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합당치 못한 일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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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교시 국어 수업 시간이다. 국어 선생님이 출석부를 펴고 반 학생들의 출석을 부른다.
"김예은!"
"예!"
"성은혜!"
"예!"
"손유진!"
"예!"
"박은빈!"
"예!"
"이찬희!"
조예라가 빈 옆 책상을 보곤 심란한 얼굴빛을 짓는다.
"이찬희!"
조예라가 머뭇거리다 벌떡 일어난다.
"...찬희가 감기 몸살에 걸려서 병원 가느라 학교 못 온다고 찬희 어머니한테서 전화 왔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어. 담임 선생님한테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저도 방금 전에 전화가 와서 알았어요. 담임 선생님도 아직 모르실 거예요..."
국어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조예라에게 묻는다.
"찬희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한테도 하지 않은 말을, 왜 너한테 먼저 했을까?"
국어 선생님의 물음에 조예라가 당황한다.
"...그건...그건...저도 잘 몰라요..."
"일단 알았으니까 앉아."
자신의 행동에 뿌듯한 얼굴빛으로 조예라가 자리에 앉는다.
"드르르르륵"
교실 뒷문이 열리고 이찬희가 땀범벅이 되어 헐떡이며 교실 안으로 들어선다. 반 학생들과 국어 선생님의 시선이 이찬희에게 모이고 조예라가 허탈한 얼굴빛을 짓는다.
"야!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게 뭐냐! 남들 다 집에 가는데, 둘이서 화장실 청소나 하고 있고!"
"분명히 말해두지만, 내 거짓말은 누가 봐도 전혀 흠잡을 데 없었어!"
"그래서 지금 화장실 청소 하는 게 내 탓이라는 거야?"
"나는 네 지각 처리 안 되게 막아줬을 뿐이거든!"
"내가 언제 너한테 내 지각 처리 막아달라고 했어?"
"...너...어떻게 말을 그렇게 해?"
이찬희가 화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화를 삭인다. 조예라 울먹이는 소리에 이찬희가 조예라를 째려본다. 조예라가 쪼그려 앉아 고개를 묻고 있다. 이찬희 마음이 뭉클해진다. 울먹이는 조예라 머리에 손을 얹으려다 차마 닿지 못하고 손가락을 오므린다.
"...너 우냐?"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이찬희가 조예라 손목을 잡고는 일으켜 세운다.
"...이거 놔!"
"우는 거 맞네."
"......"
"왜 울어? 울지마! 누가 보면 내가 너 때린 줄 알잖아!"
"...난 우는 것도 너한테 허락 받아야 해!"
이찬희가 조예라를 끌어안는다. 조예라가 이찬희 품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왜 이래! 놔! 놔! 놔라니까!"
"가만히 있어."
이찬희가 조예라를 꽉 껴안는다. 차츰 조예라 몸부림이 멈추인다. 조예라가 이찬희 품에 안겨 소리 내어 운다.
체육복으로 환복하는 반 학생들의 무리 속에서 조예라가 보인다. 이찬희가 넋을 놓고 조예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찬희야! 뭘 그렇게 봐?"
"어!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왜 이러지? 예라만 보이고 예라만 들린다. 한 순간도 예라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예라를 보고나서야 내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라 입술을 보면 키스하고 싶고 예라 가슴을 보면 만지고 싶다. 날 변태라고 해도 괜찮고 색녀라고 해도 괜찮다. 이게 나의 진심이니까.
"다들 고삼이라고 책상에만 앉아있느라 몸이 찌뿌둥하지?"
"예ㅡ!"
"그래서 준비했다. 커플 피구!"
"......"
"근데, 반응이 왜 이래? 고삼 너희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스페셜로 준비한 건데. 싫어? 싫어?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그냥 수업이나 하자!"
"선생님! 싫은 게 아니구요. 커플 피구라고 하셔서..."
"커플 피구가 왜?"
"커플 피구를 하려면 남자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 남자는 선생님 밖에 없어요. 남자가 선생님 밖에 없는데, 어떻게 커플 피구를 해요?"
"...야! 남녀만 커플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 시대가 변하면 제도도 변하는 법인데, 왜 너희들의 생각은 오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거야?"
"선생님, 오천년 전에 저희들 없었는데요."
"...내 말 뜻이 그게 아니잖아!"
"......"
