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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관한 시 모음> 최승자의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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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관한 시 모음> 최승자의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외  

+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아직 불기가 남아 있는지
그대의 아궁이와 굴뚝에
아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지

잡탕 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
나의 사랑 한 사발을 들고서,
그대 아직 연명하고 계신지
그대 문간을 조심히 두드려봅니다.
(최승자·시인, 1952-)


+ 맑은 영혼
  
비가 이렇게 밤을 새워 내리면
<하늘문 묘소>에 <베드로>란 이름으로 묻히신 아빠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집생각 나실까?
걱정된다며 울먹이던 여대생, 맑은 영혼아.
(나태주·시인, 1945-)


+ 어린 왕자를 위하여

잠시 다니러 온 지구 여행을 마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멋있게 작별할 줄
알았던
어린 왕자의 그 순결한 영혼과
책임성 있는 결단력을 사랑합니다
사라져도 슬프지 않은
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사랑으로 길들이며
사랑 속에 살아야겠지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나의 영혼

한 잎 낙엽이듯
훌훌 털고 떠나는
우리네 이웃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백색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
파아란 하늘가
떠가는 구름
당신은 나의 영혼입니다
(한문수·시인, 서울 출생)


+ 깨끗한 영혼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속에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 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이성선·시인, 1941-2001)


+ 영혼은 21그램

베어진 풀더미 쌓여 있는 걸
풍겨 오는 냄새로 먼저 안다

풀의 영혼이 승천하는가 보다

사람이 죽으면 21그램이 가벼워지는데
빠져나간 영혼 때문이란다

생을 짓누르는 무게가
겨우 21그램이라니,

비닐끈으로 염한 마른 풀더미 옆에서
친구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허공의 몸에서도 영혼이 떠나가는지
발등으로 긴 날개털 하나 떨어진다
(이정란·시인, 1959-)


+ 영혼의 내 낡은 장막

내가 나를 알 수 없어
홀로 방황하는.

안에 활활 타오르는
언제나의 이 갈증.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방황과 그 포기.

영혼의 내 낡은 장막
홀로 펄럭이는.

훌훌 벗고 당신 앞에
울고 싶어라.
(박두진·시인, 1916-1998)


+ 영혼과 육신

혼인한 한 쌍의 부부처럼

서로 간에 연(緣)이 닿아
이승에 살림을 꾸려

너 없으면 나 없고
나 없으면 너 없다며

영혼이 목마르면
육신이 몸살을 앓고  
육신이 아파하면
영혼도 고통을 느끼면서

한 세상 하나 되어
지지고 볶으며 붙어살다가

그 둘의 살림집에
불기 가시고 냉기가 돌 때

그 어느 날
영혼이 외출하고 나면
때맞춰 육신은 본향인 흙으로 가고
영혼은 영원히 자유가 된다
(김기상·시인)


+ 영혼의 울림

가야 고분
그 묏등에 올랐다.
비로소 세상이
보인다.

허무의 바람이나,
지친 육괴,
썩지 않은 뼈다귀들의 아우성이
보인다.

귀를 기울이면
웅웅웅웅
내면 깊숙이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울림.

다 헛되다

헛되다
한다.
(김영천·시인, 1948-)
* 육괴: 고깃덩어리, 살덩어리


+ 영혼이 다니는 길

내가 걸어가는
이 산 오솔길
영혼이 쉬어 가며
이승에서 저승 가는 길

군데군데 묘들이
터 잡고 앉아
사시사철 들꽃 보며
자연의 소리 듣고 있다

후손들 다녀가며
문패처럼 꽂아 놓은
묘 입구 빈 막걸리 통
바람이 들어가 휘파람 분다

나도 무덤 가 앉아
그들처럼 숨죽이고
새, 바람. 물소리 들으며
흙이 되어 하늘을 느껴본다
(김내식·시인, 경북 영주 출생)


+ 영혼에 대하여

1
순수한 영혼과 타락한 현실간의 대립이
환멸, 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것이 뭐가 환멸이야? 자랑이지.
타락한 영혼과 순수한 현실, 의 대립, 이야말로,

하긴 순수한 영혼아, 네가 어찌 환멸을 알겠니?

2
영혼이라는 게 몸 안에서
불덩이처럼 굴러다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멀미가 난다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아, 영혼이든 뭐든.

나는 영혼이
나뭇가지를 샅샅이 훑고 다니는
바람이라면 좋겠다.
(황인숙·시인, 1958-)


+ 영혼에게

너를 만지고 싶다.
향기 없는 너를 안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모르는 어느 별을 건너
아득한 세상 너머에 몸을 두고
마음만 데리고 왔는지
궁금하구나!

나도 이 땅에서 실족하여
네가 사는 마을의 별로 떨어져
함께 어둠을 향유하고 싶어
너에게 손을 내민다.

