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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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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인생을 배운다> 이경숙의 '나무처럼 살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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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인생을 배운다> 이경숙의 '나무처럼 살기' 외  

+ 나무처럼 살기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이경숙·아동문학가)


+ 나무처럼

나무가 나무끼리 어울려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가지와 가지가 손목을 잡고
긴 추위를 견디어 내듯

나무가 맑은 하늘을 우러러 살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잎과 잎들이 가슴을 열고
고운 햇살을 받아 안듯

나무가 비바람 속에서 크듯
우리도 그렇게
클 일이다.
대지에 깊숙이 내린 뿌리로
사나운 태풍 앞에 당당히 서듯

나무가 스스로 철을 분별할 줄을 알듯
우리도 그렇게
살 일이다.
꽃과 잎이 피고 질 때를
그 스스로 물러설 때를 알듯
(오세영·시인, 1942-)


+ 나무뿌리
  
나무는 뿌리를 숨기는 수줍음이 있다
사람들이 낮에 성기를 숨기듯 말이다
아니 나무는 아주 어려서부터 그러하다
사람은 나무보다 철이 늦게 든다
(이생진·시인, 1929-)


+ 늙은 소나무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여자를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사랑을 안다고
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 세상을 안다고
늙은 소나무들은
이렇게 말하지만
바람소리 속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신경림·시인, 1936-)


+ 나무의 정신

죽은 나무일지라도
천년을 사는 고사목처럼
나무는 눕지 않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내 서재의 책들은
나무였을 적의 기억으로
제각기 이름 하나씩 갖고
책꽂이에 서 있다.

누렇게 변한 책 속에
압축된 누군가의 일생을
나는 좀처럼 갉아먹는다.
나무는 죽어서도
이처럼 사색을 한다.

숲이 무성한 내 서재에서는
오래 전의 바람소리, 새소리 들린다.
(강경호·시인, 1958-)


+ 잎차례

하늬바람에 모과나뭇잎이 올라오는 걸 보니
이파리 하나 내는 데도 순서가 있다
해 뜨는 쪽으로 하나 내보내면
해 지는 쪽으로 하나를 내고
그 사이에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잎 하나를 꼭 세워둔다
좌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꼭 그렇게 잎을 낸다
밤나무나 동백나무도 오른쪽에서 잎이 나면
다음에는 왼쪽에서 잎이 돋는다
마주나는 건 마주나고 돌려나는 건 꼭 돌려난다
하찮은 들풀이나 산기슭 작은 꽃들도
꽃잎이 다섯 개인 건 꼭 다섯 개만 내고
여덟 개인 건 여덟 개만 낸다
냉이나 민들레나 우리가 보기엔 그저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들꽃도
저희끼린 다 정교한 질서를 따르고
생명의 사소한 일 하나를 끌어가는 데도
반드시 지킬 줄 아는 차례가 있다
이파리 하나에도
(도종환·시인, 1954-)
  

+ 나무의 앞

보아라 사람의 뒷모습
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저것이 신의 모습인가

나무 한 그루에도
저렇게 앞과 뒤 있다
반드시 햇빛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남쪽과 북쪽 때문이 아니라
그 앞모습으로 나무를 만나고
그 뒷모습으로 헤어져
나무 한 그루 그리워하노라면

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일지라도
사랑한다는 말 들으면
바람에 잎새 더 흔들어대고
내년의 잎새

더욱 눈부시게 푸르러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여름 다하여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단풍
사람과 사람 사이
어떤 절교로도
아무도 끊어버릴 수 없는 단풍
거기 있어라  
(고은·시인, 1933-)


+ 그 나무 옆에 앉았다

마음이 어지러워
나는 그 나무 옆에 앉았다.
거기 오래도록 서 있었던 나무는
벌레 먹은 잎사귀들이 반쯤은
단풍들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나무는 내게
알맞게 내다볼 수 있는 시야를 주었다.
나무와 함께 보았던
숱한 기억의 날들이 스스스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그 나무는
그러나 매일 울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나는 차츰 나무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흔들리는 잎들의 혼을
달래기 시작했다.  
(박영신·시인, 경기도 포천 출생)


+ 소나무를 만나

바람을 다스리지 못하겠거든
산으로 가서 소나무를 만나
말 대신 눈으로 귀를 열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절제하고, 절단하고
바람이 부는 날
하늘에다 온몸으로 수화하는
나무의 설법에 큰절하고
잘 늙은 소나무가 손짓해 주는
그 곁에 가서 뿌리를 내려라

어느덧 산을 닮아
푸른 자태가 제격이면
바람도 솔잎에 찔려 피를 흘린다
(박곤걸·시인, 1935-2008)


+ 소나무 앞에서 뉘우치다

나무들이
사람을 기른다고

옛 사람이
말했다지만,

넓은잎나무와 더불어 살면
둥글둥글해지고

바늘잎나무와 어울려 살면
뾰족뾰족해진다고

아무리
옛 사람이 말했다지만,

이제 와서
소나무만 탓하고 있는 나의

이 어쩔 수 없는
옹졸함이라니.
(윤효·시인)


+ 나무

어릴 때는 저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 이파리들이 던지는 풍성한 그늘이 마치 당연한 허구인 듯이,
마시고 그냥 노래했을 뿐이다.

