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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르힌데르 연대기. - 어서 오세요. 평화로운 로렌스 마을입니다. (1)

이건오 조회 2,26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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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평화로운 로렌스 마을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새가 무리지어 날아가며 멋진 비행을 보여주고 있었다. 맨 앞을 날아가는 녀석이 그 무리의 리더로 보였다. 그 녀석이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다른 무리들이 녀석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녀석이 천천히 날기 시작하면 다른 놈들도 따라서 천천히 날았다. 화려하지도 않은 고작 새무리들이 보여주는 것은 기껏해야 이것이 전부인데 멋진 광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에게 있어 저 녀석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자유롭게 보였기 때문일 수 도 있다.
 “이야. 나도 저 녀석들처럼 날개가 달리면 얼마나 좋으려나?”
 새들에 대한 찬사로 휘파람을 불고는 괜히 팔을 위아래로 휘휘 저어봤다. 몇 번 흔들다가 손을 들어서 쳐다보았다.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는 팔만 보였다. 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런 손을 가지고는 영원히 날아가지 못할 것이다. 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몇 번이나 날갯짓을 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만약, 저 새들처럼 날 수 있다면, 아니 최소한 돈만 있다면 이런 빌어먹을 동네 따위는 금방이라도 도망갈 텐데 말이다. 이 생각만 하는 것이 벌써 수천 번 째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 이 마을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자유를 찾아 이 마을을 떠난다면 멋진 사랑도 해보고 싶고, 나라도 구해보고 싶으며, 알려지지 않은 곳의 금은보화도 찾아서 부자가 되고 싶다. 물론, 멋진 동료들과 함께라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 앉아 무료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잠이 솔솔 쏟아져 내렸다. 요사이 밀려드는 일 때문에 다 못잔 잠을 청할까 싶어 살짝 눈을 감았다. 기분이 몽롱해지는 게 금방이라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밀려오는 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며 제일 편안한 자세를 찾아서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곧 현실과 꿈의 경계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잠의 문턱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스발!”
 망할! 덴버 아주머니다.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내가 일하던 중간에 사라진 것을 깨달아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잘 오지도 않더니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려니 오다니! 저 빌어먹을 아줌마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분명하다. 다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너무 졸려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다가 터져 나오는 하품과 피로를 이기지 못해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카스발! 어디 있어! 당장 기어 나오지 못해?”
 저 망할 아줌마는 밤에도 일을 하라면서 부려먹고! 내가 잠을 자는 꼴을 못 본다니까! 찌뿌둥한 몸을 깨우려고 이리저리 흔들며 기지개를 피고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는 재빨리 농터로 뛰어갔다.

 농터라고 해봤자 이 작은 마을의 농터가 얼마나 크겠는가?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농지는 쉬엄쉬엄해도 될 텐데 날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다. 돈을 더 주던지 해야지! 농터 근처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가빠오는 숨을 진정시켰다. 머리를 긁적이고는 씨익 웃으며 덴버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헤헤. 덴버 아주머니!”
 친근함으로 다가서자 돌아오는 것은 덴버 아주머니의 솥뚜껑만 하게 커다란 손바닥 이었다. 한쪽 뺨의 욱신거림을 느꼈다. 그래도 함부로 얼굴을 구길 수 없었다. 이 망할 아주머니의 말을 거역하거나, 대들었다가는 내가 살고 있는 삶이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버릴 수가 있기에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시 웃음을 실실 지어보였다.
 “이 멍청한 것이 지금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거야!”
 “죄송해요. 헤헤. 아주머니. 잠시 저쪽에 볼일이 있어서요.”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어깨에 붙은 이 풀은 뭔데! 볼일 이라고 하는 것이 하릴없이 뒹구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 길거리에 앉고 싶어서 시위하는 거야 뭐야? 네 녀석 바람대로 해줄까?”
 젠장! 아까 완전히 다 털어버린 줄 알았는데! 팔을 슬쩍 훑어보았다. 급하게 뛰어오느냐고 미처 떼지 못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이 빌어먹을 흙들은 내 손바닥이 고생하는 동안 뭘 한지 모르겠다.
 재빨리 덴버 아주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비굴하다거나, 부끄럽다 거나 따위들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을 한다는 것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나에게 있어서 사치일 것이다. 머리를 아주머니 앞에다가 조아렸다. 그러자 조금은 누그러진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자신이 나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 거겠지.
 매번 이런 상황을 볼 때 마다 생각나는 거지만 남을 깔아뭉개는 게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살짝 위를 쳐다보았다. 덴버 아주머니가 살짝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무릎을 꿇고 있는 것보다 더 고역이다. 고개를 재빨리 땅으로 돌렸다.
 “오늘만 봐주지. 다음부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얄 짤 없을 줄 알아!”
 말은 험악하게 하면서 아주머니의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싶어서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덴버 아줌마는 목을 가다듬었다. 일어서거나 하지는 않았다.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 상태의 기분을 계속 맞춰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근데 여기엔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덴버 아줌마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왜 남의 머리를 치고 있는 거야? 내가 새처럼 날아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이 빌어먹을 아줌마 때문이기도 하다.
 “네가 지금 달고 다니는 이건 장식품이야? 무겁지 않아? 웬만하면 좋은 걸로 바꾸지 그래?”
 “헤헤. 아시잖아요. 아주머니. 제가 머리가 조금, 아니, 아주 나쁜 것을 말이에요.”
 지금 눈앞에 있는 살만 뒤룩 뒤룩 찐, 멀리서 보면 돼지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 어쩌면 아무도 안볼 때 네발로 걸어 다니지 않을까? 어쨌든 살만 쪄서 숨 쉬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아줌마를 앞에다 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그래. 네 머리가 장식품임을 너도 인정하는구나. 그래도 학습이라는 것을 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개도 학습이라는 것을 하는데. 심지어 가축도!”
 이봐. 덴버 아줌마. 여기서 가축이라는 것은 돼지를 뜻하고. 돼지는 당신인가? 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겨우겨우 꾸욱 참고는 그냥 헤헤 웃어 넘겨 버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주머니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오늘 우리 마을에 한 여행객이 찾아왔어.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지?”
 또, 그 짓거리를 시키려는 건가? 나는 하기 싫단 말이야! 하필이면 왜 난데. 다른 사람을 찾으면 어디 덧나나?
 “예?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나에게 빵 한 조각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와 똑같은 눈빛으로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제 다 알려줬으니 알아서 하라는 듯 한 눈길을 보내는 것 같았다.
 “이 정도까지 말해줬으면 어서 행동해야지! 소, 돼지도 여기까지 해줬으면 어서어서 움직이겠다! 빨리 안 움직여?”
 이봐요. 그러니까 돼지는 당신을 지칭하는 거냐니까! 이라고 또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말하지 못하고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빵을 받아들었다.
 “헤헤. 당연히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고 있죠.”
 꿇고 있던 무릎을 쭉 피고는…… 쭉 펴야할 다리가 펴지지 않아! 다리가 저려서 잠시 동안 뭉그적거리자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셨다.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거 참 품질이 좋은 돼지야. 허허.
 젠장! 가면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다리 한쪽을 질질 끌면서 빌어먹을 정도로 조그마한 마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길가로 나섰다.

