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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시 모음> 정성수의 '우주의 책'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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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시 모음> 정성수의 '우주의 책' 외

+ 우주의 책

지구 위에서 날마다
우주의 책을 펼치지

넘기고 넘겨도 다시 남고
읽고 읽어도 다시 처음

한평생 나는
무엇을 읽었는가

마침내 나는
보이지 않는 신의 그림자를 보았는가

내 앞에 놓인 책 한 권 다 읽지 못하고
책 읽는 나조차 다 읽어내지 못하고

어리석은 한 생애
끝없는 독서

저녁마다 나는 별빛 아래 쓰러지고
새벽마다 나는 햇살 아래 부활하지.
(정성수·시인, 1945-)


+ 책

가장 고요할 때
가장 외로울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책을 연다.

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러이 연다.

가장 기쁠 때
내 영혼이 누군가의 선물을 기다리고
나와 같이 그 기쁨을 노래할
영혼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갈
나의 친구들을
나의 행복을 미리 노래하고 간
나의 친구들을
거기서 만난다.

아,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주택들아,
가장 높은 정신의 성(珹)들
그리고 가장 거룩한 그들의 일생은
거기에 묻혀있다.

나의 슬픔과 나의 괴롬과 나의 희망을
노래하여 주는 내 친구들의
썩지 않는 영혼을 나는 거기서 만난다.
그리고
힘주어 손을 잡는다.
(김현승·시인, 1913-1975)
 

+ 좋은 책
  
좋은 책을 많이 읽은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나태주·시인, 1945-)


+ 산은 책이다
  
산은 뜻깊은 책이다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수려한 문장
구름을 읽다가 바위 곁으로 가고
바위를 읽다가 다시 구름 곁으로 간다
(이생진·시인, 1929-)


+ 책

씨앗은 몸을 갈라 떡잎을 만들고
떡잎은 비밀을 모아 나무로 자란다
통나무는 무수히 살을 갈라
한 장 종이쪽이 되고
종이는 몸을 벌려 역사를 받아들인다
무거운 역사, 그래서 책은 무겁다

그런데 진짜 역사는
폭풍우의 심장까지 직시하는 잎사귀에 적혀 있거나
잎새 사이를 나는 새의 반짝 숨결에 적혀 있지
진짜 책은 가볍다
(김응교·시인, 1962-)


+ 책이란 모름지기

나는 가끔 요리책을 본다.
그러나 나의 요리책이
감자탕이나 북어국으로
꽃을 피우는 일은 거의 없다.

아내도 가끔 요리책을 본다.
아내의 요리책은
곧장 밥상으로 올라가
콩나물밥이나 동태찜으로 태어난다.

책이란 모름지기
나처럼 읽지 말고
아내처럼 읽을 일이다.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손발로 읽을 일이다.
(이현주·목사 시인, 1944-)


+ 책을 읽는 기쁨 

좋은 책에서는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그 향기가 스며들어
옆 사람까지도 행복하게 한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모두 이 향기에 취하는
특권을 누려야 하리라.

아무리 바빠도 책을 읽는 기쁨을
꾸준히 키워나가야만
우리는
속이 꽉 찬 사람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으로
삶이 풍요로울 수 있음을 감사하라.

책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느 한 구절로
내 삶의 태도가
예전과 달라질 수 있음을
늘 새롭게 기대하며 살자.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책

책 한 권은 한 마지기 논이다

물꼬로 물 흘러 들어가 한 마지기 다 채우고서야
논이 논인 것처럼

내 마음 책장으로 흘러 들어가 쪽쪽 헤집고
머금고 보듬다가 다시 넘쳐 돌아 나오고서야
책이 책인 것을

책은 책꽂이에서는 묵정논이다

마음이 흘러 들어갈 수 없는 딱딱이 의자에
앉아 있는 책,

마음이 흘러 들어가지 않는 책의 글자는
빼뿌쟁이거나 피
묵정논에 솟아오르는 잡풀인 것을
(강희근·시인, 1943-)
*묵정논: 오래 묵혀 거칠어진 논, 빼뿌쟁이: 질경이


+ 책나무

축복의 책이 될 나무 한 그루
선명한 나이테를 그루터기에 남겼다.
어질머리를 견디며 살았다는 증거.
바람 한 점 없고
햇살 비치지 않을 때에도
나무는 곧게 서기 위하여 어지러움을 견디었다.
위로의 책이 되기 위하여 나무는
꼿꼿이 서려 했다. 땅을 칼자루 삼아
뿌리를 내리고 종일 꼿꼿이 날을 세웠다.
(유용선·시인, 1967-)


