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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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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특집 시모음> 박금숙의 '송년의 노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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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특집 시모음> 박금숙의 '송년의 노래' 외  

+ 송년의 노래

해가 저문다고
서두르거나 아쉬워하지 말자
처음부터 끝은 없었던 것
세월의 궤도를 따라
지칠 만큼 질주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어제의 일조차 까마득히 잊은 채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길을 돌아왔을 뿐
제각각 삶의 무게에 얹혀
하루해를 떠안기도 겨웠으리라

잠시 고된 짐 부려놓고
서로의 이마 맞대줄
따뜻한 불씨 한 점 골라보자
두둥실 살아있는 날은
남겨진 꿈도 희망도
우리의 몫이 아니겠는가
(박금숙·시인)


+ 송년의 노래


먼저 떠나는 너는
알지 못하리

한 자리에
묵묵히 서서
보내야만 하는 이의
고독한 가슴을

바람에 잉잉대는
전신주처럼
흰 겨울을 온몸에
휘감고 서서

금방이라도
싸락눈이 내릴 것 같은
차가운 하늘일랑
온통 머리에 이고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고 섰는
송년의 밤이여,

시작은 언제나
비장(悲壯)하여라!
(홍수희·시인)


+ 송년 엽서

하늘에서
별똥별 한 개 떨어지듯
나뭇잎에 바람 한번 스쳐가듯

빨리 왔던 시간들은
빨리도 떠나가지요

나이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간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어서 잊을 것은 잊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야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떨어지기 전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일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던 벗이여

눈길은 고요하게
마음은 뜨겁게
아름다운 삶을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충실히 살다보면

첫새벽의 기쁨이
새해에도 항상
우리 길을 밝혀 주겠지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송년의 시

이제 그만 훌훌 털고 보내주어야 하지만
마지막 남은 하루를 매만지며
안타까운 기억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징검다리 아래 물처럼
세월은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시간을 부정한 채 지난날만 되돌아보는 아쉬움

내일을 위해 모여든 어둠이 걷히고
아픔과 기쁨으로 수놓인 창살에 햇빛이 들면
사람들은 덕담을 전하면서 또 한 해를 열겠지

새해에는 멀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찾고
낯설게 다가서는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올해보다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아야겠다

산을 옮기고 강을 막지는 못하지만
하늘의 별을 보고 가슴 여는
아름다운 감정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윤보영·시인)


+ 송년인사

그대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대 올해도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그대 올해도 사랑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대 올해도 내 눈물 받아 웃음꽃 피워주고
그대 올해도 밉다고 토라져도 하얀 미소로 달래주고
그대 올해도 성난 가슴 괜찮아 괜찮다고 안아주고
아플 때마다 그대의 따스한 손길은 마법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대의 품은 오늘도 내일도 세상에서 가장 넓고 편안한 집입니다
그대가 숨쉬는 세상 안에 내 심장이 뛰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대 올해도 살아줘서 살아있음에 큰 행복 함께 합니다
(오순화·시인)


+ 송년(送年)

출발은 언제나 비장했으나
종말은 항상 허탈이다.
동녘의 첫 햇살 앞에 고개 숙여
경건하게 다짐한 결심이
무참히 무너진 연종(年終)

거창했던 구호와
문신처럼 새겨 넣은 각오
작심삼일이 되어
모래성처럼 무너진 한 해

지나온 한 해를 생각하면
자괴감에 슬프고
이루지 못한 소망들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게을렀던 내 탓이다.

이맘때만 되면
내 모습은 점점 쪼그라들고
길바닥에 뒹구는
막돌멩이만큼 초라하다.

하지만 눈을 들어
새 캘린더를 바라본다.
잎만 무성한 나무아래
도끼가 날을 서고 있지만
다시 삼백 예순 닷새가 있기에
(박인걸·목사 시인)


+ 송년에 즈음하면

송년에 즈음하면
도리 없이 인생이 느껴질 뿐입니다
지나온 일년이 한생애나 같아지고
울고 웃던 모두가
인생! 한마디로 느낌표일 뿐입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자꾸 작아질 뿐입니다
눈감기고 귀 닫히고 오그라들고 쪼그라들어
모퉁이 길 막돌멩이보다
초라한 본래의 내가 되고 맙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

송년에 즈음하면
갑자기 철이 들어 버립니다
일년치의 나이를 한꺼번에 다 먹어져
말소리는 나직나직 발걸음은 조심조심
저절로 철이 들어 늙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안진·시인, 1941-)


+ 가는 해 오는 해 길목에서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쉬움과 작은 안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립니다

봄볕 같은 햇살에
땅 끝이 다시 파릇파릇 되살아나
겨울이 겨울답지 않다고 투덜거리다가도
가던 길 멈추고 별빛 끌어내리면
이내
없는 이들의 가슴에 스미어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12월의 플랫폼에 들어서면 유난히
숫자 관념에 예민해집니다
이별의 연인처럼 22 23 24...... 31
자꾸만 달력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한 해 한 해
냉큼 나이만 꿀꺽 삼키는 것이
못내 죄스러운 탓이겠지요

하루하루
감사의 마음과 한 줌의 겸손만 챙겼더라도
이보다는 훨씬
어깨가 가벼웠을 텐데 말입니다

오는 해에는
이웃에게 건강과 함박웃음 한 바가지만
선물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홀로 떠있는 섬과 같습니다
못난 섬
멀리 내치지 않은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경한규·시인)


+ 송년회
  
후미진 골목 두 번 꺾어들면
허름한 돈암곱창집
지글대며 볶아지던 곱창에
넌 소주잔 기울이고
난 웃어주고
가끔 그렇게 안부를 묻던 우리

올해 기억 속에
너와 만남이 있었는지
말로는 잊지 않았다 하면서도
우린 잊고 있었나 보다
나라님도 어렵다는 살림살이
너무 힘겨워 잊었나 보다

12월 허리에 서서
무심했던 내가
무심했던 너를
손짓하며 부른다

둘이서
지폐 한 장이면 족한
그 집에서 일년 치 만남을
단번에 하자고
(목필균·시인)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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