 길가에 나가자 한 숨부터 흘러 나왔다. 매번 보는 풍경이지만 이 마을은 죽어있는 것 같다. 주변에는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다행이도 폐가처럼 보이지 않는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 집 몇 십 채가 있었다. 그리고 까막눈인 내가 읽을 수 없는 꼬불꼬불한 것 몇 개가 쓰여 있는 간판이 있어서 이곳이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알려 주는 조그마한 가게 몇 채가 전부였다. 이 마을에는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데 저런 거추장스러운 것은 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아무리 못 배운 나라도 숫자는 셀 수 있을 정도의 집과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마을이 작다보니 옆집에는 식구가 몇이며 포크와 나이프가 몇 개가 있는지 아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어제 옆집에서 무슨 밥을 먹었다더라.’라는 쓸모없고 지루한 이야기가 그날의 최대 가십거리였다. 그 정도로 이 마을은 지루했다.
 매일 술에 취한 할렌 아저씨가 가끔씩 어린 아이들을 모와 놓고 하는 매번 똑같이 하는 말도 안 되는 꿈같은 이야기가 그 날의 최고로 재미있는 날이었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할렌 아저씨를 보면 혀를 찼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선 할렌 아저씨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었다.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모두 다 할렌 아저씨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여행을 한다고 편지 한 장 남겨놓고 떠났다가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고 하지 않은가? 비록, 팔 한쪽을 잃고 돌아왔지만 말이다.

 길가에는 사람이 북적대지는 않았다. 자세한 상황은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하니 모르겠지만 것은 현재 다른 종족들과 사이가 안 좋아서 식량을 구하기도 힘이 든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나처럼 일거리가 있다든지, 덴버 아줌마처럼 에너지를 허투루 낭비하고 싶거나, 덴버 아줌마처럼! 비축해놓은 식량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은 모두들 집에 틀어박혀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있나 둘러보았으나 매번 보던 사람들 밖에 없었다. 가끔씩 이런 마을에 무슨 볼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여행객이 지나갈 때마다 눈에 쌍심지를 키고 달려드는 덴버 아주머니가 날 골탕 먹이려고 불러냈을 리가 없다. 그 망할 아줌마는 일을 더 시키면 시켰지 이렇게 골리는 일은 없었다. 덴버 아줌마가 없어서 그런지 서서히 졸려오는 것을 참고 눈을 부릅뜨며 다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한참을 둘러보고 나서야 무언가 이상한 사람을 찾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질감을 느끼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매번 봐오던 사람 같은 동질감을 느꼈다. 적당한 키에 적당한 체구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평범한 갈색머리를 가진 사람이 두리번거리다가 적당한 바위를 발견하고는 앉았다. 오랜 여행에 지쳐 쉬는 것처럼 보였다. 조그마한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대충 땅바닥에 내려놓는 것을 보니 그다지 중요한 것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가끔 큰 도시로 나가 북적대는 곳을 돌아다니다보면 볼 수 있을 법한 엄청날 정도로, 어떤 의미로는 큰일 날 정도로 적당하게 생긴 사람이 있었다. 곤충과 저 사람의 인상을 가지고 비교를 하자면……, 곤충이 징그럽기라도 하니까 더욱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와 비교하면 적당할 것 같다.
 그러니까 만약, 저 사람 근처에 가서 말을 하게 된다면 이봐. 당신 너무 적당히 생긴 거 알아? 오죽하면 돌멩이가 당신보다 인상에 남겠어! 라는 말을 먼저 나도 모르게 내뱉게 될지도 모르겠다.
 덴버 아주머니가 도대체 저 사람의 어떤 점에서 돈 냄새를 맡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어찌되었든 곧, 돌멩이가 인상에 더 남을 법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마을 사람들에게 헐벗겨질 것을 상상하며 마음속으로 작은 애도를 하였다. 그리고 매번 하던 대로 부디 고향으로 가셔서 이 빌어먹을 마을을 신고해 주세요. 라는 작은 소망도 곁들였다. 이런 작은 소망이라면 언젠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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