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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시 모음> 고영민의 '공손한 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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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시 모음> 고영민의 '공손한 손' 외

+ 공손한 손

추운 겨울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고영민·시인, 1968-)


+ 손

예전엔 얼굴을
보아 알겠더니
요즘엔 뒤를
보아 알겠네

예전엔 말을
들어 알겠더니
요즘엔 침묵을
보아 알겠네

예전엔 눈을
보아 알겠더니
요즘엔 손을
보아 알겠네  
(백무산·시인, 1955-)


+ 손의 미학

손은 인간관계를 일구는 대사다
처음이거나 반가우면 악수하고
서로 끌어안고 다독이기도 한다
손은 오므려 움켜쥐기도 하지만
손은 펴서 이웃에 베풀기도 한다

손의 위치는 자유자재다
몸의 중심에 위치하지만
위급할 땐 몸을 보호하고
슬플 땐 눈물을 훔쳐내며
기쁠 땐 손을 들어 환호한다

손은 더불어 함께한다
몸 어디라도 어루만지며
무엇에나 잘 어우러진다
손은 마음의 최전방 전령으로
먼저 반응하며 표현한다

손은 사랑의 마술사다
쓰면 쓸수록 거칠어지지만
생각과 마음의 분신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봉사하며
두 손 모아 사랑을 기도한다
(작자 미상)


+ 우리는 우리의 손을

우리는 우리의 손을
엄지손가락 치켜세워
그대 최고라 말하는 그런 손이게 해요.

우리는 우리의 손을
언성 높이며 삿대질하는 손이게 하지 말고
그대 잘했다며 박수 쳐주는 그런 손이게 해요.

우리는 우리의 손을
인상 쓰며 멱살잡이 하는 손이게 하지 말고
그대 반갑다며 잡아주는 그런 손이게 해요.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손을
양손으로 힘껏 밀쳐내 남이 되는 손이게 하지 말고
양손 벌려 와락 끌어안아 가족이 되는 그런 손이게 해요.

부디 우리는 우리의 손을
그런 손이게 해요.
언제까지나 그런 손이게 해요
(이동식·시인, 1966-)


+ 손의 행적

어떤 손은 계산기를 두들기고
어떤 손은 목탁을 두들긴다

칼과 창을 벼르는 손도 있고
삽과 호미를 만드는 손도 있다

한때는 화투를 쥐던 손이
한때는 붓을 잡기도 한다

올무를 놓는 손도 있고
오라를 푸는 손도 있다

진주를 찾으려 시궁창을 헤집기도 하고
목숨을 걸고 폭탄의 뇌관을 열기도 한다

밤에는 은밀한 샅을 더듬던 손이
낮에는 거룩한 경전을 펼치기도 한다
(임보·시인, 1940-)


+ 손의 언어

주먹을 불끈 쥐면 분노
두 손을 비비면 애원

움켜잡으면 욕망
가만히 내밀면 구걸

쓰다듬으면 애무가 되지만
어깨 위로 들어 흔들면 작별

하나의 검지로 사람들은
지시, 선택, 야유, 고발을 한다

엄지를 세워
공중으로 쳐들면 으뜸
지상으로 내리꽂으면 죽임

엄지와 검지만을 둥글게 맞대면 돈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우면 음부

새끼손가락은 은밀한 여인
엄지는 우두머리

때로는 칼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총이 되기도 한다

아니, 귀가 닫힌 이들은
두 개의 손으로 얼마나 많은 말들을 빚어내던가.
(임보·시인, 1940-)


+ 우는 손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
(유홍준·시인, 1962-)


+ 잠시 왼손을 잊었네
                              
오른손이 아이를 일으켜 세울 때
왼손이 커피 잔을 들고 있는 것을 깜박 잊었네.
두 손으로 일으켜야 할 일을
가볍게 여겨
아이의 옷에 커피를 쏟곤
오른손으로 더 큰 울음을 일으켜 세웠네.
아이는 얼룩진 모습으로 갔지만
나는 울음을 쥐고 돌아왔네.
그 참, 오른손에 정신이 팔려
잠시 왼손을 잊었네.
(강갑재·교사 시인)


+ 손  

물상이 떨어지는 순간,
휘뚝, 손은 기울며
허공에서 기댈 데가 없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 왔을까.

