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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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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시 모음> 유응교의 '정월 대보름 풍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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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 시 모음> 유응교의 '정월 대보름 풍경' 외

+ 정월 대보름 풍경
  
흥겨운 풍물놀이 패가
집집이 찾아다니며
지신밟기를 하고
오곡으로 찰밥을 지어
소쿠리에 담아내면
나는 으레 이웃집으로
희덕거리며
찰밥을 얻으러
쏜살같이 내달렸다.

대보름 전날은
상자일(上子日이)이라
쥐불놀이를 하였으니
빈깡통에 바람구멍을 송송 뚫어
쇠줄로 묶어 들고
숯불을 담아 빙글빙글 돌리며
논두렁으로 내달렸다.
쥐를 잡고 벌레를 죽여
마른풀이 재가 되어 거름이 되게 하면
풍년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무병장수를 빌며 부럼을 깨물고
귀밝이술로 청주 한 잔을 억지로 마시고
살찌라고 두부를 먹은 뒤에
친구 이름 불러내어
더위를 파는 맛은 고소했다

해가 뉘엿뉘엿 할 무렵
생솔가지와 대나무를 잘라내어
논바닥에 달집을 지어 놓고
연을 높이 매단 후에
한해의 모든 액을 거두어 가게하고
달이 동산에 휘영청 뜨기를 기다려
불을 질러 꼬실라 대니
온 동네가 불꽃으로 휘황하고
대나무 튀는 소리가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였다.

어른들은
새끼를 꼬아
암줄과 숫줄을 만들어
길게 용처럼 늘어놓고
윗 뜸과 아랫 뜸끼리 줄다리기를 하여
이기는 쪽이 풍년이 든다 하였으니
벌겋게 상기된 얼굴마다
힘줄이 솟아오를 즈음
나는 잘 익은 농주를 가지러
집으로 내달렸다.
그 허연 고샅길에
슬쩍슬쩍 마시던 술에 취하여
버얼건 얼굴로
비틀거리며 달집을 돌고 돌았다.

그때 소원을
제대로 빌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던 걸음을
지금까지 계속하는 것이었다.
(유응교·건축가 시인)


+ 정월 대보름

보름날이라 밝기도 하구나.
요사이 아이들은
부름을 깨물기보다는 마이신주사를 맞고
달집불꽃놀이보다는 딱총불꽃놀이를 더 하고
윷놀이보다는 전자오락게임을
오곡찰밥보다는 선물용 케이크를 더 즐긴다.
(구자운·시인, 1926-1972)


+ 대보름 달을 보며

떳떳한 마음으로 소망을 외고 빕니다
가슴을 채우고 남은 여백이 선선하고
내놓아 부끄럽지 않은 속살이 떠오릅니다.
  
대보름 달을 보며 달에게 물어봅니다
거짓과 위선이 얼마나 우울한지
빛나고 눈부시지 않은 대답이 들려옵니다.
(강세화·시인, 1951-)


+ 정월 대보름 달
  
지난 해 찾아왔다
말없이 떠나버린

대보름 둥근 달이
올해도 높이 떴네

그 모습
변함없음에
님 본듯이 반갑네
(오정방·재미 시인, 1941-)


+ 대보름달
    
아파트 베란다에 보름달이 찾아왔다
들판과 바람 속을 거슬러 오느라
달이 창백하다
달이 어색하다
보름달은 피고처럼 떠 있다
  
세상의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
만민의 소원이 밀물 같아서
얼굴을 붉히고 귀를 막았는지
눈치를 보면서 덩그렇게 떠 있다

다 안다, 걱정하지 말거라
동네 개들은 짖지 말거라
오늘밤은 다만 대보름달을
넋 놓고 오래오래
바라만 보련다
당신이신가
달이신가
대보름달이신가
미안해서 미안해서
올려다만 보련다
(이향아·시인, 1938-)


+ 정월 대보름

눈 내리지 않는 겨울
추위를 붙잡고
쇠똥에 불붙여
들불의 축제를 준비한다

찢긴 깡통 사이
마지막 살아 있는
빨 - 간
숯불 하나
손에 들고

자꾸 자꾸
불어 봐도
따스한 그리움
파묻히고 싶은 품속

전설처럼
아름다운
내 고향 보이지 않는다
달은 밝은데
(노태웅·시인, )


