원장과 그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집은 2층 양옥집이었는데 동생인 한 장관의 집과는 다르게 호화스럽지 않은 평범한 집이었다. 도현이 열쇠로 문을 열자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밥을 먹고 있던 푸들인 퍼니가 꼬리를 흔들며 나연이에게로 달려 들었다. 나연은 오랜만에 보는 퍼니를 안았다.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 없다니까. 밥 주는 것도 목욕을 시켜 주는 것도 난데 왜 너를 더 좋아하는지.”
“강아지도 사람을 알아보는 거라구요. 오빠는 돈만 밝히는 속물이고 저는 사람을 구하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요.”
“어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궤변은 잘 늘어 놓는지...”
도현이 어처구니 없어 하며 말했다.
나연이 안고 있는 퍼니가 계속 나연이의 뺨을 핥으러 하자 나연은 뒷걸음을 치다 그만 수납장 위에 있는 도자기를 치고 말았다.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 조각이 났다.
“야, 그걸 깨뜨리면 어떡해?”
도현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건 한 원장이 집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이었다.
“도자기 좀 깬 거 같고 뭘 그래요? 걱정 말아요. 제가 치울 테니까.”
나연은 퍼니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건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야. 2억이나 하는 거라고.”
“예?”
나연은 그제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억이나 하는 거라면 아무리 자신을 아껴주는 큰 아버지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게 분명했다. 도현과 나연은 깨진 도자기를 치웠다. 나연은 도자기를 치우다가 말했다.
“저기, 이거 오빠가 깬 걸로 해요.”
“엉?”
“오빠는 어쨌든 친 아들이니까 오빠가 깨뜨렸다고 하면 그렇게 크게 혼나진 않을 거라고요.”
“나도 널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아버지가 그런 뻔한 거짓말에 넘어가진 않을 거야.”
그 때 한 원장이 돌아왔다. 한 원장은 나연과 도현이 깨진 도자기를 치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연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렸다는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넌 어떻게 할 거야?”
한 원장은 짐짓 화난 목소리로 나연한테 물었다.
“예?”
“물건을 깨뜨렸으면 당연히 물어내야지. 그건 2억이나 하는 도자기라고.”
“도대체 무슨 도자기가 그렇게 비싸요? 그래 봤자 유리 접시일 뿐이잖아요?"
“도자기는 유리가 아니라 흙으로 만드는 거야.”
도현이 나연이의 말을 수정했다.
“그럼 비싼 건 더 말이 안 되죠. 흙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데..."
“아무튼 난 배상을 받아야겠는데. 넌 특별히 내가 아끼는 조카니까 1억만 받는 걸로 하지.”
“예? 제가 1억이 어딨어요?”
“그럼 니 아버지한테 연락을 하는 수 밖에...”
“예? 잠깐요.”
나연이 급히 말했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큰일이었다. 그 일만은 절대 막아야 했다. 그랬다간 종아리가 남아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1억이라고 했죠? 알았어요. 제가 내일까지 준비해서 갖다 드리죠.”
“기왕 왔는데 저녁이나 먹고 가지 그러냐?”
한 원장이 말했다.
“지금 밥이 넘어가게 생겼어요?”
나연은 현관문을 열고 도현이의 집을 나왔다.
“정말 나연이한테 1억 받을 생각이세요?”
도현이 의아해 하며 한 원장한테 물었다. 한 원장이 얼마나 나연이를 아끼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도현이었다.
“아니. 이참에 나연이한테 병원 일 좀 하게 하려고. 나연이는 틀림없이 훌륭한 의사가 될 테니까.”
집으로 돌아온 나연은 2층에 있는 희연이의 방으로 가서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책상에 앉아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던 희연이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벌써 오냐? 큰 아버지 집에서 저녁 먹고 온다고 했잖아?”
“언니, 나 돈 좀 꿔 줘.”
“돈? 얼마나?”
“1억.”
희연은 너무 황당해서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너 미쳤나?”
“언니, 언니는 동생한테 미쳤다니? 그게 할 말이야?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또 사고를 쳐 가지고.”
나연은 큰아버지 집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얘기했다. 얘기를 다 들은 희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나연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넌 진짜 언제 철들래?”
“언니가 1억 빌려주면 철들지도 몰라.”
“내가 그런 돈이 어딨냐? 내일 내가 큰아버지 만나서 얘기해 볼게.”
희연은 큰아버지가 나연이한테 깨진 도자기를 배상하라고 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연이 사고를 쳤다고는 하지만 그런 일로 나연이한테 배상이나 하라고 할 큰아버지가 아니었다. 큰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나연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역시 언니가 최고야. 난 정말 언니만 믿을게.”
“너무 기대하지는 마. 큰아버지는 나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래도 난 언니만 믿겠어.”
나연은 다시 한 번 희연이한테 당부의 말을 하고는 희연이의 방을 나갔다.
다음 날 점심시간 때에 맞춰 희연은 자애병원 원장실을 찾아갔다. 한 원장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희연이가 온 것을 보고는 놀랐다.
“희연이 니가 어쩐 일이냐?”
“큰 아버지랑 점심이나 같이 했으면 해서요. 제가 살게요. 혹시 약속이 있는 건가요?”
“아니 그렇진 않아.”
두 사람은 자애병원을 나왔다.