돌부리에 채이고
폭풍을 맞을지라도
너를 내 중심에 두고 싶다.
땀 냄새 가득한 노동의
고통도 담담히 껴안으며
너를 보듬어 느끼고 싶다.
(장순금·시인)


+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프랑스 시인 랭보는 말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그렇다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그 상처가 우박 맞은 담뱃잎처럼
송송 구멍 뚫린 채 덩그러니 누워 있으면
더욱 깊은 상처로 명함을 내밀게 되리라
그 영혼의 상처 한 올 한 올 꿰매고
다듬고 마름질하여
거울처럼 맑은 영혼으로 만들어야 하리라

상처마다 영광과 좌절이 있고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갖고
생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또 굴리는
윤회의 저 꾸부정한 소리
(반기룡·시인)


+ 영혼의 고요한 밤      

고요한 가을밤에는
들리는 소리도 많다.
내 영혼의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스치는……

고요한 가을밤에는
들리는 소리도 많다.
내 육신의 높은 언덕 그 위에 서서
얄리얄리 보리 피리 불어주던……

고요한 가을밤에는
들리는 소리도 많다.
누구의 감는 갈피엔가
뉘우치며 되새기며 단풍잎 접어 넣는……

고요한 가을밤에는
들리는 소리도 많다.
낙엽보다 쓸쓸한 쓰르라미 울음소리
내 메마른 영혼의 가지에 붙어 우는……

고요한 가을밤에는
들리는 소리도 많다.
책상 위에 고요히 턱을 고이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어 버린 다 읽어 버린……
(김현승·시인, 1913-1975)


+ 길을 찾는 영혼

그것은
순수한 명상으로 잔잔해진
신성한 연못이다

그러면서도
열망으로 가득 찬 불덩이가 아닌
차라리 푸른 불꽃

열정과 갈증 사이를 오가며
여러 차이와 경계를 허물고
어둔 길을 어둡게 두지 않을 빛

비록 타고난 방황처럼
발걸음 어지러이 느껴질 때조차
캄캄한 어둠을 비추는 것이다

그러한 방랑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거룩하고 숙명적인 사색의 본능이니

사실, 길을 찾지 않는 영혼은 없다
(정유찬·시인, 1967-)


+ 영혼의 벗들에게

에밀 싱클레어 막스 데미안 에바부인
장발장과 고제트와 마리우스
어두웠던 유년
내가 다니는 길목을 밝혀 주던
영혼의 벗들에게

깨야 할 세상 껍질은 단단하다
내 부리는 무디고 날개는 부러지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그대들의 신 나의 신 아프락사스는
언제나 먼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국의 남자들은 나를 부른다

바다 밑보다 인간의 내면은 진귀하고
알은 세상이다
껍질을 깨고 나오라
아프락시스에게 날아가라 날아가라
나를 유혹한다
(김설야·시인, 경북영양 출생)


+ 영혼의 열정
    
보이지 아니하는 것
만지지 못하는 것
느끼지 못하는 것
들려지지 아니하는 것
이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번뇌케 하고

천지 창조
땅의 생명
천상의 영감
전능자의 말씀
이런 것들이 사람의 영혼을 새롭게 한다

영혼을 새롭게 하는
영혼의 열정은 믿음으로부터 온다
(함영숙·시인, 미국 거주)


+ 영혼의 사리
  
눈물이 얼마나 단단한 강철인가
아는 이는
죽음이 얼마나 편안한 꿈인가를
알 수 있으리

온 길을 되짚어 가는 일도
때로는 절벽 어둠의 길
평정의 봉긋한 봉분을 짓고
대지를 한 벌의 수의로 삼아

갈대들이 흔드는 발마소리
강을 건너 억새밭을 오르는
달도 이울어 밤이 오면
고요로운 휴식의 품으로

꺼이꺼이
되돌아갈 일이네
이 청정한 가을날
눈물 같은 하늘 아래.
(홍해리·시인, 1942-)


+ 시는 영혼의 자연이어서

시를 쓰시려 하십니까.
시인으로 살려하십니까.

시인의 영혼은 큰 자연을 살아가는
고독한 겸손이옵니다

눈물도 자연이요, 슬픔도 자연이요,
사랑도 자연이요, 실연도 자연이요,
만남과 이별도 자연.

깨달음도 허망으로, 믿음도 허공으로,
큰 자연의 바람이옵니다

자연 속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닦으며 닦으며
투명한 영혼을 살아가는 큰 자연이옵니다.
(조병화·시인, 1921-2003)


+ 내 영혼을 벗어들고서
  
뒤집어 입을 수도 없고
갈아입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기도와 회개에 넣어
깨끗하게 빨아 입을 수야 있겠지요
다림질을 하여도 펴지질 않고
퍼클로클리닝을 하여도 제멋대로입니다
오직
철로 같은 고독 속에서
레일을 타는 새마을호 기차의
바퀴에 닳고
하얗게 거품 물고 돌진해 오는
거센 세속의 파도에 닳아
더 이상 꿰맬 수도 없고
메꿔넣을 실밥마저 모두 바닥이 났을 때
비로소
정갈하게 매무새를 다듬고
백지를 채워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상아·시인, 1962-)


+ 영혼의 눈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 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 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냄새와 물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허형만·시인, 194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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