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나무 아래 -김 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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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접힌 상아빛 연등(燃燈)이
몇 일째 허공에서 출렁인다.
어떤 손이 저리 정결한 추종을 내 걸었는가.
섬세하게 깎인 꽃의 모서리가
허공에 그린 창백한 치장.
봄비를 들어올리다 한 쪽이
소리 없이 깨진다. 꽃 등이
허물어진 자리에 정처 없이 들어선 봄날.
난생처음 목련나무 아래
만나고 떠난 그날처럼
나무의 발 밑은 적막하다.
같은 자리에 왔다 가는
천년처럼 기나긴 꽃의 생애가
지금 막 골목길에 당도했다.
바위처럼 무거운 걸음이
지구를 슬프게 밟고 와서
봄이 기우는 서편으로
쿵하고 울리며 간다.
이후 그들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생은 다만 담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