"자신이 커플이 되고 싶은 친구를 먼저 붙잡는 사람끼리 커플이 되는 거야. 알았지?"
"예ㅡ!"
체육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부르자 반 학생들이 제각각 커플이 되고 싶은 친구를 붙잡으려고 얼기설기 엉킨다. 어느 틈에 운동장엔 모래 바람이 일고, 모래 바람이 그쳤을 땐 조예라가 이찬희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기사하고 공주 역할 누가 할 건지 다 정했지?"
"예ㅡ!"
드디어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커플 피구가 시작됐다. 조예라 앞에 서서 조예라에게 날아오는 공을 막는 이찬희. 이찬희 허리를 잡고 붙어 다니며 이찬희 보호를 받는 조예라.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세상 어느 커플보다도 아름답다.
"찬희야, 요앞 분식집에서 떡볶이 먹으러 가자."
"잊었어? 나 화장실 청소하러 가야 돼."
"좋은 짝꿍을 둔 죄로 찬희 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네."
교실 밖에서 조예라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 조예라 눈에 눈물이 고여 복도 바닥에 눈물자국을 새긴다.
"그럼, 나 먼저 갈게."
"응."
"내일 봐."
두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조예라가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간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난 못 들었는데. 요즘 찬희가 너무 예민해 졌어."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이찬희가 반 친구를 배웅하고 화장실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복도 바닥에 눈물자국이 보인다. 나는 의심할 것도 없이 눈물자국이 예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예라를 찾으러 이리저리 교내를 뛰어 다녔다.
"예라야! 예라야! 내가 잘못했으니까, 어디 숨었는지 말해줘! 제발."
예라를 울렸다는 무거운 마음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쭉 처진 어깨로 화장실로 들어섰다. 예라다! 예라가 화장실 바닥에 움츠려 앉아 흐느껴 울고 있다.
"예라야, 여기 있었어. 난 그것도 모르고 한참 찾았잖아."
조예라가 고개를 든다. 조예라 얼굴이 눈물범벅이다. 이찬희가 조예라를 일으켜 세운다. 조예라 얼굴을 적시는 눈물을 이찬희가 닦아준다.
"미안해. 다시는 널 울게 하지 않을게."
이찬희 입술이 조예라 입술에 닿는다. 순간, 조예라가 이찬희를 밀치고 뺨을 때린다.
"...무슨 짓이야!"
조예라에게 뺨을 맞은 이찬희가 돌아서서 화장실을 뛰쳐나가고 조예라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눈물을 흘리운다.
아니었나 보다.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내가 예라를 소망하듯 예라도 나를 갈망할거란 건 나의 집착이 꾸며낸 환상이었나 보다.
"이제 수능 날이 백일도 채 남지 않았으니까 다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길 바래. 그런 의미에서 지금 옆 짝꿍에게 수능 잘 봐 라고 격려의 덕담 한 마디씩 하자."
담임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 학생들이 짝꿍과 서로 덕담을 나누는데, 이찬희와 조예라는 서로 머뭇거리기만 한다.
"찬희랑 예라는 왜 서로 아무 말 안 해?"
담임의 물음에 반 학생들의 시선이 이찬희와 조예라로 쏠린다.
"...예라야...끝까지 포기하지마..."
"...너도...끝까지 포기하지마..."
두 사람의 덕담이 오가고 나서 한 학생이 배를 잡고 웃는다. 한 학생으로 부터 시작된 웃음 소리는 바이러스처럼 반 학생들 모두에게 퍼져 거대한 웃음 소리가 된다.
"애들아, 찬희랑 예라가 덕담 나누는 게 뭐가 웃겨?"
"선생님, 찬희 예라 별명이 뭔지 아세요?"
"음ㅡ, 찬희는 꼴통! 예라는 엄친딸! ...그게 왜?"
"선생님, 꼴통이 엄친딸한테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안 웃기세요? 난 웃겨 죽겠는데. 하하하하!"
담임도 덩달아 웃는다.
"거봐요. 선생님도 웃기잖아요?"
담임이 굳은 이찬희 얼굴을 보고 애써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애들아! 조용!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 법이야! 너희들 나중에 찬희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러니?"
"선생님, 저 괜찮아요. 한두 번 듣는 소리도 아닌데요. 뭐."
담임이 안타까운 얼굴로 이찬희를 바라본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다!"