잠깐씩 가져 보는
허무의 체적(體績).

그래서 손은 노하면
주먹이 된다.
주먹이 풀리면
손바닥을 맞부비는
따가운 기원이 된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손은
빈 짓만 되풀어 왔을까.

손이
이윽고 확신한 것은,
역시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뿐이었다.  
(박남수·시인, 1918-1994)


+ 배꼽에 손이 갈 때

생각할 게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는 이
이마를 짚거나 뒷머리를 긁는 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는 이
엉덩이를 꼬집는 이도 있다지만
나는 배꼽에 손이 간다.

낯선 이들하고 아무리 가족호칭으로 불러도
한 가족이 될 수 없고
한 가족끼리도 타인처럼 사니까
진실은 천륜의 그루터기에서 나온다 싶어서
어머니와 이어졌던 흉터만 믿고 싶어서
출생시의 목청은 정직하니까
배꼽의 말은 손으로도 들리니까

이만하면 배부르다
이만하면 따뜻하다
너무 생각 말거라
두 손바닥에다 거듭 일러준다
내 손 아닌 어머니의 손이 된다
(유안진·시인, 1941-)
    

+ 내 동생의 손

생시에도 부드럽게 정이 가던 손,
늙지 않은 나이에 자유롭게 되어
죽은 후에는 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속상하게 마음 아픈 날에는 주머니 뒤져
아직 따뜻한 동생의 손을 잡으면
아프던 내 뼈들이 편안해진다.

내 보약이 되어버린 동생의 약손,
주머니에서 나와 때로는 공중에 뜨는
눈에 익은 손, 돈에 익지 않은 손.

내 동생의 손이 젖어 우는 날에는
내가 두 손으로 잡고 달래주어야
생시처럼 울음을 그치는 눈물 많은 손.

내 동생이 땅과 하늘에 묻은 손,
땅과 하늘이 슬픔의 원천인가,
슬픔도 지나 멀리 떠나는
안타깝게 손 흔들어대는
내 동생의 저 떨리는 손!
(마종기·시인, 1939-)


+ 손을 씻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 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義手를 외투 속에 꽂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코리아나 호텔 앞
나는 共同正犯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황지우·시인, 1952-)


+ 주름을 모으는 손

굽은다리 지하철역
통로 끝에 더덕 향 펼쳐놓은 노파
종일 웅크리고 앉아 더덕을 손질하고 있다
더덕껍질보다 더 주름진 손등 펼치면
깊게 패인 비포장 도로
금세 지리산 시루봉이 일어설 것 같다
탁, 탁
칼끝으로 긁고 있는 삶의 터전
어느새 뭉뚝하게 닳아버린 손톱 밑에
더덕뿌리가 거친 숨 몰아쉰다
푸른 지폐 한 장 건네자
고향 몇 뿌리가 내게 건너온다
손에 잡히는 더덕의 살집이 도톰하다
온몸 비틀어 넘은 시간들
노파의 손에 주름을 넘겨준 하얀 뿌리에서
제법 알밴 티가 난다

내 손끝에서도 무지렁이 향기가 스며 알싸하다
(이성임·시인, 전남 장성 출생)


+ 손

여기는 마음이 둥근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예요 아무나
함부로 이사 올 수는 없어요 당신은 마음이 보름달처럼 둥글다고요?
그러면 당신도 이곳에 올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 말을
우리가 어떻게 믿지요?

보여 주세요 뭐라도 좋아요 수첩 거울 신용카드 일기장 등 당신의
마음을 보여줄 물증만 있다면 우리는 날마다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문을
열어 두고 방을 치워놓고 길도 깨끗이 쓸어 놓을 게요 혹시
뜨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그러면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연락해서
기자들도 몇 명 데려다 놓을 게요

그렇지만 이것만은 꼭 알아주세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티끌만한 것이라도 당신이 손으로 가린 것이 있다면 이곳에
올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누구도 앞으론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세상에 손처럼 작고 투명한 것이 또 어디 있겠어요?
(이상윤·시인, 경북 포항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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