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새글

05월 15일 (수)

안녕하세요

좋은글

목록

<십자가에 관한 시 모음> 윤동주의 '십자가' 외

도토리 조회 2,535 댓글 0
이전글
다음글


<십자가에 관한 시 모음> 윤동주의 '십자가' 외

+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시인, 1917-1945)
  

+ 나무 십자가

언덕 위에 하늘 향한
나무 십자가

때묻고 찌든 가슴
하얗게 씻어 줍니다

이른 봄 쌀쌀할 때
뒷동산 양지바른 곳에
올라가신 우리 엄마

학교에서 돌아올 때
엄마 보고 싶어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으면
글썽이던 내 눈물 씻어 줍니다

언덕 위에
하얀 십자가는
외로울 땐 나의 친구

학교 갈 땐
따듯한 도시락 넣어주는
엄마입니다.
(이경덕·아동문학가)


+ 나무 십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듯
기도 없이도
나무 십자가
따스하다
(박순옥·시인, 강원도 강릉 출생)


+ 십자가의 길

황사가 담벽을 돌아가는
작은 어촌 앞마당
대나무에 꽂힌 채
깃발로 변한 오징어
골고다 십자가
주님의 아픔을 닮았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보고 읽고 들어도
욕심의 저울 위에 올리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부족한 믿음
넓은 길 걸어가는
죄인임을 고백하며
욕심에 젖은 입술 깨물어 본다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늘 쫓기는 듯한 마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던
그분을 떠올리며
어촌 앞마당 대나무에 꽂힌 오징어처럼
십자가의 길 침묵으로 걷고 싶다
(김귀녀·시인, 1947-)


+ 십자가의 두 면      

주님, 저희에게
다시 웃는 법을
가르치소서.
그러나 하나님,
저희로 저희 울음을
잊지 말게 하소서.
(빌 윌슨·미국 목사)


+ 주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는 무엇을 져야 하겠습니까?

주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나는 무엇을 써야 하겠습니까?

주께서 나를 돌보셨습니다.
나는 누구를 돌보아야 하겠습니까?

주께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내가 감히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로렌스 하우스먼·영국 시인)


+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초월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모든 걸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영원히 당신 것이 되었습니다.
(작자 미상)


+ 십자가의 길

내가 나를
업고 가는 길입니다
내가 나를
참아주며 걸어가는 길입니다
끊임없이
내가 나를 실망시킬 때에
나에게는 내가
가장 큰 절망이 될 때에
내가 나를 사랑함이
미워하는 것보다 어려울 때에
괜찮다
토닥이며 가는 길입니다
위로하며
화해하며 가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밖에 서 있지 않고
십자가는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휘청이며 넘어지며
깨닫는 그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
내가 나를 만나는 길입니다  
(홍수희·시인)


+ 십자가 아래서
                              
고독과 고통을 음미하라!
아주 천천히

그리하여 그곳에서
마침내 단맛이 나게 하라!

그때 비로소,
고독은 기도가 되고
고통은 은총이 되리라!
(홍수희·시인)


+ 그 십자가


골고다의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이
뼈가 저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피며
물이며
다 쏟아 내시며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늘도
땅도
빛들조차도 부끄러워
숨어 버리다

그 십자가
그 십자가
(임종호·목사 시인)
  

+ 붉은 십자가

나는 울고 있는데
나는 울고 있는데
당신도 울고 있군요
    
나는 웃고 있는데
당신을 잊은 듯 웃고 있는데
당신은 울고 있군요
    
몰랐습니다
나 때문에 울고 있는 당신을  
붉은 십자가엔 온통 눈물뿐이라는 것을
    
나는 울고 있는데
당신을 잊은 듯 울고 있는데
붉은 십자가엔 온통 눈물뿐이군요
당신도 울고 있었군요
(이선명·시인, 1978-)


+ 십자가를 만든 목수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나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만든 목수입니다

그 동안도 나는 내가 만든
십자가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슬퍼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죄인이라 해도
처참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괴로워했습니다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나의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만든 목수입니다

이번에도 나는 죄인들이 달릴
십자가를 만드는 줄 알았습니다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내가 만든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시다니요

주님은 목수 유명한 목수
주님이 만드신 멍에는 가볍다고 소문이 났는데
나는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
나는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내가 만든 십자가에
주님이 달리시다니요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십자가 위에

어떤 이는 십자가 위에
제 이름 석자 새겨놓고
어떤 이는 십자가 위에
제 자랑 늘어놓고

어떤 이는 십자가 위에
학위 가운 걸어놓고
어떤 이는 십자가 위에
자기 고난 걸어놓았네

그러나 그대들은 십자가에
오직 예수의 공로만 걸라
그 밖의 것은 모두 그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도한호·시인, 1939-)


+ 나무 십자가
  
십자가의 예수의 상은 떠나고
나무만 벽에 걸려 있다
어디를 간 것일까

형태를 섬기고
뜻을 팽개쳐 놓은 것을
아시고 숨으신 것일까

아예 겉모습에 숨겨진
환유를 말하기 위함일까

지고 가던 십자가를 버리고
다시 지실 짐과 사람을 위해
어두운 골목길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집나간 민무늬 나무 십자가.
(정재영·치과의사 시인)
  

+ 십자가

저물던 조선 하늘에
십자가 처음 달렸더니
백년 세월 붉은 십자가
서울하늘이 못자리다.

