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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에 관한 시 모음> 나태주의 '배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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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에 관한 시 모음> 나태주의 '배꼽' 외

+ 배꼽
    
어릴 적 시냇물
지줄대는
소리 들린다
목이 마르다
고무 젖꼭지라도 빨고 싶다
우주로 열린
조그만 분화구.
(나태주·시인, 1945-)


+ 배꼽

엄마는 아기를 낳자마자
몸 한가운데에다
표시를 해놓았다.

- 너는 내 중심

평생 안 지워지는 도장을
콕 찍어 놓았다.
(백우선·아동문학가, 1953-)


+ 배꼽
  
샤워 후에 거울 앞에 서서
배꼽을 바라보노라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
길고 긴 삼 백여 날을
저를 통해
푸근한 어머니의 우주에서 유영했던
자랑스런 흔적
저 탯줄 잘리기 전에
당신이 겪었던 엄청난 산통 떠올리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이젠 이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 어머니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배꼽에 손이 갈 때

생각할 게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는 이
이마를 짚거나 뒷머리를 긁는 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는 이
엉덩이를 꼬집는 이도 있다지만
나는 배꼽에 손이 간다.

낯선 이들하고 아무리 가족호칭으로 불러도
한 가족이 될 수 없고
한 가족끼리도 타인처럼 사니까
진실은 천륜의 그루터기에서 나온다 싶어서
어머니와 이어졌던 흉터만 믿고 싶어서
출생시의 목청은 정직하니까
배꼽의 말은 손으로도 들리니까

이만하면 배부르다
이만하면 따뜻하다
너무 생각 말거라
두 손바닥에다 거듭 일러준다
내 손 아닌 어머니의 손이 된다
(유안진·시인, 1941-)


+ 배꼽

뱃심 없는 날
뿌리와의 은밀한 통로
배꼽을 꾸-욱 꾹, 눌러 보라

꼬리-이- 달달
묵은 젖내 꼭지 끝에서 번져나는
젖빛 감 꽃  
푸른 잎새 토닥거림에
휘청하던 등줄기 물이 차오르고  
자존심이 빳빳이 서는
몸의 중심점은 배꼽이다

배꼽과 배꼽이 만나
생명의 불꽃 이어지고 내가 존재된다
젖먹인 힘과 젖 먹는 힘이 뭉친
배꼽은 몸의 생장점이다

뱃심 없는 날
뿌리와의 은밀한 통로
배꼽을 꾸-욱 꾹, 눌러 보라

늘 거기 있는 모태, 회귀의 길이 보인다  
모천으로 회귀하는  
모든 비밀센서는 바로 배꼽 아래 숨겨져 있다
연어의 배꼽을 보라
생生의 중점은 분명 배꼽이다.
(강학희·재미 시인, 서울 출생)


+ 배꼽 이야기
    
만경대 판판한 돌에
신문지 깔고 코를 골다 보면
슬그머니 기어나오는 배꼽
그걸 끌어가겠다고
빙 둘러싼 개미떼
숨쉬는 대로 움직이는 배꼽
그걸 보고 킬킬대는 개미떼
한 번쯤 개미에게 끌려가고 싶은 권태가
또 코를 곤다
(이생진·시인, 1929-)


+ 배꼽이 떨어지는 순간,

배꼽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목이 말랐을 것이다
배가 고팠을 것이다
몸부림치며
꽃이 피었던 곳에 매달려 있는
한 송이 꽃의 목마름,

저것은 힘차게 몸을 부풀리며
둥글게 허공을 채울 것이다
달디달게 익은
제 몸이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목마름으로 길을 내며
목마름으로 하루가 차 오를 것이다

탯줄이 이어지는 순간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순간
송알송알 알 하나가 생기는 그 순간,
목마름을 배울 것이다

평생토록 허리가 휘게 맺어지라는 것을
단물 많은 씨앗으로 둥글게 남으라는 것을,
(강미정·시인, 경남 김해 출생)


+ 태 혹은 배꼽

불현듯 밖으로 나와
불의 칼로
소금의 가위로
묶인 줄 잘라내기 전에
한 생生을 낳기 위해
깊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온몸의 살이 벗겨지는
어떤 어류의 목숨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한 생生을 묻기 위해
깊은 바다의 해저에 내려앉아
온몸의 무게를 벗어 던진
어떤 갑각류의 생명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태胎가 있어  
나로 하여금 지붕처럼
가볍게 하늘을 들어 올렸다
나로 하여금 기둥처럼
땅에서 우뚝 바로 설 수 있었다
어두워지는 낮의 세상에서도
밝아오는 밤의 세상에서도
별의 달의
중심을 밟고 있으라고
태胎를 끊고  
오롯이 항아리 같은
몸의 한가운데 배꼽을 만들었다
배꼽이 둥굴다
그곳에 무덤이 들어있다
중심이 둥굴다
그곳에 우주가 들어앉았다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배꼽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를 접어 감추며
여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처럼 떨어져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문인수·시인, 194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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