+ 정월 대보름

한 해 처음 시작하는 정월 세시풍속 맞이하여
오곡밥에 아홉 가지 나물 반찬 아홉 번 먹고서
초저녁 떠오르는 달 보며 소원 빌고 기원하는 날

비타민 무기질 미네랄 성분 영양소마저도 풍부한
지난 가을날 햇볕에 미리 말려둔 묵은 나물 진채로
귀밝이술 한잔 마셔 귀에다 상승 기운 생기 불어넣던
겨우내 부족했던 식이섬유 섭취 식욕 입맛 돋우던 추억

액막이연 높이 날려 연줄 끊어 액운 저 멀리 날려버린 채
늘 조심스레 경건함 삼가하고 배려하는 마음 더 가득해지도록
지신밟기 풍물놀이 쥐불놀이 줄다리기 뒤 달집 태우던 전통 풍습
(손병흥·시인)


+ 정월 대보름 달집놀이

정월 대보름
달집을 태우며 소원 빌어
이루지 못한 염원을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하며
재물 얻고 다복하게 수명장수 하길

옛 선조로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나에게로
이어 오는 소박하고 맑은 염원

연약한 인간이
하늘 밝히는 장대한 달에게
달집 태워 소원 비는 소박한 정

그 정 때문에
모든 국민이 가난해도 청순하고
가정 화목하고 나라가 화평하여 융성했다.

징과 꽹과리
북과 장고소리
우리 조상의 소리요 우리의 소리이다.
(박태강·시인, 1941-)


+ 정월 대보름 달집살이

휘영청 달 밝은 밤
강가에 세워둔 솔잎
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징소리 장구소리 꽹과리의
어울림에
거리의 불빛은 강물 위로 내려온다.

치렁치렁 엮어 놓은 푸른 솔가지에
한 해의 하얀 소망
문어발 되어 허공 끝에 나부낀다.

활활 타오르는
저 불길로 겨울 내내 쌓인
산 같은 그리움
산 같은 아픔의 서러움
타오르는 불 속에 함께 태워 버리자

오늘밤 연기 되고 재가 되어
하늘로 바다로 멀리멀리 사라지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살라 버리자

한 해의 액운을 물리치고
소원을 비는 저 타오르는 솔가지에
이미 꺾어진 꽃으로 살아가는
내 마음도 함께 태워 버리자

강물이 웃고
하늘이 웃고
땅이 비웃더라도 그리움에 젖고
아픔에 젖어 꺾어진 지난 세월
춤추는 저 불 길속으로 던져버리자

이글이글거리는
저 불길 속으로 산 같은 그리움
산더미 같은 서러움 살라 버리자
(자수정·시인, 1960-)


+ 아버지의 지등(紙燈)

측간도 쓸고 뒤안도 쓸고
외양간도 쳐내고
휘영청 달 밝은 정월 대보름
아버지는 지등을 달았다
달빛이야 저 먼저 밝았어도
달빛이야 저 혼자 밝았어도
불빛마다 고여오는 당신의 사랑
밤마다 혼자 안고 뒹굴다
밤마다 사립 열고 먼길을 가다
아버지는 지등을 달았다
그것이 눈물인 줄을 모르고
그것이 사랑인 줄을 모르고
한밤내 지등에다 기름을 부었다
(정군수·시인, 1945-)

+ 정월 대보름

천지인(天地人)
신과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를 계획하고 길흉을 점쳐보는
정월 대보름 달이 만삭의 몸이로다

지신(地神)밟기로
못된 잡귀들아, 물러서거라
이명주(耳明酒) 귀밝이술로 귀가 밝아지고
부럼 깨기로 부스럼이 나지 말고
동무들아 내 더위 사가거라

가가호호(家家戶戶) 오곡밥에 아홉 가지 나물
아홉 번 얻어먹고
무병장수(無病長壽)하니

달집 태우며 이루고자 하는 소원
운수대통(運輸大通) 만사형통(萬事亨通)을
정월 대보름 달님께 빌어본다
(美風 김영국·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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