담임이 뭔가 생각난 듯 돌출 행동을 한다. 반 학생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담임을 바라본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너희들은 올해 찬희가 대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찬희가 올해 대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너희랑 나랑 내기 하는 거야!"
여기저기서 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내기에서 진 사람은 이긴 사람 소원 무조건 한 가지 들어주기! 어때?"
"선생님, 진심이세요?"
"물론 진심이긴 한데, 내가 내기에서 이길 가능성 보다 질 가능성이 많은 건 사실이잖아. 그래서 누군가 찬희 공부를 도와줬으면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반 학생들은 이찬희가 꼴등이라는 점과 수능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서 담임이 내논 조건에 찬성한다.
"찬희 공부를 도와 줄 사람은 누구예요?"
"아직 찬희 공부를 도와 줄 사람은 아니고 찬희 공부를 도와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구요?"
담임이 잠시 망설이다 조예라 이름을 부른다. 조예라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나..나요?"
"응. 선생님 생각엔 예라가 찬희 공부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둘이 집도 가깝고. 예라만 괜찮다면 공부방은 선생님 집에서 해."
"예라가 싫다고 하면 내기는 취소가 되나요?"
"아니. 예라가 싫다고 해도 내기는 내기니까."
여기저기서 반 학생들의 환호 소리가 터져 교실 안을 가득 메우고 수줍어 홍당무가 된 조예라 얼굴을 이찬희가 바라본다. 조예라가 담임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책상 밑에서 손깍지를 끼고 자꾸만 꼼지락거린다. 책상 밑에서 꼼지락이는 조예라 손깍지를 이찬희 손이 살며시 덮는다. 조예라가 놀란 얼굴로 이찬희를 바라본다. 이찬희가 조예라를 보고선 미소를 짓는다. 동화가 된 듯 조예라도 미소를 짓는다.
당일 수업을 마치고 이찬희가 친구들과 함께 정문 밖으로 걸어 나온다. 정문 밖에선 조예라가 이찬희를 기다리고 있다. 하교를 하는 이찬희를 발견한 조예라는 핸드폰을 꺼내 이찬희에게 전화를 건다.
이찬희 핸드폰 벨이 울린다. 발신자에 '깜찍이'가 찍힌 걸 보고는 이찬희가 급히 친구들과 헤어지고 담임 집 앞 놀이터로 달려간다.
놀이터에 도착한 이찬희는 턱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봤지만, 조예라는 보이지 않는다. 덩그러니 가로등만이 켜 있을 뿐.
"예라야! 어디 있어? 예라야! 예라야!"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봐도 놀이터 안 어디에도 조예라는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다. 지친 얼굴을 한 이찬희가 벤치에 앉아 혼잣말을 한다.
"내가 빨리 안 와서 화났어? 미안. 다신 혼자 두지 않을게."
마침 그때 조예라가 빵과 우유가 든 비닐 백을 들고 놀이터 안으로 들어선다.
"많이 기다렸어?"
조예라가 이찬희 옆 자리에 앉는다. 이찬희가 조예라를 꼭 껴안는다.
"왜 그래? 숨 막혀."
"어디 갔었어? 안 보여서 걱정했잖아."
이찬희 품에 안긴 조예라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선생님이 오늘도 늦으시려나?"
"찬희야, 잠시 쉬었다가 마저 공부하자."
조예라가 공부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이찬희가 공부에 지친 듯 바닥에 벌러덩 눕는다. 잠시 뒤,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에서 나온 조예라가 공부방 문을 연다. 그새 이찬희가 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조예라 인기척에도 깨지 않을 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조예라가 이찬희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는 이찬희 옆에 누워 자고 있는 이찬희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이찬희 입술에 키스를 한다. 조예라 키스에 잠이 깬 이찬희가 눈을 뜬다.
"...미안!"
조예라가 잠에서 깬 이찬희를 보고 멈칫한다. 당황한 얼굴로 조예라가 일어나려는데 이찬희가 조예라를 붙잡아 앉히고는 다시 키스를 한다. 그리고 둘은 서로의 교복을 벗겨 몸을 더듬고 핥는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이찬희와 조예라가 여느 여학생들처럼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엔 아무도 없다. 이찬희와 조예라는 한 칸막이에 같이 들어가 문을 잠근다. 이제 둘은 당연한 듯 키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더듬고 핥는다. 둘의 사랑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학생 두 명이 화장실로 들어선다. 이찬희와 조예라는 딴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서로의 사랑만을 확인한다. 이찬희랑 조예라랑 같은 반인 두 여학생이 화장실을 울리는 신음소리에 귀가 솔깃해 진다.