서른 살에 저 나무는 반쯤 편 우산 같은 무리를 쓰고,
하늘 한켠에 외로운 모습으로 직립해 있었다.
돈을 생각하며 걷는 갈짓자의 어지러운 발걸음 저편에
그것은 아득하고 나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그저 그런 형상처럼만 보였다.

내리막길이 보이는 고갯마루에 서서, 이제서야 문득 깨닫는다.
나의 근원은 대체 어디에 연해 있는가.
진심으로 내가 소원한 것은 숲의 무성함이거나 현란한 그 색채가 아니라
깊고도 질긴 그 뿌리였다.
길은 어둡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다.
가장 확실한 모습으로 떨고 선 저 한 그루 나무
(이제하·시인이며 소설가, 1937-)


+ 가끔은 흔들리며 살고 싶다

지난밤의 긴 어둠
비바람 심히 몰아치면서, 나무는
제 몸을 마구 흔들며 높이 소리하더니
눈부신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더 푸르다
감당하지 못할 이파리들을 털어 버린 까닭이다
맑은 날 과분한 이파리를 매달고는
참회는 어둠 속에서 가능한 것
분에 넘치는 이파리를 떨어뜨렸다
제 몸의 무게만큼 감당하기 위해서
가끔은 저렇게 남모르게 흔들어 대는 나무
나도 가끔은 흔들리며 살고 싶다
어둠을 틈 타 참회의 눈을 하고
부끄러움처럼 비어있는 천정(天頂)을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무게만을 감당하고 싶다
홀가분하게 아침 햇살에 눈부시고 싶다
대둔산 구름다리를 건너며
흔들리며 웃는 게 눈부실 수 있다
가끔씩 온몸을 흔들리며
무게로 채워진 바위
그 무게를 버려가며 사는 게 삶이다
지난날들의 모자가 아직 씌워져 남아 있는
푸념의 확인, 구름다리 밑의 아찔한 거리로
가끔은 징검징검 흔들리며 살고 싶다
(구재기·시인, 1950-)


+ 고목

오동은 고목이 되어갈수록
제 중심에 구멍을 기른다
오동뿐이랴 느티나무가 그렇고 대나무가 그렇다
잘 마른 텅 빈 육신의 나무는
바람을 제 구멍에 연주한다
어느 누구의 삶인들 아니랴
수많은 구멍으로 빚어진 삶의 빈 고목에
어느 날
지나는 바람 한줄기에서 거문고 소리 들리리니
거문고 소리가 아닌들 또 어떠랴
고뇌의 피리새라도 한 마리 세 들어 새끼칠 수 있다면
텅 빈 누구의 삶인들 향기롭지 않으랴
바람은 쉼없이 상처를 후비고 백금칼날처럼
햇볕 뜨거워 이승의 한낮은
육탈하기 좋은 때

잘 마른 구멍 하나 가꾸고 싶다
(복효근·시인, 1962-)


+ 눈을 감는 나무

큰 가로수 하나가
비바람 견디다 못해 길바닥에 쓰러져 누워 버렸다
평생 묻어 두었던 인종의 세월 험한 뿌리 드러내고
삶을 포기한 후에야 편히 누웠다

견딜 만큼 견딘 세월이 덧없다
한사코 뻗어 나간 잔가지들 여기저기 꺾여 나가고
이파리만큼 사연 많은 실뿌리도 다 끊겼다
쓰러지고 보니까 몸체도 여기저기 할퀴고 패여 있다
한 그루 나무로 살아온 삶 결코 순탄하지 않았구나

청정한 잎새로 햇빛 받아 번쩍거리며
반듯한 균형으로 서 있던 모습
한세상 수월하게 사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구나! 삶이란 남모르는 고뇌를 견디는 거구나
이파리 하나 이 세상에 내어 보내기 위해서 뿌리 쪽에서는
또 한 뼘 실뿌리를 어둡고 굳은 땅 속으로 뻗어야 했구나

쓰러진 가로수를 인부들이 톱으로 자른다
나무의 나이테가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꼼꼼히 기록해 둔 일기처럼
한 생애 슬픔의 무늬가 드러나고 있다
아무도 눈여겨보아 주지 않는 나무의 죽음을
세상 물정 어두운 시인 하나가 서서 울어 주고 있다
나무도 그제야 눈을 감는다
(김문희·재미 시인, 강원도 원성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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