하늘 사람이 달려 죽어
쳐다보는 자마다
하늘 사람이 된다더니
수효가 너무 많아
효능이 의심되고

울긋불긋 네온사인
주점 빛깔 흡사하여
세속과 혼합된
복음의 상업화 부끄럽네.

숭고한 십자가는
죽어야 사는 진리의 웅변
지고 가라는 당부 외면한 채
매달아 놓고 사람을 모으는
십자가 없는 십자가여!
본질은 사라진 껍데기여!
(박인걸·목사 시인)


+ 화려한 십자가
    
동네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예배당도 네 군데나 새로 문을 열었다
아파트로 솟아오른 십자가의 불빛은
밤을 지켜 새벽이면 빈혈이 깊어가도
그야 어떠랴, 아름다운 일이다
요즘 세상에서 유행하는 말로
기죽지 마, 기죽지 말라고
소리소리 저렇게 자지러지면서도
하늘에 먼저 가서 닿으려는 발돋움
그야 어떠랴, 어여쁜 일이다
다만 이것만은 걱정이다
외롭던 성자의 피에 젖던 고난이
오늘은 애드벌룬처럼 떠 있어도 되는지
유명 메이커의 상표 속에서
저토록 헤픈 눈짓으로 손을 까불어도 되는지
화려한 십자가가
죄짐보다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새벽
기죽지 마, 기죽지 마,
나는 얼토당토않게
기죽지 않을 것만 결심하였다
(이향아·시인, 1938-)


+ 붉은 십자가의 묘지

어두운 경인 고속도로 달려가면
먼 데 벌판 가득히 빛나는
교회 첨탑 위의 붉은 십자가
차 안의 사람들 반은 졸고
반쯤 죽은 사람들 얼굴 위에
무덤처럼 즐비하게 떠오르는
붉은 십자가의 교회
어딘가 제 정처를 향해
달려가는 버스 양편 어둠에서
일정하게 다가와 이내 스쳐가는
저 빈혈의 가등 사이로
쇠사슬과도 같이 버스와 나를 끌고
세상이란 거대한 묘지를 향해
달려가는 붉은 십자가의 무덤
(김경민·시인, 1954-)


+ 십자가

언젠가
펌프질 우물이 메워졌는지 알고 있는가.
나무곳간 바깥 벽 소나무 기둥
못에 걸려 비스듬한
물지게 죄 삭아버렸다.

양팔에 달았던 갈고리 손도
도망가 버렸다, 물지게
골 깊은 등허리에 지고
물통을 매달고 십자가 되어 걷던 사람.

흔들리던 물통은 길가에
물을 뿌리던 기구였다.
십자가 되어 함께 걷던 그가
지난봄에 죽은 걸 알고 있는가.

슬쩍 스치기만 해도
두 동강나 떨어질
뼈만 앙상히 발린 물지게
앉은뱅이.

남의 몸을 빌려 일어나 걸어온
죽은 소나무 귀신.

겨울 아침마다 보리밭 이랑으로
뒤뚱뒤뚱 걸어가던 십자가.
간신히 수평을 잡고 걸어가던
똥통을 매달았던 십자가.
(이윤학·시인, 1965-)


+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골고다 걷고 있는 발자국마다의 고통.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으로
또렷한 발자국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언제나 힘겹게 느껴왔던 우리들의 발자국은
시험삼아 몇 발자국을 걸어본 것처럼
아직은 낯선 새벽이다.
악몽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공포로 얼룩진
우리들의 삶일지라도 우리들은 신에 대한
분노로 일그러진 우리들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기도하며 살자. 어디선가
우리들의 발자국을 지키고 계실 그분을 위해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
언젠가 또렷한 발자국 없이, 일그러진 발자국을 남기며
우리들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지라도
어떤 모습일지 모를 마지막 발자국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걸어야 한다.
바쁘게 흐르는 시계의 초점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죽음을 거부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보다 나답게 살기를 바라온 삶이었지만
언제나 안타깝게 돌아봐지는 우리들의 발자국.
아픈 삶일지라도 이제는 걸어야 함을 알고 있다.
(이용채·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게시글을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뒤로 목록 로그인 PC버전 위로

© https://feel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