"...이게 무슨 소리야..."
두 여학생이 겁에 질린 얼굴로 서로를 보고는 후다닥 화장실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두 여학생이 반에서 선머스마로 불리는 여학생을 데려고 와서는 화장실로 밀어 넣는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선머스마의 음성을 듣고 이찬희와 조예라가 쥐 죽은 듯 숨죽인다.
“우리가 잘못 들었나? 그럴 리가 없는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잘못 들었단 게 말이 돼!”
“그러니까, 잘못 들은 게 맞네.”
두 여학생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리고 세 여학생이 화장실을 나간다. 세 여학생의 대화를 듣고 이찬희와 조예라가 소리 없이 웃는다. 둘은 소리 없이 웃음 짓는 서로를 보고서 다시금 합당치 못한 일을 한다.
선머스마가 화장실에 다시 들어선다. 다시 신음소리가 울린다. 신음소리의 정체를 찾던 선머스마가 유일하게 문이 잠긴 칸막이 밑으로 핸드폰을 넣어 동영상을 찍는다. 이찬희와 조예라는 선머스마가 찍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쾌락을 즐기고 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 선머스마가 급히 칸막이 밑에서 핸드폰을 빼곤 찍은 동영상을 저장하며 황급히 교실로 달아난다.
“무슨 소리 안 들렸어?”
“무슨 소리? 난 아무 소리 못 들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었나봐.”
이찬희가 조예라 손을 잡고 교실로 달려간다.
방과 후, 선머스마가 핸드폰을 꺼내 낮에 찍은 동영상을 확인한다. 동영상에는 낯익은 두 사람이 찍혀있다. 이찬희와 조예라. 동영상에 찍혀있는 두 사람이 합당치 못한 일을 하고 있다. 키스를 하고 서로의 몸을 더듬고 핥는다. 누가 봐도 동영상에 찍힌 두 사람은 레즈비언이다.
그 날 이후, 둘의 합당치 못한 일은 소문이 되어 학급 내에 퍼졌다.
“찬희랑 예라랑 레즈비언이래.”
“나도 듣긴 들었는데, 소문은 있지만 물증이 없으니까. 그냥 뜬소문이지 뭐.”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선머스마가 스산한 미소를 짓는다.
“저기 찬희랑 예라랑 온다!”
“무슨 얘길 그리 재밌게 해? 우리도 좀 껴줘."
반 학생들이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이찬희와 조예라 앞에서 말문을 닫는다.
담임이 부랴부랴 소문의 출처를 알아내고 진로 상담이란 핑계로 선머스마를 상담실로 부른다.
상담실 안에는 담임이 혼자 선머스마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노크 소리가 들린다. 담임이 애써 태연한 얼굴로 문을 연다. 선머스마가 상담실 안으로 들어서서 문을 닫는다.
그 날 이후, 소문은 잠잠해졌다. 그 딴 소문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만큼. 담임과 선머스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급속도로 소문이 사라졌을까?
수능 당일, 학교 정문 앞에는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과 선배의 수능을 응원하러 온 후배들로 장사진이다. 이찬희와 조예라가 변함없이 함께 등교를 한다.
“찬희야, 어제 복습 한대로만 하면 좋은 결과 나올 거야.”
“그건 너한테 해당되는 말이지. 어제 복습한 거 하나도 기억 안 나. 나 어떡하지? 미쳐버릴 것만 같애!”
이찬희가 긴장한 듯 보인다. 조예라가 이찬희 두 귀를 덮는다.
“찬희야, 내 말만 들어. 넌 할 수 있어. 누가 뭐래도 넌 할 수 있어. 긴장하지마! 네가 긴장하면 나도 긴장되잖아."
이찬희가 자신의 두 귀를 덮고 있는 조예라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 잡고 내리우며 미소를 짓는다.
“그래. 네 말만 들을게. 네가 있어 다행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조예라의 장난 썩힌 대답에 두 사람이 방긋 웃는다.
수험생들이 우르르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빨리 들어가자!”
수험생들의 틈 속에서 이찬희와 조예라가 손을 놓지 않고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당연한 결과인 걸 알면서도 이찬희가 오열을 한다.
