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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시 모음> 안도현의 '분홍 지우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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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시 모음> 안도현의 '분홍 지우개' 외

+ 분홍 지우개

분홍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지워 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 다시 살아나는
보고 싶은 생각

분홍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혼자 눈을 감아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안도현·시인, 1961-)


+ 봄꽃을 보니

봄꽃을 보니
그리운 사람 더욱 그립습니다
이 봄엔 나도
내 마음 무거운 빗장을 풀고
봄꽃처럼 그리운 가슴 맑게 씻어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고 싶습니다
조금은 수줍은 듯 어색한 미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피다 지고 싶습니다
(김시천·시인, 1956-)


+ 강가에서

물을 따라
자꾸 흐를라치면

네가 사는 바다 밑에
이르리라고

풀잎 따서
작은 그리움 하나

편지하듯 이렇게
띄워 본다
(이형기·시인, 1933-2005)


+ 엽서

낙엽조차 없는 빈 뜨락에 그리움이 쌓입니다.
(권동기·시인, 1962-)


+ 짧은 해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 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김용택·시인, 1948-)


+ 내 청춘의 트라이앵글

바닷가를 걸으면
모래 위로 발자국이 남듯

당신의 흔적
내 맘속으로 들어와

시작된 사랑
고통이 되고

그 사랑
다시 아픈 그리움 되어

아직
내 가슴속에 남아 있네

이별 후
기억을 건너

내가 네가 되어
가슴에 뛰어들어 헤아려보니

가슴을 적시던 빗물처럼
두 볼을 타고 흐르는 진한 눈물

아,
사랑이 깊으면
그리움도 아픔이 되네
(안경애·시인)


+ 그리움
  
어쩌란 말이냐
니가 그리운 걸
산을 보면 니가 보이고
하늘을 보면 니가 보인다

눈을 감으면
더욱 또렷이
니가 남긴 흔적으로
니가 그립다

두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떨어지는 눈물은
정녕 그리움인걸

추한 모습으로
지는 목련일지라도
니가 그리운 걸
어쩌란 말이냐.
(공석진·시인)


+ 니가 없어 그래

예전엔 안 먹어도 배부르고
얼음 꽁꽁 얼어도 안 춥고
울어도 울어도 기쁘기만 했는데  

이제는
온종일 먹어도 배고프고
내복에 양말 두 개씩 신어도 춥고
웃어도 웃어도 슬프기만 해  

그때는 커피를 몇 잔씩 마셔도 졸립고
낮잠을 종일 잤어도 졸립고
니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잠들었는데  

지금은 수면제 먹어도 못 자고
양을 수백 마리씩 거꾸로 세어도 못 자고
니 생각 하다보면 어느새 아침이더라구
(서천우·시인)


+ 그리움

얼마나 아파야 꽃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순결해져야 울음이 될 수 있을까

그리움 하나로
새들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강물은 뿌리까지도 남김없이 온몸
바다로 가 닿네

돌아오지 않는 사랑 앞에서 날마다 가난한 마음으로
푸른 등을 내거는 별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더 외로워져야
가슴에 작은 아픔 하나 밝힐 수 있을까

온몸으로
너에게 그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상윤·시인, 경북 포항 출생)


+ 기특한 일

모두 잠든 그 시간에도
깜깜한 세상을 비추이는 별빛처럼
그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내 그리움은 그대의 어둠을 비추고 있네

살포시 내렸다가
아침 햇살에 이내 녹고 마는 여우눈처럼
곧 제 서러움에 겨워
눈자위 촉촉이 젖을 이 못난 그리움을 보라

저 하늘의 단 하나의 별빛도 예사롭지 않으니
그대여,
너무도 일상적이거나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
다 그 근본에 그리움이 있으니
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아무 것 거둘 수 없다하더라도
한 평생 삶의 자락
어디메 쯤
그리움 하나 독하게 키울 일이네
(김영천·시인, 1948-)


+ 저 별빛

그리움도 버릇이다 치통처럼 깨어나는 밤
욱신거리는 한밤중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
필경 지친다 더 이상 감추어둔 패가 없어
자리 털고 일어선 노름꾼처럼
막막히 오줌을 누면 내 삶도 이렇게 방뇨되어
어디론가 흘러갈 만큼만 흐를 것이다
흐르다 말라붙을 것이다 덕지덕지 얼룩진
세월이라기에 옷섶 채 여미기도 전에
너에게 쓰는 편지는 필경 구겨버릴 테지만
지금은 삼류 주간지에서도 쓰지 않는 말
넘지 못할 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너에게
가고 싶다 빨래집게로 꾹꾹 눌러놓은
어둠의 둘레 어디쯤 너는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마음은 늘 송사리떼처럼 몰려다니다가
문득 일행을 놓치고 하염없이 두리번거리는 것

저 별빛 새벽까지 욱신거릴 것이다
(강연호·시인, 1962-)


+ 외눈부처 사랑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이미 작정한 사랑이랍니다
첫눈에 반하여 한눈에 심은 외눈부처 사랑

거기 어딘가 푸른 강 마을이 있고
오색 들꽃이 환한 호반의 집에서
물안개 피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저리도록 다가오는
내 당신

어느 결에 잠을 깨어
살포시 안기는 당신의 속삭임은

간밤에 일던 불꽃은 정말 꿈만 같다고
억겁의 연 아니면 차마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고

그래요
언제라도 사위지 않을
당신 가슴 안에 있을진대
난 왜 이리도 늘 당신이 그리운지

아, 배가 고파요. 당신이 보고파서!
(김재권·시인, 1956-)
* 외눈부처: 외눈의 눈동자(매우 귀중함을 뜻함).


+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그리움이란
마음 한 켠이 새고 있다는 것이니
빗속에 누군가 그립다면
마음 한 둑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니

비가 내린다, 그대 부디, 조심하기를
심하게 젖으면, 젖어들면, 허물어지는 법이니

비 내리는 오후 세 시
마침내 무너진 당신, 견인되고 있는 당신

한때는 '나'이기도 했던 당신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비가 내리는 오후 세 시
나를 견인하고 있는 당신
(박제영·시인)


+ 늘, 혹은 때때로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조병화·시인, 1921-2003)


+ 목련꽃 그늘 아래

봄날의 햇살 따사로운
목련꽃 그늘 아래
허름한 나무 벤치에
다정히 마주앉은
한 쌍의 젊은 연인을 보았습니다

그저 둘이 함께
마주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인
두 사람은
지금 무슨 밀어(密語)를 속삭이고 있을까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아
포개어진 두 손으로
두 사람 사이에 말없이 오갈
사랑의 느낌은
얼마나 깊고 깊을까

아!
나도 저 모습 그대로
목련꽃 그늘 아래
님과 함께 오순도순 마주앉을
그 날은 언제일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님의 모습 그리며
가던 걸음 살며시 멈추고
뒤돌아보니

목련꽃 그늘 아래
허름한 나무 벤치에는
정답게 마주앉은
한 쌍의 연인이 있습니다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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