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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관한 시 모음> 유안진의 '들꽃 언덕에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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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관한 시 모음> 유안진의 '들꽃 언덕에서' 외

+ 들꽃 언덕에서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유안진·시인, 1941-)


+ 기둥과 언덕

만원 전철 안에서는
혼자의 힘만으로는 서 있을 수 없다
내 옆사람 또 옆사람들이
기둥이 되어 줄 때
나도 하나의 기둥으로 설 수 있다

어찌 전철 안에서뿐이랴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내 이웃 또 이웃들이
보이지 않는 언덕이 되어 줄 때
나도 하나의 언덕으로 설 수 있다
(윤수천·아동문학가, 1942-)        


+ 일상의 언덕에서

일상의 언덕에서
한 사람이 민감하게 깨어 있음으로 하여
많은 이를 유익하게 할 수 있듯이,
한 사람이 부주의하거나 깨어 있지 못함으로
많은 이들을 불행하게 할 수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언덕
    
구름도 오고
나비도 오고

구름도 가고
나비도 가고.
(정숙자·시인)


+ 언덕에서
    
병에 담아온 커피를
시냇물 언덕에서 따라 마신다

그대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가 저물도록 앉아 있어도
물 속에는 나 혼자 흔들거릴 뿐,
지워지며 지워지며 흘러내릴 뿐
(정숙자·시인)


+ 언덕

심심할 때면 날 저무는 언덕에 올라
어두워 오는 하늘을 향해 나발을 불었다.

발 밑에는 자옥한 안개 속에
학교의 지붕이 내려다보이고,
동네 앞에 서 있는 고목 위엔
저녁 까치들이 짖고 있었다.

저녁별이 하나 둘 늘어 갈 때면,
우리들은 나발을 어깨에 메고,
휘파람 불며 언덕을 내려왔다.

등뒤엔 컴컴한 떡갈나무 수풀에 바람이 울고,
길가에 싹트는 어린 풀들이 밤이슬에 젖어 있었다.
(김광균·시인, 1914-1993)


+ 정든 땅 언덕 위에

시로서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시로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시로서
집을 짓고 시로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시가 햇빛이 되고 불빛이 되고
시가 고향이 되고 나라가 되고
시로서 따뜻하고 시로서
사람들이 행복한 곳
정든 땅 언덕 위에
시 같은 피 시 같은 땀
씨뿌릴 수 있을까
시 같은 인생 시 같은 일생
거둘 수 있을까
정든 땅 언덕 위에
시의 세상
시의 나라
시의 집을 짓고.
(천양희·시인, 1942-)


+ 언덕에 봄이 오면

고향 언덕에 봄이 오면
그리운 추억 익는 소리
선아! 숙아! 자야!

우리 옛날처럼 어깨동무하자
보리밥 도시락 바구니에 담고
강 건너 산아래 언덕을 타고

쑥 나물 캐다 말고
사랑 노래 부르던
냇물 따라 속삭이는
봄의 교향악 찾아

우리 언제 한번 다시 만나자
그때 피었던 연분홍 진달래
수줍게 피었던 어린 냉이 꽃

계곡에서 불던 바람
양지에서 꽃 피우던
파릇한 봄나물 뜯어

한 바구니 가득 담아나 보자
세월 꽃 한아름 채워나 보자
그리움이 멀리 떠나기 전에
(김옥자·시인)


+ 높고 낮은 언덕

복사꽃 피어있던 향기롭던 동산에
열매를 맺느라고 분주했던 시간들
어쩌면 너를 잘 키울 수 있으려나

이 궁리 저 궁리 숨가쁘게 뛰어서
높은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니
세상을 다 얻은 듯 힘이 솟구치고    
자신감이 넘치던 지난 사십대  

세월을 등에 업고 내려오는 길목에
굽이굽이 서툴게 새겨놓은 시절이      
지천에 접어드니 부끄럽기 그지없어

크고 작은 언덕이 한눈에 들어오네
이대로 한 십년 더 내려가면
언덕 너머 저쪽 높고 낮은 인생
과거도 미래도 훤히 볼 수 있으려나
(김옥자·시인)


+ 고향 언덕

유년의 언덕 오르면
저녁 연기 모락모락
초가집이 나를 반긴다
퉁가리는 고요한 강물
힘껏 휘저어 놓는다

저녁 어스름에
물안개 오락가락한다
치매 걸린
샘터 늙은 정자나무
나를 몰라본다

하얀 저고리 까만 치마
큰 눈망울 순이에게
부끄러워하지 못한
그 말

오늘
울고 싶은
그리움이다
(김종익·시인)