“...미안해...예라야...미안해...”
이찬희 눈물이 번져 조예라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왜 네가 미안해? 미안해야 할 사람은 정작 난데...”
“예라 너랑 같은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나 올해 대학 가지 말까? 내년에 너랑 같이 가게 말야.”
“그러지마! 제발 그러지마! 네가 그럴수록 나만 더 비참해져!”
“선생님, 저희가 이겼으니까 소원 들어주셔야줘!”
"그래. 너희들 소원이 뭐야?"
참담한 수능 결과를 듣고 자리를 비운 이찬희와 조예라 걱정에 담임이 한숨을 짓는다.
"선생님, 저희 소원은 추억을 만드는 거예요!"
"뭐! 뭘 하자고?"
"찬희야! 네 말이 꼭 내가 널 비참하게 한다는 말처럼 들려! 그래서 기분이 나빠!"
"내가 네 기분까지 맞춰줘야 해?"
"너 말이 이상하다! 내가 언제 내 기분 맞춰달라고 했어?"
"...예라야, 미안하니까 그만하자."
"뭘 그만해! 네 점수가 안 좋으니까 내년에 같이 가주겠다는데, 그게 잘못 됐어?"
"그만 하자니까!"
"...지금...나한테...화 낸 거야?"
조예라 뺨에 난 눈물 자국을 따라 다시 뜨거운 액체가 흐른다. 이찬희가 미안한 마음에 울고 있는 조예라를 안는다. 조예라가 안으려는 이찬희를 밀어낸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조예라가 소리 내어 울고 이찬희는 그 자리를 떠난다.
담임과 반 학생들이 고교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관광버스를 타고 정동진으로 가고 있다. 이찬희랑 조예라는 아직 싸운 게 풀리지 않은 듯 서로 딴 자리에 앉아서 서로를 의식한다.
“예라야! 예라야!”
옆자리에 앉은 성은혜가 조예라를 콕콕 찔러 깨운다.
“왜?”
“너희 둘 싸웠어? 찬희 표정이 어두워 보여.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관광버스 뒷자리에 앉은 이찬희가 평소와 다르게 근심에 찬 얼굴로 차창 밖을 응시한다.
“흥, 내가 알게 뭐야!”
조예라가 무관심한 듯 돌아눕는다. 그리고 혼잣말을 한다.
“...바보...그냥 안으면 풀릴 걸..어울리지 않게 왜 저래...설마...혹시...이대로 찬희랑 영영 멀어지면 어쩌지..아닐 거야...그럴 리 없어..."
조예라의 혼란한 마음을 이찬희는 아는지 모르는지 요란한 관광버스 안에서도 잘만 잔다.
관광버스가 정동진에 도착했다. 담임이 기지개를 켜며 반 학생들을 깨운다.
“애들아! 일어나! 정동진에 다 왔어!”
관광버스 문이 열리고 담임과 반 학생들이 차례차례 정동진 땅을 밟는다. 담임과 반 학생들이 정동진에 내리자마자 계획한대로 기념사진을 핑계 삼아 바다로 모인다. 끝머리로 이찬희가 관광버스에서 내리자 담임이 손짓하며 부른다.
“찬희야! 이리로 와!”
바다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담임과 반 학생들이 모여 있다. 그 무리 속에 조예라가 시무룩한 얼굴빛을 짓고 있다.
“짐부터 내리고 갈게요!”
“짐은 나중에 내리고 얼른 와! 기사 아저씨가 우리 사진 찍어준다고 기다리시잖아!"
담임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이찬희가 무리 속에 스며든다.
"찬희는 예라 옆에 서!"
이찬희와 조예라가 서로 껄끄러운 듯 멀뚱멀뚱 서 있다.
"사진 찍을 게요! 하나! 둘!"
담임과 반 학생들이 셋 소리와 동시에 이찬희와 조예라를 서로 밀어 맞붙인다.
"셋! 찰칵!"
여고시절 추억을 사진 한 컷으로 남기고 훌쩍 시간은 썰물처럼 멀어져 간다. 이찬희와 조예라의 합당치 못한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현재 둘에게 놓여진 현실은 조금 다른 듯하다. 이찬희가 대입에 실패해 재수를 하고 조예라가 좋은 성적으로 명문대에 입학했다.
