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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래도 해피엔딩 - 1

루시퍼 조회 2,4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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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3일 째 연락이 없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고 그 마음을 확신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누군가의 마음이 내 마음과 속도가 같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나는 늘 그 부분에 대해 불안해 했다. 저 사람 마음이 나와 같지 않으면 어쩌나. 혼자 앞서가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닐까. 문제는 이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는 모르겠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확실한 건, 내가 누군가에게 빠져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득한 밤이었다고 기억한다. 언젠가는 기억해내려고 온갖 노력을 해봤자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게 없을 그런 밤.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결국엔 남는 게 없을 그런 밤, 아주 낯설지 않은 익숙한 밤이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었고 벌일 수도 있는, 그러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밤이었다고 하는 게 좋겠다. 별 의미 없는 말들이 허공 속에서 터지던 그 밤,  -또는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밤- 규원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그의 오른쪽 볼에 옴폭하게 패인 보조개가 보였다. 그때 이미 알았다. 그렇게 시작되리라는 걸. 나의 마음도 나의 불안도.

“이런 질문 하면 기분 나쁠 지도 모르겠지만...”

 규원은 다소 머뭇거렸다. 서로의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나에게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었다. 이제 또 무슨 말을 할 것 인가. 어떤 말로 나를 당황케 할 것 인가. 나는 잔뜩 긴장했다.

“솔직히 말하면 집에 안 갔으면 좋겠어요. 보내기 싫어요.”

 시간은 이미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술자리도 이미 3차였다. 할증이 풀리기를 기다리기도 애매하고 더 술을 마시기에는 체력적으로 감당이 어려운 시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렇게 당당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기분 나쁘고 안 나쁘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그동안 이렇게 솔직했던 사람이 없어서 당황스러워요.”

 나는 또 무슨 말을 했던가. 분명 취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에게 한 말을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 없었다. 분위기에 취한 탓이었다.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았지만 적당히 대화가 통했고 그와 내 사이 어느 정도 이물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제 겨우 두번째 만남이라 느껴질 수 있는 낯선 감정 정도라 여겼다. 나는 그 순간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일까. 아니, 나에게 좋은 판단을 한 것일까.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나.

“지금 집에 간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달라지지는 않아요.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저 믿고 싶다는 이유가 모든 생각과 판단을 가로막았을 뿐이었다. 그래, 믿고 싶었다. 3년 전, 우리집 밖을 나서면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 머리를 쓰다듬던 종현처럼. 마침내 모든 진실은 사라지고 변질된 나의 믿음만 남았던 그 때처럼. 거짓이 아니기를 부디 진심이기를, 헛된 믿음 하나 때문에 스스로 괴롭히는 일이 없기를 그 순간 간절히 바랬던 것 같다. 예전과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3년간 내가 어떤 시간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내가 그 때 그에게 모든 걸 털어 놓았더라면, 스스로를 직설적이라고 인정하는 그 만큼이나 나도 솔직하게 다 이야기했다면 우리는 오늘의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그저 두 번의 호기심 어린 만남에서 끝이 났을까.

“나가요 , 우리.”

 그 날 이후로 나는 시간의 감옥을 지었다. 행여나 그를 잃어버릴까봐, 그의 마음을 잃게 될까봐.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 안에 온전히 그에 대한 기억을 가두었다. 아니, 오히려 구겨 넣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잠드는 시간조차 아까워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며 감옥 속에 있는 그를 확인했다. 아는 만큼 믿게 될까? 그에 대한 거라면 닥치는 대로 찾아서 가지려고 했다.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있는 힘껏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그와 어떻게 해도 좁힐 수 없는 낯선 간격 때문에 하루 종일 나를 고통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어야만 했다. 그 날, 그에게 필요한 건 뭐였을까? 위로였을까? 사랑이었을까? 그가 나에게 얻으려고 했던 건 뭐였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다. 가슴이 벅차 오르는 러브스토리 따위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웃고 넘길 해프닝이나 대화 소재로 써먹고 말 에피소드나 가십거리에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랬다. 결국엔 내가 못 견디고 튕겨져 나갈 것이다. 이 주체 못 할 감정과 익숙한 포기 속에서 그렇게.
 어쨌거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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