+ 사랑의 언덕

말라도 꼿꼿했던 등이
가족 업고 뛰느라
세월의 흔적으로 굽은 등

부러질 듯 강한 사람
고통을 논문으로 써내고
한잔 술로 달래던 그
눈물 없어 힘든 줄 몰랐네

고단하고 아팠던 지난날
따스한 물 속에 불려서
양파 속 알갱이만 남기듯
한 켜씩 벗어내고픈 마음

속내 감추고 웃으며
고마움 얹은 손
동글동글 미는 당신의 등
언제나 든든한 언덕
(배시연·재미 시인)


+ 언덕에서

바람이 가리키는
언덕에 올라보니

화사한 목련화는
어디로 사라지고

무덤가 한가운데엔
할미꽃만 무성하네
(반기룡·시인)


+ 내가 꿈꾸는 언덕

새들이 햇빛처럼 조잘대는 푸른 언덕
평등한 사람끼리 어깨 마주하며
따뜻한 생의 언덕에 모여 살았으면 좋겠네
서로 미워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가슴에 뚫려 있는 구멍을
제 가슴으로 막아주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 모여
메마른 나무들 꽃피웠으면 좋겠네
그 곳엔 가난한 사람도 없고
불쌍한 짐승도  
몸 아픈 생명도 없었으면 좋겠네
욕심 없이 텃밭 일구며
사랑하는 사람과 일가를 이루어
앵두 같은 아이들 낳아 기르면 좋겠네
복사꽃 분홍빛 웃음 피어올리면
꿀벌과 나비들 꽃잎과 어우러져
사람과 함께  한 하늘  되어 춤추는 곳
사철 사랑으로 푸른 향기 가득한
마음 따뜻한  언덕에 살고 싶네
(전정아·시인, 1973-)


+ 언덕 위의 교회
  
빨간 양철 지붕을 덮고
종각이 서 있고
그 종각 위엔
하얀 십자가가 서 있었다.

종치기 할아버지는
새벽잠이 없어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서
종을 친다.

새벽 종소리가 나기를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그 종소리가 멎기도 전에
집을 나서
언덕 위의 교회로 가시고
나는 천로역정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새벽 통성기도 소리는
추리 집까지 들려왔다.
늙으신 평안도 목사님은
사투리로 기도를 드린다.

이 잠자고 있는 나라 백성들을
주여! 흔들어 깨워 주십시오.
죽음의 잠에서
눈뜨게 하여 주십시오.
목사님의 음성은
언제나 떨리고 있었다.

새벽의 기도가 끝나고
교회 언덕을 내려오시는
어머님의 반백 머리 위에
아침 햇살이
조용히 내려와
앉아 있었다.
(황금찬·시인, 1918-)


+ 언덕을 넘으면

그래, 저 언덕을 넘으면 별이 보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애들아 그래,
숲을 지나면 언덕으로 가는 길이라도 만나겠지
개울을 건너면 돌부리도 낮아지겠지

그러나 애들아 쉽게 돌아서서는 안돼
멀리 보이는 큰 나무 밑에 쉴 곳은 있고
저 산모퉁이 돌면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그래 움막이라도 있겠지
젖은 옷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떠는
웅성거리며 모여있는 사람들 틈을 지나면
언덕으로 가는 넓고 큰 길이 나 있겠지

그래, 동굴을 벗어나면 별이 보이겠지
동굴이 끝없다고 말하지 마라
저 언덕을 넘으면 별이 크게 보이겠지
쇄골 끝을 통증으로 이끌던 치주염도
씻은듯이 낫겠지 더운 여름의 끝
언덕에 올라서서 기다려도
별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애들아
언덕을 넘으면 또 언덕이 있고
낮아진 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애들아,
(강영환·시인, 1951-)


+ 해방촌, 나의 언덕길

이 길에선 모든 게 기울어져 있다
정일학원의 긴 담벼락도 그 옆에 세워진 차들도
전신주도 오토바이도 마을버스도
길가에 나앉은 툇돌들도 그 위의 신발짝들도
기울어져 있다
수거되기를 기다리는 쓰레기 봉투들도
그 위에 떨어지는 빗줄기도
가내공장도 거기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도
무엇보다도 길 자신이
가장 기울어져 있다.

이 길을 걸어 올라갈 때면 몸이 앞으로 기울고
내려올 때면 뒤로 기운다.
이름도 없고 번호도 없는
애칭도 별명도 없는
서울역으로 가는 남영동으로 가는
이태원으로 가는 남산 순환도로로 가는
그 외 어디로도 가고 어디에서든 오는
급, 경사길.
(황인숙·시인, 1958-)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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