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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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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시 모음> 손광세의 '곱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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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시 모음> 손광세의 '곱셈' 외


+ 곱셈

365×1
365

365×10
3650

365×100
36500

100년
참 짧다.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윤동주·시인, 1917-1945)


+ 하루

하루 잘 살기란 힘들지요
하루는 하루살이의 전 생애지요
하루살이에게 시한부로 걸린 하루는 사실 하루가 아니지요
사랑하고 꿈꾸고 아이 낳고 투병까지 하는 사람들의 생애지요
삶의 시간은 배고팠지만
하루만 살고도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삶을 구걸하지 않는 하루살이
바둥거리지 않고 내리꽂히는 가파른 죽음을 보셨는지요
사람들에게는 없는 하루지요
(최문자·시인, 1941-)
  

+ 그랬다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김용택·시인, 1948-)


+ 지금 이 순간
            
햇볕이 유리창을 간질이고 있다
창밖엔 물오르는 초록,

아픈 기억이 있다면 놓아주어야겠다
놓아주는 일이 더 아프더라도
용서라는 말이 더 용서할 수 없을지라도

당장은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저 물살 빠른 시간에게 주어야겠다

마음을 찬찬히 비우고 보면
해가 뜨는 오늘이 잔칫날이다
(홍수희·시인)
  

+ 잠깐과 순간 사이

피라미
은빛 날개
퍼덕이며 솟구친다
태양이
눈을 찡긋 감고
침을 흘린다
개여울도 덩달아
혀를 날름거린다
이에 질세라
살여울도
급히 체위를 바꾼다
(반기룡·시인)


+ 견딜 수 없네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정현종·시인, 1939-)


+ 20분

아침 출근길에
붐비는 지하철
막히는 도로에서 짜증날 때
20분만 먼저 나섰어도.....
날마다 후회하지만
하루에 20분 앞당기는 일이
어디 그리 쉽던가요

가장 더운 여름날 저녁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과
사람에 쫓기는 자동차들이
노랗게 달궈놓은 길옆에 앉아
꽃 피는 모습 들여다보면

어스름 달빛에 찾아올
박각시나방 기다리며
봉오리 벙그는 데 17분
꽃잎 활짝 피는 데 3분

날마다 허비한 20분이
달맞이꽃에게는 한 생이었구나.
(고두현·시인, 1963-)


+ 가는 시간에게

아차,
실수를 용서하고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빌어도
한사코 뿌리치고 가는구나.
붙잡아 두고 볼 길은 영영 없는 것일까?
야속하게
눈물 속에서 보내야만 하는
그대
잘 가라!
두 손을 모으고
행복을 비는 수밖에 없구나.
(최성도·시인, 1949-)



+ 사랑의 황무지

아침 신문에서
느닷없이 마주친
얼굴, 영원히 젊은 그 얼굴을 보며
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끄덕
칼로 베인 듯 쓰라린 마음

오래 전 죽은 친구를 본 순간
기껏
졌다, 내가 졌다, 졌다, 는 생각
벼락처럼

그에겐 주어지지 않고 내게는 주어진 시간
졌다, 이토록 내가 비루해졌다

졌다, 시간에
나는 졌다.
(황인숙·시인, 1958-)


+ 김씨의 하루

아침부터 마을 앞 공원을 서성이며
휴대폰에 온 신경을 세운다
출근할 곳이 없어진 그날
전화기를 사고
이력서를 몇 군데 내고
마을 동산 공원이 가치가 새로웠다
그가 새로 알게 된 것은 시간의 두려움이다.
서성거리기가 이렇게 힘들고
시간을 보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비라도 오는 날이면
김씨의 하루는 더욱 힘들다.
다방에서 담배나 피우자니
이건 온통 하루의 생지옥이다.

김씨의 하루는 제일 무서운 게 바로 시간이다.
(정대호·시인, 1958-)


+ 반나잘 혹은 한나잘

내 어머니 집에 가면
새실 한약방에서 얻은 달력이 있지
그림은 없고 음력까지 크게 적힌 달력이 있지
그 달력에는
'반나잘' 혹은 '한나잘'이라고
삐뚤삐뚤 힘주어 기록되어 있지
빨강글씨라도 좀 쉬지 그려요
아직까정은 날품 팔만 헝게 쓰잘데기없는 소리 허덜 말어라
칠순 바라보는 어머니 집에 가면
반나절과 한나절의 일당보다도
더 무기력한 내가 벽에 걸릴 때가 있지
(박성우·시인, 1971-)


+ 하느님의 시간표

내가
하루 종일
한 말을
모아 간추리면
한두 마디로
줄일 수 있듯
오늘 내가 보낸 시간을
간추려 보며
허비한 시간만큼
당신을 잃었음을
마음 아파합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정확한 시계 바늘처럼
당신의 시간표대로
오늘을 사는 삶의 지혜를 주십시오.

순간의 지금은
영원과 무한을
이어주는 선(線)
모든 시간 속에
주인이신 당신은
항상
나를 기다리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하십시오.
(최민순·신부, 1912-1975)


+ 세월

한 올 한 올 느는
새치 속에
내 목숨의
끄트머리도 저만치 보이는가

더러 하루는 지루해도
한 달은, 일 년은
눈 깜짝할 새 흘러  

바람같이 멈출 수 없는
세월에게
내 청춘 돌려달라고
애원하지는 않으리

그래도 지나온 생 뒤돌아보면
후회의 그림자는 길어

이제 남은 날들은
알뜰살뜰 보내야 한다고

훌쩍 반 백년 넘어 살고서도
폭 익으려면 아직도 먼
이 얕은 생 깨우칠 수 있도록

세월아,
너의 매서운 채찍으로
섬광처럼 죽비처럼
나의 생 내리쳐다오
(정연복·시인, 1957-)


+ 행복한 시간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사고는 힘의 근원이 됩니다.

즐기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놀이는 변함없는 젊음의 비결입니다.

책 읽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독서는 지혜의 원천이 됩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역경을 당했을 때 도움이 됩니다.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생활에 향기를 더해 줍니다.

웃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웃음은 영혼의 음악입니다.
(앤 랜더스·미국 칼럼니스트, 1918-)


+ 한평생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득음이 있었고 지음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이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두 좋은 일은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년 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
(반칠환·시인, 196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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