대입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 수많은 수험생 틈에서 이찬희가 보인다. 이찬희가 서둘러 버스를 타고 이제는 둘만의 아지트가 되어 버린 집 앞 놀이터로 달려간다. 조예라가 보이지 않는다. 이찬희가 시무룩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조예라에게 전화를 건다.
"예라야! 어디야?"
"집 앞 놀이터!"
"너 자꾸 거짓말 할래? 지금 내가 집 앞 놀이터 거든! 너 안 보여!"
"어!"
"어! 뭐?"
"나 너 뒤에 있어."
이찬희가 뒤를 돌아본다. 정말로 조예라가 거짓말처럼 서 있다.
"야! 너! 언제 왔어? 아깐 안 보였는데!"
"찬희 네가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집 앞 놀이터에서 둘은 키스를 한다. 둘은 애무를 한다. 둘의 본능이 격해져 둘은 오르가즘을 느낀다.
다음 날, 조예라가 다니는 대학교 내에 조예라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제는 조예라와 친분이 없는 학생들도 조예라를 알아 볼 만큼 조예라는 대학교 내에 유명인이 되어 버렸다. 강의실을 가든 매점을 가든 도서관을 가든 조예라는 학생들의 얘깃거리가 되었다. 그 일로 인해 조예라는 한 학기도 못 마치고 자퇴를 결정한다. 물론, 조예라에게 자퇴를 권유한 건 이찬희다. 이찬희는 조예라가 하루하루 힘겨워 하는 걸 보고는 둘만의 이민을 결정한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는 나라로.
조예라가 버스정류장에서 대입 학원을 마치고 서둘러 집 앞 놀이터로 올 이찬희를 기다린다. 이찬희가 탄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조예라를 문예창작학과 선배인 윤재준이 숨어서 엿보고 있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이고 이찬희가 내리인다. 순간, 조예라가 얼굴을 가리고 서둘러 집 앞 놀이터로 달려가는 이찬희를 몰래 쫓아간다.
"예라야! 어디야?"
"집 앞 놀이터!"
"너 자꾸 거짓말 할래? 지금 내가 집 앞 놀이터 거든! 너 안 보여!"
"어!"
"어! 뭐?"
"나 너 뒤에 있어."
"야! 너! 언제 왔어? 아깐 안 보였는데!"
"내가 말했잖아. 난 언제나 네 뒤에 있을 거라고."
둘은 서로를 생각해 주는 마음에 감동하여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 장면을 윤재진이 엿본다. 한동안 보고만 있던 윤재준이 둘의 합당치 못한 일을 대학교 홈페이지에 올린다.
"너 봤어?"
"뭘?"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레즈비언 동영상 말야."
"찍힌 걔도 참 불쌍해! 걔는 찍힐게 없어서 뭐, 그 딴 걸 찍히냐!"
"야, 살살 말해. 조예라 다 듣겠다."
"뭐야! 쟤가 걔였어!"
"살살 말해라니까."
조예라가 강의실을 나가자 다들 뒤에서 쑥덕인다. 조예라가 강의실을 나와서 문에 기대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찬희야, 나 더 이상 여기서 버틸 자신이 없어. 우리 이민가자."
이찬희가 조예라를 안고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예라야, 잘 결정했어! 여기 있어봤자 우리 둘만 힘들어."
이찬희가 조예라와 헤어지고 고교시절 담임에게 전화를 건다.
"예라가 가겠대요. 이민에 필요한 서류 준비해 주세요."
"응. 그래."
전화를 끊은 담임이 고교시절 선머스마에게 돈뭉치를 건네고 돈뭉치를 받은 선머스마가 다시 윤재준에게 건넨다.
조예라가 자퇴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국 날이 잡혔다.
"선생님, 그 동안 고마웠어요."
이찬희가 출국 전날 은밀히 담임을 만났다.
"덴마크에서 예라랑 결혼하고 잘 살아."
"예, 선생님. 선생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찬희야..."
"예?"
"...마지막으로 날 좀 안아줄래?"
이찬희가 담임을 안는다.
"선생님, 우세요?"
담임이 얼른 눈물을 닦는다.
"...아니..."
이찬희와 헤어진 담임이 훌쩍이며 돌아선다. 선머스마가 서 있다.
"언제부터 있었어?"
"처음부터요."
담임이 선머스마를 스쳐 지나간다.
"아직도 잊지 못한 거예요."
"이제는 그런 거 상관없잖아. 내일이면 다 끝나는데."