+ 단 한 권의 책

너는 밑줄 긋고 싶은 글
긋지 못하고 눈으로만 힘주어 표시해 두는
눈독만 들여놓아 더욱 애가 타는
너는 내 베갯머리까지 따라오고
노래 속에도 들어오고
설거지통에도 담겨 있지
내가 읽고 있는 단 한 권의 책
나는 너를 몽땅 밑줄 긋고 싶어
두껍고 난해한 너
평생토록 정독하고
묵독하면서
(김태희·시인)
 

+ 책은 어두워지지 않는다.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책꽂이의 책들을 바래게 한다
햇살 아래 바래지 않는 책은 없다
열려진 책이거나 전혀
열려지지 않는 책이거나 햇살은
상관하지 않고 그것들을 조금씩 앗아간다

유리창으로 들어온 어둠이
책꽂이의 책들을 덮을 때에도 책은
어두워지거나 갑갑해하지 않는다
책을 열던 주름 투성이 손이 세상을 뜬 뒤에도
말없는 침묵으로 자리를 지키던 책들
책은 아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책꽂이에 가만히 꽂혀 있어도
손때 묻어 너덜너덜 헤어져도 결코
기다림의 모습을 끝내지 않는다
책꽂이의 책들은 어쩌면
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을 바래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 어쩌면
(강영환·시인, 1951-)


+ 책과 여자

드문 일로
서점에서 시집 한 권 샀다
내 집에 감금되어
각시처럼
나만 기다릴 운명의 책이다

생각해보니
도서관에 있는 책은 행복하다
이 사람 저 사람
수요자에 한 번씩 다 빌려주며
수많은 손가락과 타액에 몸 맡겨
한 겹씩 벗겨지는
회전율과 존재가치가 높을 책

어느 홍등가 유리가게
나란히 진열된 여자들이 떠오른다
그 몸
목차만 읽었는지
몇 페이지 혹은 행간도 다 읽었는지 모르는 사내가
바지춤 추스르고 사라지면
태연하게 다시 진열되는 여자들

책과 여자는 비슷하다
행간은 물론 영혼도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서관에 있는 책은 행복하다?
(양전형·시인, 제주도 출생)


+ 책 읽는 여자는 아름답다

버스를 탈 때도
전철을 탈 때도
지루한 진료 시간을 기다릴 때도
한 권의 책을 소중하게 다루는
아름다운 여인
들꽃보다 향기롭다
가지런히 무릎을 모으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 가는 예쁜 딸
화장기 없는 하얀 얼굴
오늘따라, 보석 달처럼 환하고
보석별처럼 빛난다
책을 유난히 사랑했던 아빠를 닮았을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보시락거리는 소리
눈을 감고 듣기만 해도
행복이 넘친다
(김귀녀·시인, 1947-)


+ 책을 보다


사람들은
책을 본다고 얘기할까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책을 느낀다고 하지 않고
책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지 않고

책을 보지만 말고
책을 눈으로만 읽지 마오.
책을 가슴으로 읽어다오.
책을 영혼으로 읽어다오.

책을 본다고 한 사람도
거실 앞의 TV만 보느라고
책을 제대로 보지도 않는다.
제발 책 좀 봐주오.

그대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그대의 마음을 향기롭게 위하여
그대의 영혼을 빛내기 위하여!
(유응교·건축가 시인)


+ 시집 한 권
 
견딜 수 없었네
시 한 편의 값,
슈퍼에서
시집 한 권을
이천 원에 사온 날
지금은 시집도
바겐세일하는 시대,
시 한 편에 대략
33.89830508474원
나는 그 안에 든
바람이며
꽃이며
노을이며
말하지 않은
시인의 슬픔이며를
각각
33.89830508474원 헐값에
읽어 버렸네
부끄러웠네
(홍수희·시인)


+ 책시

좋은 책은 향기입니다
숨이 깃들어
손끝에서 피어나고
가슴을 적시는
삶의 향기입니다

좋은 책은 풀잎입니다
바람 맞으며
흙에 뿌리 내리고
몸을 푸르게 하는
삶의 노래입니다

좋은 책은 꽃입니다
어둠 속에서
별빛 모으고
눈을 맑히는
삶의 자랑입니다

오늘도
그런 책 속에서
가꾸고
꿈꿉니다
(송창선·교사 시인, 1960-)


+ 책 미치광이
 
내 나이 이제 오십한살.
말썽꾸러기 내가
아직 한번도 안 했던 자기자랑을
여기 적어 볼까 합니다.
자기자랑은 팔불출이지만
초로의 노인이 된 내가
어찌 불출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국교 이학년 때부터
나는 일본서 살았는데
어머니는 나를 '책 미치광이'라 불렀습니다.
미치광이라니 천만의 말씀!
읽어서 큰 공부되고
덕볼 뿐만 아니라 재미 만점이고
지식과 슬기를 주는 독서가
왜 미치광이란 말입니까!

