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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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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에 관한 시 모음> 권오범의 '애인 구함'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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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에 관한 시 모음> 권오범의 '애인 구함' 외

+ 애인 구함

가졌다고 콧대 높다든가
쥐뿔도 없이 카드 긁어대는
그런 사람 말고
선바람에 칼국수도 만족해하는 사람

피 말리는 악처처럼
후회로 자반뒤집기 하게 만드는
생파리같은 사람 말고
베잠방이처럼 조금 헐렁한 사람

재물 욕심이 남산만해
거머리처럼 자근대는
꽃뱀 같은 사람 말고
삶이 근근자자해 웅숭깊은 사람

춘정의 갈망으로 몸부림치며
세상 욕구불만 다 끌어안아 우중충한
그런 사람 말고
구름에 엎질러진 노을마저 미소로 수거해
마음 살찌울 줄 아는 사람

목로주점 막걸리 한잔에도
노가리 물고 희희낙락
분위기 거들 줄 아는
하여간 껄끄럽지 않은 그런 사람
죽도 밥도 안 되는 시는 몰라도 되는
(권오범·시인)


+ 그러나 애인은
  
애인은, 금세 날아가 버리는 향수
애인은, 헛웃음치는 꽃
뜻밖에 불어와 뜻밖에 지는
애인은, 바람보다 허무한 바람

그러나 애인은, 늘 맑은 우물
끝없는 추억이 거기에 솟고
끝없는 눈물이 거기에 괴고
끝없는 서정이 거기 비침에
(정숙자·시인)


+ 애인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어
꽃눈을 피워내는
간지러운 바람이었네

굳은 몸을 흔들어 깨워
연초록 사랑의 움을 밀어내는
젖은 바람이었네

소리 없이 스며들어
내 마음까지 칭칭 동여맨
질긴 밧줄이었네
(김윤호·시인)


+ 애인

보란 듯이 자꾸
길 헤맨다

이젠 지쳤다고
늘상 투정부린다

나는 당신의 애인 중
가장 못생긴 애인,

어쩌다 눈길 주시면
화르르 피어나다가

어쩌다 눈길 거두시면
눈물 뚝뚝 흘리는

타다만 촛불
오르다만 화살 기도

혼자서는
아무 것 하지 못한다

풀어놓고 가야할
사랑의 타래

갈수록
자꾸 얽혀만 간다

나는 당신의 애인 중
가장 철없는 애인
(홍수희·시인)


+ 넌 내 애인

밤이나 낯이나
짬나면
네 눈빛 바라보고 달래본 내 마음

네가 있어
행복이란 달콤한 그 맛을 알았지
네가 있어

때로는
세월의 가지 끝에 무슨 청승이야 하면서도
내 사랑 신의 은총이기에
무한대의 행복지수 비할 곳이 없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네가 있어
내 은밀한 마음 네게 쏟아 부어도 듣는 이 없어
내 비밀 모두를 판화로 쏟아본다

네가 있어 너에게
(하영순·시인)


+ 너의 애인

바라볼 수 있는 건
그 애의 입술
그 애의 가슴

하염없이 그냥
넋없이
바라볼 수 있는 건

그 애의 빨간 입술과
수줍은 가슴

바라볼 수 없는 건
그 애의 눈
그 애의 깊은 눈

어쩌다 한 번 보고 나서
괜히 나 혼자 술을 퍼마시게 하는
아름다운 눈
참 슬픈 눈

언제나 너만을 보고 있는
착한 그 눈.
(김영승·시인, 1959-)


+ 애인

누가 지금
문 밖에서 울고 있는가.
인적 뜸한 산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그대 꿈은
처음 만난 남자와
오누이처럼 늙어 한세상 동행하는 것
작고 소박한 꿈이었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세상의 길들은 끝이 없어
한번 엇갈리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
메마른 바위를 스쳐간
그대 고운 바람결
그대 울며 어디를 가고 있는가.