선머스마 뺨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뭐가 끝이라는 거예요! 선생님 마음엔 아직도 저 년밖에 없는데!"
담임이 가던 길을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선머스마를 본다. 선머스마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벽에 몸을 기대고 주르륵 눈물범벅이 되어 담임에게 묻는다.
"선생님, 나는 안 되겠죠? 아무리 해도... 안 되겠죠?"
측은한 마음에서 일까. 담임이 선머스마 옆에 쪼그려 앉아 선머스마를 꼭 안는다.
"...울지마...예은아..."
윤재준이 육교 위에서 소주병 나발을 불고 휘청거린다. 그리고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 육교 밑 한강에 던진다. 돈뭉치가 터지고 그린 지폐가 제각각 강바람에 춤을 춘다.
"...예라야...미안...미안해..."
지난 날 자신을 회개하듯 윤재준이 한강에 투신한다.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윤재준이 실종된 지 5년이 지났다. 윤재준의 실종 사실을 알 리 없는 조예라가 덴마크에서 이찬희랑 결혼을 하고 입양을 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값진 하루하루를 만끽한다.
"거시기! 사과 딴 거 좀 창고로 날라줘!"
"예ㅡ!"
윤재준이 열매가 듬뿍 담긴 손수레를 끌고 사과나무 밭을 나가려는데 제복을 입은 여경 한 명이 사과나무 밭으로 들어온다.
"아이구! 유진아! 잘 왔다! 잘 왔어!"
사과를 수확하던 일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여경을 반갑게 맞이한다.
"도시 생활은 어때? 너무 복잡해서, 여기만 못하지?"
숨 쉴 틈도 없이 여기저기서 여경에게 질문이 쏟아진다.
"근데, 저 분은 누구세요? 처음 보는 분인데."
여경이 윤재준을 가리키며 묻는다.
"5년 전에 여기로 왔는데. 자기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예전 일을 전혀 기억 못 해. 그래서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지내라고 했는데, 기억이 영ㅡ안 돌아오나 봐!"
다들 새참을 먹으려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저기요. 나랑 구면이시죠?"
여경이 새참을 먹고 있는 윤재준에게 말을 붙인다.
"예?...아니요...초면인데요."
윤재준 대답을 듣고 여경이 갸우뚱하며 혼잣말을 한다.
"...어디서 봤더라...낯이 익은데..."
새참을 다 먹고 윤재준이 읍내로 나가려고 자전거를 탔다.
"잠깐! 저도 같이 가요."
불쑥 여경이 자전거 뒷자리에 앉는다.
"읍내에 볼 일 있으면 나중에 나랑 같이 가면 되는데?"
"오랜만에 읍내 구경 좀 하려구요. 해 떨어지기 전에 올게요. 염려 마세요."
"우리 유진이 잘 모시고 다녀와라."
"예ㅡ."
윤재준과 여경이 탄 자전거가 출발하고 여경이 조심스레 윤재준의 윗도리 끝자락을 잡는다. 구부러진 길이 나타나고 자전거 휘청거림에 여경이 윤재진 허리를 감싸 안는다. 윤재준과 여경 얼굴에 분홍빛 물이 든다.
읍내에 도착한 윤재준과 여경은 마치 연인처럼 읍내 장터를 구경하고 즐긴다. 좀처럼 둘의 웃음은 멈추이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여경이 읍내 파출소 안으로 들어간다. 여경을 기다리던 윤재준이 파출소 게시판에 붙어있는 실종 신고서를 본다. 실종 신고서를 붙인지 오래된 듯 칼라가 바래있다. 그런데, 윤재준 자신을 찾는 실종 신고서다. 윤재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영력하다.
"많이 기다리셨죠?"
여경이 파출소 문을 열고 나온다. 윤재준이 급한 마음에 게시판에 붙은 실종 신고서를 떼내어 구긴다.
"...아니요..."
"해가 저물어 가는데, 그만 돌아갈까요?"
"...예..."
윤재준과 여경이 자전거를 세워 둔 곳으로 함께 걸어간다. 윤재준이 여경 눈치 못 채게 구긴 실종 신고서를 땅바닥에 버린다. 그리고 둘은 마을로 돌아간다.
거의 마을에 도착할 쯤 되어 이장님을 만났다.
"거시기! 자전거 타고 혼자 어딜 그렇게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