한 원장과 희연은 자애 병원 근처에 있는 한정식집으로 왔다. 희연이 코스 정식 요리를 주문했다.
“나연이가 큰아버지가 가장 아끼시는 도자기를 깼다는데 정말 돈을 받을 생각이 있는 건 아니죠?”
“너한텐 사실대로 말해야 겠지. 니가 도와 줬으면 하기도 하는 일이니까. 이 참에 나연이한테 그 일을 핑계 삼아 병원 잡일을 좀 시킬 생각이야. 그런 경험은 나연이 훌륭한 의사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그게 큰아버지 뜻이었군요. 근데 제가 도와 드릴 일은 뭐죠?”
“니가 이 사실을 나연이한테 비밀로 해 줬으면 좋겠어.”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랬다간 큰아버지는 나연이한테 엄청 미움받을 텐데요.”
“그 정도는 충분히 각오하고 있어.”
“그럼 그렇게 할게요.”
종업원이 찬을 갖고 와서 상 위에 내려 놓았다. 한 원장과 희연은 식사를 마친 후 한정식집을 나와 헤어졌다.
희연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나연이 희연이 돌아오자 마자 물었다.
“언니, 어떻게 됐어?”
“잘 안 됐어. 역시 큰아버지는 너한테 1억 받아야 겠대.”
“언니, 언니는 대체 어떻게 얘길 했길래 그래?”
“큰아버지한테는 내 말 안 통하는 거 알잖아? 큰아버지는 나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그러게 넌 도자기는 왜 깨고 그래?”
그 때 거실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희연이 전화가 놓인 곳으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한 원장한테서 온 전화였다.
“큰아버지인데 너 바꿔 달래?”
희연이 수화기를 건네주자 나연은 수화기를 건네 받았다.
“그래, 돈은 준비됐어?”
“아뇨.”
“그럼 니 아버지한테 말하는 수 밖에 없네.”
“잠깐만요. 그건 절대 안 된다고요.”
“그럼 어떡할 건데....”
“그러니까요... 그게...”
“돈을 정 못 구하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예?”
“아무튼 돈을 못 구하면 내일 저녁 6시까지 자애병원으로 와. 그 시간 까지 안 오면 정말 니 아버지한테 말할 거야.”
한 원장은 전화를 끊었다.
“이런 망할 영감탱이. 조카한테 1억이나 뜯어내려 하기나 하고.”
나연은 화난 목소리로 말하며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넌 큰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리고 니가 깬 도자기는 2억이나 한다고 하지 않았냐?”
희연은 나연이의 말에 어이없어 하며 되물었다.
“언니, 정말 돈 없어?”
“내가 그런 큰 돈이 어딨어? 정 그렇게 돈이 필요하면 아버지한테 부탁해 보던지.”
“언니, 언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랬다간 내 종아리가 남아나지 않을 거라고.”
“그럼 니가 알아서 해결해라. 나도 더는 도와 줄 수 없으니까. 아버지한테 이 일은 얘기하지 않을 테니까.”
“언니, 절대 아버지한테는 얘기하면 안 돼.”
“물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한데 그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지.”
희연은 대답을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음 날 나연은 한 원장이 정한 시간에 늦지 않게 자애병원에 도착했다. 나연은 원장실 앞에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한 원장은 자리에 앉아서 차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래, 몸으로 때울 각오는 하고 온 거야?”
“예?”
“돈을 못 갚으면 몸으로도 때워야지. 안 그래?”
“전 그러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는데요.”
“그럼 뭐 니 아버지한테 돈을 갚으라고 하는 수 밖에”
한 원장은 수화기를 들었다. 그 때 나연이 급히 한 원장한테 뛰어 와서는 도로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알았어요. 몸으로 때우면 될 거 아니에요? 뭘 하면 되는 거죠?”
“2년 동안 여기 병원 청소를 하면 돼.”
“2년 동안 여기 병원 청소를 하라고요?”
“그게 싫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돈을 마련해 오던가...”
“알았어요. 한다고요. 하면 되잖아요.”
“그럼 내일부터 시간 맞춰서 나오도록 해. 오늘은 어디 가서 같이 저녁이나 먹지.”
“사양하겠어요. 지금 큰아버지랑 밥 먹고 싶은 생각 조금도 없으니까.”
“아, 그리고 앞으로 병원에서 날 부를 땐 원장선생님으로 부르도록 해.”
“명심하죠. 원장 선생님.”
나연은 빈정거리듯이 말하고는 원장실을 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연은 여전히 화를 가라 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희연은 나연이 돌아오자 물었다.
“큰아버지가 뭐라고 하던?”
“나 보고 2년 동안 병원 청소 하라고 하는 거 있지? 그럼 없던 일로 해 준다고 하면서... 언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정도면 큰아버지가 그래도 너 사랑해서 많이 봐 주신 것 같은데. 병원 청소 2년 한다고 1억 모을 수 있겠냐?”
“언니, 언닌 지금 누구 편이야?”
“난 객관적인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아무튼 난 완전히 큰아버지한테 속았다고. 날 사랑하는 줄 알았더니만 이제 보니 완전 속이 시커먼 능구렁이 영감이라고.”
“하는 말 하고는....”
“아무튼 난 그만 올라갈게.”
나연은 자기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