내 빈 가슴에 한 등 타오르는 추억만 걸어놓고
슬픈 날들과 기쁜 때를 지나서
어느 먼 산마을 보랏빛 저녁
외롭고 황홀한 불빛으로 켜지는가.
(장석주·시인, 1954-)


+ 백치애인

나에게는 백치애인이 있다
그 바보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별 볼일 없이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날까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 서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다방에서 다방 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 같은 애수의 눈물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또는 시장 속에서 행여 어떤 곳에서도
네가 나타날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서
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

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며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며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다.
바보애인아.
(신달자·시인, 1943-)


+ 옛 애인

거짓말처럼 그 사람을 만나기도 하네
이름은 기억하지만
얼굴은 생각나지 않던 사람이네
아니 얼굴은 기억하지만
이름이 영 낯설었던 사람이네
이 세상 모든 옛 애인의 기억은
읽다가 행간을 놓쳐도 좋을 주간지 같네
갑자기 혓바늘이 돋네
그래서 바보처럼 묻기도 하네
누구시더라
(강연호·시인, 1962-)


+ 애인

자명종은 내 사랑하는 애인입니다
어떤 애인을 그리도 밤마다
끌어안고 몸부림을 칠 수 있을까요
새벽마다 이십 여분을 끌어안고 몸부림을 치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자명종은 내
품안에서 떨어져 나가고 나는
주방으로 달려갑니다
예약해 놓은 전기밥솥을 확인하고
엊저녁 잠자리에서 머릿속에 그려놓은 아침 메뉴판을
떠올리며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을 챙기고 교복을 다리고
일곱 시가 되면 아이를 위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지요
내 애인도 내 품안에서 떠나야 할 날도 며칠 안 남았지요
왜냐고요?
수능시험이 이제 한 이십 여일 남았거든요
(권복례·시인)


+ 떠난 애인에게

네가 먼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시간
나는 강의실로 들어가고 있었어
잘 가, 잘 살아,라고
바닥에 뒹구는 잎새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숨겨 나는 말했어
하늘도 한 번 바라보았어
구름이 한두 뭉치 있지만 푸르더군

우린 화를 내다 여러 해의 그리움을 마감해 버렸어
신부가 바뀌었다고 생각지 않니?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물었어
들렸어
슬프게,
그래,라고 하는 네 마음

우린 매정한 체하느라고 애를 썼어
사실은 자신이 없어서였을 뿐인데
그게 효과가 있었지
충분히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거지
세상에 충분한 사랑이 있다는 것처럼
아주 거만했지

물론 돌이킬 순 없지
그냥 이렇게 말하는 거지
어제부터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우리에게 그 동안 배워온 세상 사는 기술이 있지
(배신하고 배신당한 일이 한두 번인가
살다 보면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는 거지)

그게 좋아
아무쪼록 우리 죽을 때까지 그 가면 뒤에 숨어 있자
맨 얼굴 내밀지 말자

나머지 삶도 살아야 하니
잘 가, 다시는
이승에서 부르지 않을 이름

살아가는 일이 견뎌내는 일이 될지라도
잘 가, 잘 살아,
우리 이렇게 살아 가
(양애경·교수 시인, 1956-)


+ 그대, 그리고 나

그대가
꽃잎이라면

나는
그대에게 내려앉아

산산이 부서지는
한줄기 햇살이고 싶어라.

이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아니,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의 파도 너머

영원히 변함없이
하나이고 싶은    

아름다운 연인(戀人)
그대, 그리고 나.  
(정연복·시인, 1957-)


+ 애인의 조건

제 애인이 될 조건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루 내내 키스하는 겁니다. 새벽에 시작해서 해거름녘에 단 한 번 숨을 돌리고 다시 푸른 새벽이 될 때까지 입을 맞추는 겁니다. 그럴 사람이 있다면 제가 당신 죽는 날, 그 하루 내내 당신 입술에 입을 맞추겠습니다. 당신이 세상에 내뱉은 마지막 호흡을 제가 삼켜 당신을 가슴에 묻고 그 호흡을 제 마지막 호흡으로 저 또한 당신과 한 호흡으로 죽겠습니다.    
(김하인·시인, 1962-)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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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볼 수 없는 건
그 애의 눈
그 애의 깊은 눈

어쩌다 한 번 보고 나서
괜히 나 혼자 술을 퍼마시게 하는
아름다운 눈
참 슬픈 눈

언제나 너만을 보고 있는
착한 그 눈.

(2011.04.21 21: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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