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달래의 정읍사<제10회>- 소리를 빚는 독
소리를 빚는 독
“달팽이 성. 오늘은 천상 여그 주막에서 묵어야겠수.”
“아직도 해가 중천인디. 해전에 벌음지(지금의 충남 청양군 유구)까지 당도하려면 서
둘러야 쓰겄다. 근디 너 시방 나한테 뭐라고 혔냐! 달팽이 성?”
“아, 다들 그렇게 부릉게 나도 안 그러요. 잘못했수. 달평 오장님.”
“막둥아. 절대로 백제군 행세 허지 말라고 안 혔냐!”
“미안허요. 갑자기 정색을 헝게 안 그러요. 달평이 성님.”
“그럼 잠시 쉬었다 가자. 여그가 배산(지금의 호계)잉게 재 하나만 넘으먼 바로 벌
음지 코밑이어.”
“성은 어찌 그리 지리가 빠삭허요 잉.”
“어디 오장 노릇 하기가 쉰 줄 알어?. 내일 안으로 성에 당도하라는 분부였응
게 질을 안 서둘러야 쓰겄냐. 얼릉 탁배기 한 사발씩 하고 일어나 자”
목막수 방령의 명에 따라 군상으로 차출되어 성을 떠난 지 달포가 되었다. 달평은 셈에 밝고 붙임성이 좋아 이통 정수탁의 신임을 얻었다. 나이가 어린데도 오장으로 발탁되어 군량미 관리를 맡았다. 정수탁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황등야산(계룡산) 주변의 고을을 낱낱이 살피면서 올해 작황을 잘 파악해오라 했다. 특히 신라군의 주둔지역을 맴돌며 그들의 양도를 머릿속에 그려오라 했다.
달평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임무가 아니었으나 남의 눈을 속이며 적정을 살피는 일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수탁의 방에 진열되어 있는 도자기 화병을 달라 했다. 수탁은 강경포에서 떠나올 때 만약을 위해 아버지 정우치의 거래물품 가운데 귀하게 여기는 도자기 화병을 몇 점 가지고 왔던 것인데 눈치 빠른 달평의 눈이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았던 것이다. 수탁은 흔쾌히 그 중 값나가는 것으로 다섯 개를 골라주었다.
달평은 올망졸망한 도자기 다섯 점을 길양식과 함께 갈무리하면서 아버지가 생각났다. 고향 점촌(지금의 정읍시 북면 승부리 금곡마을)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는 지금도 독짓는 일에 매달려 있으리라. 그 곧은 성미에 가세를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가슴이 울컥했다.
아버지는 소리가 맑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에게 소리가 있어 그 고저와 청탁으로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듯이 독을 빚는데도 소리를 염두에 두고 흙 반죽과 성형과 불 때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었다. 독은 우선 소리가 맑고 은은해야 견고하고 숨을 잘 쉬는 옹기라는 설명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가마에 의지해 사십 평생을 옹기 굽는 일에 매달려온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대물림하려는 작심으로 흙 고르는 일, 반죽하는 일, 자세 돌리는 일, 불 지피는 일을 꼼꼼하게 전수했다.
달평은 철이 들기 전부터 아버지 심沈수리의 독짓는 일을 거들어온 터라 그 일이 싫고 좋고 없었으나 한 가지, 소달구지를 빌려 여러 모양, 여러 크기의 옹기를 잔뜩 싫고 인근을 돌며 팔러 다닐 때는 재미있었다. 아버지는 대충으로 크기에 따라 값을 부르고 곡식을 퍼주는 대로 받아왔으나 달평은 크기와 모양 별로 미리 값을 정해놓고 곡식도 쌀과 보리, 대두, 소두만을 받도록 아버지에게 훈수했다. 그리고 장날에는 제일 값나가는 것 몇 개를 지게에 지고 나가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물물교환하거나 이중, 삼중거래로 사왔다.
열여덟 살이 되자 아버지는 독을 내다파는 일은 아예 달평에게 맡겼다. 달평은 고사부리장, 태산장, 배들장을 번갈아가며 옹기를 팔러 다녔다. 멀리 벽골, 흰내말까지도 다녔다. 팔다 남은 것은 도로 지고오지 않고 맘씨 좋은 주막 주인에게 부탁해 맡겨놓았다. 혹 사러오는 사람이 있으면 쌀 몇 말 몇 되를 받으라고 당부하고는 다음 장날에 셈을 치러 작은 술독으로 인사를 챙겼다. 또 이러이러한 항아리를 만들어 달라 주문하면 잊지 않고 날짜를 맞추어 집으로 짊어다 주었다.
달평이의 이러한 재치와 부지런함으로 가세가 금세 늘어나 남부럽지 않을 만큼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심술이가 아들 하나 잘 두었어. 달팽이 허는 짓을 보면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여.’라고들 칭찬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아버지의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이 달평의 귀에 박혔다.
“아부지, 무슨 일로 그리 한숨을 쉰당가요.”
“그리 되았구나.”
“머시 그리 되았단 말이랑가요. 후딱 말혀 보랑게요.”
“이리 되았응게 말 안할 수 있겄냐. 달팽이 너, 장날 보러 다닝게 벌써 들었을
것 아니냐.”
“먼 말인디요.”
“아따, 나라가 망해부러서 신라와 당나라가 여그저그 들쑤시며 지랄을 헌다고
안 허더냐. 너는 그것도 못 들었냐?”