국교 육년 때 일이었는데
일본에서, 나 살던 곳은
치바켄 타태야마시 호오죠 동네였는데
그 역전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었고,
학교 파하면
나는 반드시 거기 갔었습니다.
다닌 지 칠팔개월 지난 어느 날,
아내하고 두 사람뿐인 어른 직원이,
목욕하고 온다고 하면서
도서관 지켜달라면서
서적 서가 열쇠를
내게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른은
시립도서관장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국교 육년생이
단시간만이라도
시립도서관장 임시대행을
살짝 지냈다는 꼴이 아닙니까?

우스우면 우습고,
맹랑한 시간이었습니다.
(천상병·시인, 1930-1993)


+ 나무 한 권의 낭독

바람은 침을 발라 나무의 낱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다
언제쯤 나도 저러한 속독을 배울 수 있을까
한 나무의 배경으로 흔들리는 서녘이
한 권의 감동으로 오래도록 붉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저렇게 너덜너덜 떨어져나갈까
이 발밑의 낱장은 도대체 몇 페이지였던가
바람은 한 권의 책을 이제
눈감고도 외울 지경이다
또 章들이 우수수, 뜯겨져나간다
숨진 자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바람은 제 속으로 떨어지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손바닥으로 받아들고
들여다보고 있다
낱장은 손때 묻은 바람 속을 날다가
끝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밟힌다
철심같이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인적 드문 언덕에 구부정히 서서
제본된 푸른 페이지를 모두 버리고
언 바람의 입으로 나무 한 권을
겨우내 천천히 낭독할 것이다 
(고영민·시인, 1968-)


+ 따뜻한 책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이기철·시인, 1943-)


+ 책 읽는 아이

토끼풀 같은 아이야,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니
선생님이 되고 싶니 발명가가 되고 싶니
시인 혹은 장군이 되고 싶니
너의 고사리 주먹에 쥐어진 한 권의 책이 지금은 무겁겠지만
그 속에 네가 가야 할 길이 있고 하늘이 있다
무거우면 네 연한 무릎 위에 책을 세우고
첫봄 개나리꽃 같은 아이야
별을 읽어라 바다를 읽어라 우주를 읽어라
네 눈빛이 책 속에 있는 동안
들 가운데는 자운영꽃이 피고 파랑새가 더 멀리 날고
고래가 바다를 횡단한다
네 가슴이 책을 꿈꾸는 동안
세계는 발자국 소릴 죽이고 네 숨소리를 듣는다
파도가 가라앉고 폭풍이 잠자고
태백산봉에는 흰 구름이 핀다
자두꽃 같은 아이야, 네 상상 속엔 지금
사슴이 지나느냐 연어가 돌아오느냐
들판 끝에 송아지가 우느냐
언젠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될
이 세상의 별인
책 읽는 아이야
(이기철·시인, 1943-)


+ 타오르는 책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을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어버린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남진우·시인, 1960-)


+ 헌책에 대하여

읽고 난 필요없는 책들 정리해서
도망 못 가게 노끈으로 사지를 단단히 묶어서
가져가는 사람 있다기에 대문 옆에 내 놨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엄동설한에 쫓겨난 자식처럼 덜덜 떨고 있는
것이 보기 안쓰러워 다시 창고에 들여놓고서,
헌책 버릴 걱정 안하고 고무다라이나 엿 바꿔먹던
옛날이 좋았다고 생각해 보는 건데, 옛날처럼 화장실
변기통 옆에 매달아 놓고서 화장지로 한번 사용해볼까
애들 컴퓨터게임 못하게 하고 운동도 할 겸 딱지 접어서
가지고 놀라고 윽박질러 볼까, 올 봄에는 집수리도 해야
하는데 비싼 도배지 사지 말고 책으로 도배를 해버려
별 쓸데없는 궁리를 다 해 보기도 하는 것인데,

헌 교과서 찢어서 골연초 말아 물고 불쏘시게 해서
군불 지피던, 까막눈 할매 하시던 말씀
니들 책값은 하나도 아깝지 않어야, 나중에 그게 다
살림밑천잉께
(윤인구·시인, 충남 예산 출생)
 

+ 책의 죽음

나는 이제 이 책들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사람들은 엉성한 결론을 눈치채었고
행간에 담긴 여백도 그 신비를 잃었으므로.

한때는 비수처럼 번뜩이던 논리들
그 논리가 껴입고 있던 화려한 수사들을
어느 날 통나무 베듯 베어 버린 것이다.

버려야 할 신발짝 같은 책들을 뒤적이면
턱없이 오만한 지성의 거죽을 향해
반성의 창을 던지는 시간의 손이 보인다.
(이우걸·시인, 1946-)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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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요즘 책을 거의 읽지 않는데 책을 다시 사랑하고 싶어지네요^^
(2011.01.26 11:52:24)  
도토리

릴리 님, 감사 드려요.


(2011.01.27 11: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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