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동해 일주여행(둘째날 - 동해에서 삼척까지)
귀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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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피곤함이 말끔히 가셨다. 우린 젊다. 으쌰으쌰..짐을 챙기고 강릉으로 나온 우리는 버스를 탔다. 되도록이면 아껴야했지만 차비까지 아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표를 구입하고 집에 전화를 했다. 우린 효자다. 하루에 한번씩 꼭 집에 전활했다. 그땐 핸펀이 없던 시대다. [107(017이었나?..기억이 가물가물)]버튼을 누르고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했다. 어쩔 수 없다. 돈을 아껴야한다. 1시간도 채 안걸려서 동해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의 해변의 경치는 쥑인다. 겨울바다. 환상이다. 입이 저절로 찢어진다. 헤헤^^*.
10여년전의 기억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동해터미널을 나오니 커다란 동해관광이라는 입간판이 쓸쓸히 여기가 동해임을 알려주었다. 정말 허허벌판이었다. 우리 셋은 물끄러미 입간판을 바라보며 어디로 갈것인가를 고민했다. 사실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셋중에 한명이 \"일루가자\"하면 우루루 그리로 갈 기세였으니깐 말이다. 계획없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입간판속에는 참 볼것도 많았는데 주변은 비참했다. 바로그때, 누군가가 우리 옆에 섰다. 땅딸만한 키에 똥똥한 몸집, 배낭가방을 맨걸보니 여행하는 사람인것 같았다. 혼자서..쓸쓸히..외로이..어찌어찌하여 우리는 그 뚱보형(우리보다는 형이었다. 경희대를 다니는 형이었다. 뭔 고민이 있어서 여행을 시작한것이라 했다. 이름이 기억나질 않아 편의상 뚱보형라고 하겠다.)와 동행하기로 했다.
낯선이와의 동행, 여행의 즐거움이 이런것인가?..우리는 이렇게해서 네명이 되었다. 지금같으면 \"혹시 이 사람이?\"라는 의구심이 들겠지만 그때 우리는 순수했다. 그리고 그 뚱보형도 멋있는 사람이었다. 뚱보형도 특별하게 목적지가 없는것 같았다. 형이 제안했다. \"삼척으로 가자\" \"그래\" 완전히 허무시리즈다. 그렇게 우리는 삼척으로 향했다. 동해에서의 별다른 추억을 만들지도 못한채말이다.
차를 타고 간것이 아니다. 걸어서 갔다. 그때 기억에 동해에서 삼척까지 차비는 600원이었다. 우리는 그 돈을 아껴서 담배를 사기로 한 것이다. 88(담배이름)이 800원이었다. 그 비싼 것을 필 수 없었으므로 지금은 단종되어버린 백자(담배이름-한보루 12갑에 2,400원)를 구입하기 위해 초라해보이는 작은 구멍가게를 모두 뒤졌다. 결국은 샀다. 차비를 아껴서 담배를..나중에 말하겠지만 부산에서부터는 다시 88를 구입했다.
다시 되돌아와서, 600원을 아껴 걸어간 삼척까지의 거리는 반나절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삼척까지의 도보여행에서 공사하는 곳을 많이 보았다. 지금쯤이면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도로로 바뀌었을것이다.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커피를 마시기위해 길가에 앉았다. 물이 없었다. 어쩔 수 있으랴..코펠 하나들고 눈에 보이는 집에 무작정 들어가서 \"물 좀 주세요\"했다. 너그러운 사람들..우리는 커피로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역시 계획없는 여행은 고난뿐이다.
삼척도착..이미 밤이다. 어둡다. 민박할 집을 찾아서 밥을 먹어야한다. 걸어오면서 본 도시치고는 꽤 훌륭한 번화가였다. 서너군데 방값을 알아보았으나 너무 비쌌다. 20,000원, 15,000원, 12,000원...우~씨..만원이 그렇게 귀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다시 설에 가면 아껴써야겠다라고 다짐했다. 배가 고프다. 배속에서는 밥달라고 난리가 났다. 우리는 결국 밥을 먹고 방을 잡기로 결정했다. 사먹었냐구요...?...미쳤어요?....그게 얼만데...
삼척터미널안에 가게가 있었다. 또 한번 나는 코펠을 들고 가게에 들어가 물을 구걸했다. 그리고 삼척터미널앞에서 버젓이 신문지를 깔고 물을 끊였다. 라면이다. 쥑인다. 어두웠지만 터미널안의 불빛이 조금씩 비추어서 그나마 나았다. 쪽팔린다. 그래도 어떻햐랴...배고픈데...일단 먹고보자...얼굴에 철판깔고 반찬들을 꺼내서 라면을 먹었다...무진장 맛있었다...그리고 우리는 경비아저씨한테 혼났다. 그러나 이미 라면은 다 먹은 상태였다. 연신 고개를 숙인다음 우리는 느긋하게 배낭을 짊어지었다. 우리의 목적은 달성된 후였다.
이젠 방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9,000원짜리 방을 찾았다. 네명이 누우면 꽉차는 방이다. 여기서 자야하나?...모두들 걱정이다...우리는 가게 앞에 마련된 탁자에 앉아서 고민했다. 바로 그때..어떤 술취한 아줌마가 오시더니 우리들의 손을 잡고 우시는 거였다...이것 뭔 난리라냐?..
아줌마와 우리나이또래의 아들이 있었더란다. 지금은 나쁜짓해서 깜방에 들어가 있단다. 그 아들도 여행을 좋아했단다. 우릴보니 아들이 생각났단다. 뭐 이런거였다. 아줌마는 아줌마네 집으로 가서 자라고 했다. 여관을 한다고 했다. 얼씨구나...공짜로구나....방심은 금물...18,000원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손을 붙잡고 우시는 아줌마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큰 결심...18,000원...결정했다.
여관에 들어왔다. 이건 여관이 아니라 호텔이다..커다란 방과 깨끗한 욕실..음..이런데서 자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이것저것 저녁을 준비하려는데 아줌마가 들어오셨다. 커다란 밥상에 여러가지 찬들이 국과 함께 놓여있었다. 아줌마의 정성이란다. 이렇게 고마울수까.....따뜻한 정성이 담긴 밥도 먹고 깨끗하게 목욕도 했다.
우리는 뚱보형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우리들의 이야기, 뚱보형의 이야기..여행이란 새로운 인생과의 뜻밖의 만남같은 것인가보다. 뚱보형과 친절하신 아줌마...그 아줌마께서는 그 이후에도 놀러오라고 하셨다. 해변가에 별장도 있다면서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우리는 삼척에 가질 못했다. 남자들만의 잠자리....배개가 날라다니고 웃음이 끊이지 않고....술잔이 오고가는..그윽한 분위기...그렇게 삼척에서의 둘째날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