“얼래, 어찌 못 들어것능가요. 지도 솔챈이 전부터 들었구만요.”
“그런디, 너는 암 생각도 없었냐.”
“지가 멋을 어떻게 혀야 허는디요.”
“나라가 망하면 우리 백성은 다 죽은 목심이어. 어디 당나라 놈덜이 가만 놔두
겄냐? 즈그덜 종 삼을라고 허지.”
“그거야 여그 촌구석에서 숨죽이고 있는디 즈그덜이 어떡한다요.”
“그것이 아니여. 이까짓 옹기 굽는 일이야 혀도 그만 안 혀도 그만이지만서두
나라야 한 번 망해뿌리면 다시는 사람대접 못 받고 살다가 개돼지처럼 죽는 거
여.
“글먼 지금은 뭐 제대로 사람대접 받는가요?”
“조상 윗대 제사 잘 모시는 것만도 사람 노릇은 하는 거지 멋을 더 바란다냐.”
“긍게 안 되았능가요. 인자 지가 장개 가서 아버지 펜히 모시먼 되지라우.”
“그거이 아니라는디 그러는구나. 다들 나라 되찾자고 젊은이들을 내놓는디 우
리라고 못 본체 하고 넘어가서야 쓰겄냐.”
“……………”
“느그 증조할아부지, 할아부지도 다 병정을 나가셨어야. 할아부지는 삼십도 되
기 전에 쌈터에서 돌아가셨어. 그래서 나는 병정을 면해주었다만 너 까지는 아
닌 게야.”
“……………”
“애비 걱정은 말아라. 입에 풀칠이야 못 허겄냐. 내일 여그 점촌에서 너덧 명이
출발한당게 너도 함께 가거라. 살아서 돌아오기만 허먼 된다.”
“……………”
울며 겨자 먹기로, 등 떠밀려 부흥군에 가담했다. 다행이 좋은 윗사람 만나 별 고생 없이 병영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깨달았다. 특히 정수탁을 만나 수리를 깨우치면서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가 되었다. 큰 계산을 하려면 작은 계산을 잘 해야 하며 작은 계산이 큰 계산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꿰뚫어야 다음의 더 큰 계산이 수월해진다는 수의 이치와 개념을 배우고서는 눈이 확 열리는 느낌이었다. 감산을 할 때는 가산을 이용하고 제산을 할 때는 승산을 역이용하는 요령도 배웠다.
이번 첫 군상활동은 달평의 세상 보는 눈을 더욱 넓혀주었다. 가지고 간 도자기 화병은 아무나 쉽게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큰 재산가에서나 흥정이 가능했다. 그것도 풍류를 아는 부자라야 물건 귀한 줄 알고 대했다. 대개는 양곡으로 값을 쳐주려 하지만 달평은 운반하기 쉬운 당목을 청했다. 당나라에서 들여온 백포는 부드럽고 색을 먹이면 빛깔이 고와 모시 베나 삼베보다 세배는 높은 값을 쳐주었다. 한 필에 대략 백미 한 섬이었다.
달평은 도자기를 건네고 나서는 잘 맞는 오동나무 상자를 얹어주었다. 오동나무 상자는 삼통 아중달의 솜씨였다. 덤으로 근사한 상자까지 건네받은 주인은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날이 저물기도 전에 유숙하고 가라 붙잡았으며 푸짐한 저녁도 대접했다. 저녁을 물리고 나면 바깥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청하는 것이 상례였다. 사실 달평이 노리는 것도 그것이었다. 말재간 좋은 달평은 주인의 마음을 홀딱 빼앗곤 했다.
그러는 사이 인근의 정황이나 신라군들의 동태, 민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달평은 내친 김에 부흥군 자랑을 늘어놓으며 각 고을의 부농들이 십시일반으로 군량미를 염출하고 있다는 것을 풍문이라며 전하면 대개는 자기도 가세하겠노라고 나왔다. 그 가운데는 후환을 염려해서 생색을 내려는 사람도 있었으나 진심으로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뜻이 통하는 사람에게는 본색을 밝히고 언제까지 얼마를 염출하겠다는 단자를 받았다.
달평은 백제가 반드시 다시 일어나리라는 확신을 얻게 됐다. 감추어둔 속내는 모두가 한가지로 신라와 당나라의 토색질과 패악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흉년이라며 공출을 거절하고 지하 곳간에 깊이 감추어 두었던 양곡을 자진해서 갹출하겠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밖에 얻어낸 정보로는 사비성에 주둔한 당나라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본국으로부터의 양도가 중단된 터에 신라의 협조는 말뿐이고 백제 유민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양곡창고가 거의 바닥났다는 내용도 있었다.
달평이 수집해온 정보와 군량미 염출 단자는 임존성의 사기를 한껏 높여주었다. 일통과 이통은 달평의 전과에 대한 보상으로 십부장 임명을 천거했다. 성주는 거의 일백 석에 달하는 군량미를 확보해온 것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목막수 방령도 달평의 승진신고를 받으면서 여간 흐뭇한 게 아니었다. 고향마을 다내에서 고작 삼십리 상거인 점촌에서 왔다기에 반가운 마음에 자기 막하에 거두었다가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이통에게 천거했던 것이어서 더욱 흐뭇했다.
<다은은 '상사병'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