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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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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관한 시 모음> 오세영의 '1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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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관한 시 모음> 오세영의 '1월' 외


+ 1월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오세영·시인, 1942-)


+ 1월의 해와 하늘

수십 억 년쯤,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세월
날마다 변함없이 뜨고 지는 해.
해는 똑같은 해인데
12월에 떠오르는 해는
낡아 보이고
1월에 떠오르는 해는
새로워 보인다.

사랑과 미움
적과 동지
아름다움과 추함
빠름과 느림
배부름과 배고픔
편안함과 불편함
강인함과 나약함...

본질은 같으나
느낌에 따라 달라 보이는 그 무엇들,
세상에 너무 많은.

1월 어느 날의 청명한 하늘,
12월 어느 날에 청명했던 바로 그
하늘이 아닌.
(안재동·시인, 1958-)


+ 1월

새해가 밝았다
1월이 열렸다

아직 창밖에는 겨울인데
가슴에 봄빛이 들어선다

나이 먹는다는 것이
연륜이 그어진다는 것이
주름살 늘어난다는 것이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이
모두 바람이다

그래도
1월은 희망이라는 것
허물 벗고 새로 태어나겠다는
다짐이 살아 있는 달

그렇게 살 수 있는 1월은
축복이다
(목필균·시인)


+ 1월에는

첫차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설레고,
어둠 털어 내려는 조급한 소망으로
벅찬 가슴일 거예요

일기장 펼쳐들고
새롭게 시작할 내 안의 약속,
맞이할 날짜마다 동그라미 치며
할 일 놓치지 않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기도 하고요
  
각오만 해 놓고 시간만 흘려 보낸다고
걱정하지 말아요
올해도 작심 삼일, 벌써 끝이 보인다고
실망하지 말아요
  
1월에는
열 한 달이나 남은 긴 여유가 있다는 것
누구나 약속과 다짐을 하고도
다 지키지 못하고 산다는 것
알고 나면
초조하고 실망스러웠던 시간들이
다 보통의 삶이란 것 찾게 될 거예요
(목필균·시인)


+ 1월

서릿발 차면 하얗게 부서지는
수정 얼음들의 찬란한 스러짐 위로
낯익은 눈빛의 그대가 왔다
거리 두리번거리며 골목 기웃대며
눈가루에 희망의 이스트 섞어
새로운 양식을 마련하는 우리들,
불면의 머리 위로 첫눈처럼 다가왔다
까치 울음마다 한 땀 한 땀
세상 낡고 헐은 곳 기우며
뿌연 안개 헤치고 그대는 재림했다
안 보이는 찰나를 경계로
태양은 이미 어제의 태양이 아니고
사람은 벌써 지난 사람이 아니다
신의 형상을 본떠 사람이 지은
열두 궁궐 삼백육십다섯 칸
그 빈 칸 안에 우리들은
저마다의 소망과 기도를 쓴다
순백의 눈맞이 걸음 꾹꾹 눌러 찍는다
(주용일·시인, 충북 영동 출생)


+ 1월의 시

친구여
최초의 새해가 왔다.

이제 날 저무는 주점에 앉아
쓸쓸한 추억을 슬퍼하지 말자.

잊을 수 없으므로 잊기로 하자.
이미 죽었다.
저 설레이던 우리들의 젊은 날
한마디 유언도 없이
시간 너머로 사라졌다.

스스로 거역할 수 없었던
돌풍과 해일의 시절
소리 없는 통곡과
죽음 앞에서도 식을 줄 모르던 사랑과
눈보라 속에서 더욱 뜨거웠던 영혼들
지혜가 오히려 부끄러웠던 시대는 갔다.

친구여, 새벽이다
우리가 갈 길은 멀지 않다.

그믐날이 오면 별이 뜨리니
술잔이 쓰러진 주점을 빠져나와
추억의 무덤 위에 흰 국화꽃을 던지고
너와 나의 푸른 눈빛으로
이제 막 우주의 문을 열기 시작한
저 하늘을 보자

지치지 않는 그 손과 함께
우리가 걸어가야 할 또 다른 길 위에
오늘도 어제처럼
투명한 햇빛은 눈부시리니.
(정성수·시인, 1945-)


+ 1월의 아침

세월의 머언 길목을 돌아
한줄기 빛나는 등불을 밝힌
우리의 사랑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아직은 햇살도 떨리는 1월의 아침
뜨락의 풀뿌리는 찬바람에 숨을 죽이고
저 푸른 하늘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살아갈수록 사람이 그리웁고
사람이 그리울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우리네 겨울의 가슴,

나처럼 가난한 자
냉수 한 사발로 목을 축이고
깨끗해진 두 눈으로
신앙 같은 무등이나 마주하지만
나보다 가난한 자는
오히려 이 아침 하느님을 만나 보겠구나.

오늘은 무등산 허리에 눈빛이 고와
춘설차 새 잎 돋는 소리로
귀가 시린 1월의 아침
우리의 기인 기다림은 끝나리라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땅도 풀리고
꽃잎 뜨는 강물도 새로이 흐르리라
우리의 풀잎은 풀잎끼리 서로 볼을 부비리라.

아아, 차고도 깨끗한 바람이 분다
무등산은 한결 가즉해 보이고
한줄기 사랑의 등불이 흔들리고 있다.
(허형만·시인, 1945-)


+ 1월

나는 야누스
반은 감성에 살고 반은 이성에 산다
누가 이중의 얼굴을 탓하는가
순백의 물질, 눈 밑엔 언제나
질척한 진흙의 마음이 있는 것을

나는 야누스
반은 꿈에 살고 반은 현실에 산다
하지만 언제나 승리하는 건 현실
리얼리즘이 로맨티시즘을 능가하는가
자아가 본능을 억압하는 것을

나는 우화 속의 여우
그저 저 높이 매달린 잘 익은 포도송이를
시큼할 거라고 자위하며 지나가는
한 마리 여우

겨울과 봄의 길목에서
꿈인 그대여!
철학도 이성도 사그라지는
그대의 품속이여!
힘과 물질이 대단치 않은 곳,
개인과 자유의지가 피어나는
그대의 입속이여!

그대는 나의 아버지이자 아들
그대는 나의 자궁이자 혀
그대는 나의 과거이자 미래
어쩌면 이것이
그대가 눈부신 이유인지도 모르는 것을
(윤꽃님·시인)


+ 1월의 밤

한 해의 처마 밑에
나는 나의 가슴속을
몽땅 밖에 걸어 놓고 조언을
기대하고 싶었습니다
오가는 길손들의 시선을 모아
별빛 밝은 긴긴 이랑을 짓고

천하의 꽃나무들이
열심히 꿈 밭을 가꾸는
1월의 밤을 새기며
두 눈이 멀도록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일 힘든 강추위가 좋았습니다
그 속에서 진위를 가려내고 싶었고
영하의 강한 의지를 연마하는
1월의 사나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김기덕·시인)


+ 1월의 기도

시작은 모름지기 완성에 이르는
첫 번째 작업임을 알게 하시고
그 결연했던 첫 마음이 변함없게 해주시고
모든 좋은 결과는 좋은 계획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시오.
(작자 미상)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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